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 어르신들 집 찾아 '가위손 서비스'.."의미있는 나눔, 기뻐하는 모습에 보람"

이웃 돕는 ‘가위손 통장단’ 활동
음식·생활용품 등 나눔도 함께
“복지 빈틈, 관심으로 메워야죠”
서울 성북구 석관시장 인근 주택 입구. 7평 남짓 되는 지하 단칸방에 사는 독거노인 전모씨(81)가 지난 5일 느린 걸음으로 간이의자에 앉자 ‘즉석 미용실’이 차려졌다. 계단 한쪽에 가위와 빗, 집게, 바리캉 등을 펼쳐놓은 김희자씨(65)는 전씨 목에 보자기를 두른 후 능숙한 솜씨로 가위질을 시작했다.
“이렇게 한 번씩 이발을 해드리면 어르신들이 ‘자식보다 낫다’라면서 정말 좋아하세요.”
이발 비용은 전씨의 “고맙다”는 말 한마디면 그만이다. 김씨는 이날 집에서 미용도구를 챙기면서 손수 만든 콩국수도 한가득 들고 왔다.
석관동 마을 곳곳에서는 일주일에 한 번 ‘찾아가는 미용실’이 펼쳐진다. 김씨를 비롯한 석관동 통장 여덟 명이 홀로 거주하거나 경제적으로 어려운 노인들을 안부차 방문해 손수 머리카락을 잘라준다. 이날 전씨의 집에 함께 있던 요양보호사 정모씨는 “어르신께서 코로나19에 확진된 이후 건강이 많이 안 좋아지셔서 직접 미용실에 가기 힘들다”면서 “(김씨가) 왔다 가면 정말 좋아하고 언제 또 오는지 물어본다”고 했다.
일명 ‘가위손 통장단’은 여덟 명으로 구성됐으며 김씨를 포함한 2명이 전문 미용사 자격증을 가지고 있다. 1980년대부터 석관동에 거주하며 이웃들을 살펴온 김씨는 30년 전 의미있는 나눔을 해보자는 마음으로 미용사 시험에 도전했다고 했다. 인근 사회복지관에서 6개월가량 실습 교육을 받았으며, 첫 도전에서 자격증을 따는 데 성공했다.
김씨는 “죽기 살기로 노력했다”면서 당시를 회상했다. “복지관 교육이 오전에 시작해서 오후 4시쯤 끝나는데 항상 오후 6시까지는 남아 있었어요. 집에 와서도 자정이 될 때까지 연습했고요. 시험을 한 번에 꼭 붙고 싶었거든요.”
그는 오랫동안 이웃들에게 미용 외에도 음식이나 생활용품을 나누는 삶을 이어왔다. 이유를 물으니 그는 그저 “좋아서 하는 일”이라고 했다.
처음엔 경계심을 드러내거나 모진 말을 내뱉는 이웃들도 김씨가 꾸준히 문을 두드리면 차츰 마음을 열곤 한다. 그는 이런 때 가장 큰 보람을 느낀다. “복지제도가 좋아졌다고는 하지만 빈틈이 있을 수밖에 없잖아요. 이웃이 어떻게 사는지 서로 관심을 두는 게 중요하지 않을까요.”
김씨는 이 같은 삶을 이어갈 수 있는 건 가족의 지지 덕분이라고 했다. “딸과 사위가 대학교수로 일하고 있어서 평일에는 손주를 돌봐야 해요. 그래도 일주일에 한 번은 꼭 수업을 비워 놓더라고요. ‘마을 사람들 만나러 가시라’면서요. 남편도 언제든지 이웃들을 집에 초대하라고 얘기하고요. 고맙죠.”
이날 이발을 마친 전씨는 “바나나 하나 먹고 가라”면서 김씨를 애써 붙잡았다. 그러나 김씨는 “지난번에 준 요구르트도 감사했다”면서 다른 집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걸음을 서두르는 김씨의 등은 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다.
글·사진 강은 기자 eeu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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