[우문현답] 공기업의 진정한 혁신은

2022. 8. 19. 0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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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권마다 공기업 놓고 한판 굿
신의 직장에서 '신도 힘든 직장'
사장실 평수나 줄이는 쇼 말고
자립·자율·자강 기반을 놓자
세계1위 공기업 몇개는 나와야
정권이 바뀔 때마다 공기업 등 공공기관 개혁은 늘 혁신의 도마에 올라가는 메뉴였다. 물론 이번 정부도 예외는 아니다. 방만 경영, 보신주의, 저성과, 예산 낭비, 업무 기강, 심지어는 '부역죄'까지 뒤집어쓰고 있다. 그리고 정부에서 툭하면 뱉는 말은 '신의 직장, 파티는 끝났다'이다. 공기업이 스스로 언제, 무슨 파티를 하였는지 공기업에서 10년 넘게 대표를 했던 나는 잘 모르겠지만.

매 정부 공기업 개혁의 색깔도 완전히 달랐다. '구조조정과 민영화, 지방 이전 균형 발전, 자원 개발, 성과연봉제,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등 정부마다 그들만의 개혁 파티를 하였고, 공기업은 경진대회에 동원된 것이다. 그 과정들을 거치면서 힘없는 공기업은 늘 '속죄양'이 되었다.

공기업들은 에너지, 주택, 도로, 공항 서비스 등 국가의 주요 사회 간접자본을 만들고 운영하는 역할을 한다. 그러면서 세계 최고 수준의 전기 품질, 공항 서비스, 도로망, 고속철 운영, 농업 생산성 등을 이루어내고 있다. 정부마다 180도 다른 공기업 혁신 과제를 다 수용하면서도 이 정도의 수준을 유지한 것은 그들이 '업'에 자부심을 갖고 '혼'을 바쳤기 때문이다.

그러나 특히 지난 정부는 심했다. 5년간 고용 등 선심은 야무지게 쓰고, 연료 단가 등이 두 배 이상 뛰는데도 요금, 수수료 인상은 외면해 버린 채 정권을 넘겼다. 결과는 오늘날 한전의 꼴처럼 처참했고, 공기업은 '신의 직장'이 아니라 '신도 힘든 직장'이 되었다. 새 정부의 공기업 혁신 대책도 사장실 평수나 줄이는 식으로 접근해서는 안 된다. 공기업의 근본적 개혁은 자립(自立), 자율(自律), 자강(自强)에서 찾아야 한다.

무엇보다도 시급하고 근본적인 것은 공기업의 '자립 기반'을 만들어주는 것이다. 명칭이 '시장형 공기업'이라면 시장 상황을 어느 정도는 반영시켜 주어야지 요금과 수수료를 틀어막아서만 될 일이 아니다. 물가 대책만 우선이라면 해법이 안 나온다. 독립되고 전문성과 구속력이 있는 심의위원회의 존재가 필요한 이유이다. 정부가 공기업의 재무 상황에 대해서 늘 부담을 지는 상황을 떨칠 수 있는 길이기도 하다. 당장 한꺼번에 풀 수 없는 상황이면 몇 년에 걸친 '정상화 계획' 같은 것이라도 나와야 한다.

어느 정도 자립 기반이 가시화되면 '자율 경영'이 정착되도록 해야 된다. 지금같이 조직, 인사까지 일일이 통제받는 상황에서는 혁신의 동기부여가 안 되고, 피동적이 될 수밖에 없다. 정부는 공기업의 자립 기반이 조성되면 공기업의 존재 이유인 국가 인프라가 잘 운영되고 있는지만 감시하되, 실제 경영은 CEO에게 Free Hand를 주고, 성과에 대해서는 신속하고 엄중한 책임을 묻게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유능한 CEO가 선임되어야 함은 필수다. '맹탕'이거나 '낙하산'이 와서 3년간 조직에 휘둘리거나 시간만 때우다 가는 경우가 반복될 경우에는 차라리 민영화가 낫다.

자립과 자율이 진전되면 세계적인 공기업으로 가기 위한 '자강 전략'을 추진해 나가야 한다. 한전이나 인천국제공항 등 우리 공기업 중 세계 최고급 역량을 가진 공기업들도 꽤 있고, 우리의 기술이나 노하우, 시스템을 수출할 수 있는 시장도 많다. 대표적인 것이 원전 수출이다. 긴 안목으로 성장 동력화를 위한 규제 혁신과 정부 지원이 따라야 할 것이다.

아울러 공기업들도 스스로 '자성'해야 될 부분이 많다. 국가의 인프라 사업이라는 명분으로 신기술 도입이나 새로운 시스템, 방식에 대해서는 매우 보수적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높은 경쟁력을 뚫고 입사한 MZ세대 젊은 직원들이 초기에 지방 근무 몇 년을 거치고 나면 모두 다 평범한 공기업 직장인이 되어 안주하려는 풍토에 대해서도 과감한 내재적 혁신이 필요하다. 이제 정말 공기업 흑역사의 반복적 고리를 끊고, 진정한 개혁을 통해 우리도 세계 1등 공기업 몇 개는 갖고 있기를 바란다.

[조환익 한국뉴욕주립대 석좌교수(전 한전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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