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규제샌드박스가 또 다른 족쇄가 안되려면

2022. 8. 19. 0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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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산업 발전을 막는 규제 대못을 뽑기 위해 2019년 1월 도입된 규제샌드박스(실증특례) 제도가 시행된 지 3년 반이 지났다. 기술 발전과 혁신 창발의 속도를 제도 변화가 따라가지 못하면서 종래의 산업구조와 전통적인 이해관계자들에 의해 설정된 구닥다리 규제가 신산업의 발목을 잡는다. 규제가 무조건 나쁜 게 아니다. 적절한 규제는 환경과 국민 안전, 그리고 소비자 권익을 보호하기 위해 필수적이다. 혁신을 키우기 위해 없던 규제를 만들어야 하는 경우도 있다. 가상자산 업계에서 법정 규제를 바라는 이유다. 이처럼 신산업과 규제의 관계는 단순하지 않다.

규제샌드박스는 신산업 육성을 위해 기존 규제를 개폐해도 공공복리의 훼손과 공익의 퇴보가 없는지 제한적 조건에서 한시적으로 검증하는 사회기술적 실험이다. 규제샌드박스는 나름의 성과를 거두고 있다. 관계부처에 따르면 600여 개의 실증특례가 승인됐고 약 400건의 서비스가 개시되었다. 5조원에 가까운 투자가 이루어졌고, 이에 따른 신산업 육성, 경기 부양, 그리고 일자리 창출 효과가 가시적이다.

이러한 성과에도 불구하고 개선 요소들이 발견되고 있다. 실증사업 특례 유효기간인 2년이 지나치게 길다는 지적이 대표적이다. 기술과 시장이 빠르게 변화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민간 기업 입장에서 2년은 시장 환경과 영업 여건이 변하거나 실증특례 대상 기술 자체가 이미 '지나간 기술'이 될 수도 있는 긴 시간이다. 규제샌드박스 신청 기업은 신산업과 신기술 도입을 위해 선제적으로 투자를 시작할 의향이 있는 기업이다. 따라서 충분한 검증을 거쳐 규제를 선제적으로 개선한 후 기업의 투자를 촉진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이렇게 하면 규제샌드박스 제도가 신산업의 조기 정착과 이에 따른 일자리 창출에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실증특례 기간 중에 실증 내용과 무관한 외부 요인으로 규제 개선이 이루어진 경우가 있는데, 이는 진작 손봤어야 할 규제를 두고 굳이 실증특례를 시행했다는 방증일 수 있다. 규제샌드박스 조기 졸업제를 공식화하여 위험 요소가 해소되면 조기에 규제를 개선할 수 있도록 하는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조치가 필요하다. 규제샌드박스는 이미 규제 개선을 상정한 것이므로 검증이 충분히 이루어진 경우 기간을 채울 필요가 없다. 신산업 발전을 위해서는 규제 개선과 더불어 적시에 다양한 행위자가 참여하는 것이 필수적인데, 규제 변화라는 불확실성이 조기에 제거된다면 시장에 추가적인 행위자가 유입될 것이다.

특히 탄소중립을 위해 신재생에너지 분야 실증사업을 조기 졸업 대상으로 우선 검토할 필요가 있다. 작년에 수정 발표된 한국의 2030 NDC(국가 온실가스 감축 목표) 달성이 현실적으로 극히 어렵다는 의견이 터져나오고 있다. 2030년을 불과 7년 남짓 앞두고 탄소배출량 저감을 도울 기술과 사업을 바삐 스케일업해도 모자랄 판인데 실증 기간 2년이 아쉽다. 일괄적으로 기간을 준수하라는 것은 실증특례의 원래 취지에도 맞지 않는다. 규제샌드박스가 또 다른 족쇄가 되지 않도록 진행 중인 실증사업들을 선별·검토해 조기 졸업시키고, 향후 신청되는 실증사업의 경우 실증 기간을 단축하거나 연장할 수 있는 선택적 단계형으로 설정하는 것도 고려할 수 있을 것이다.

[박상욱 서울대 과학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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