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석, 친한 행정처 판사에 "오늘 저녁 영장 청구 예정" 통화

이혜리 기자 2022. 8. 18. 2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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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내정자 '정운호 게이트' 수사기밀 유출 의혹
소감 밝히는 내정자 검찰총장으로 내정된 이원석 대검 차장검사가 18일 내정 직후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에서 취재진에게 소감을 밝히고 있다. 성동훈 기자
김현보 윤리감사관과 40회 이상 통화…특정인 조사 등 알려
사법농단 연루 판사 “수사 담당자도 유출한 정보” 무죄 주장
판결문 적시된 행위 사실일 땐, 위법성과 별개로 부적절 논란

윤석열 정부 첫 검찰총장으로 내정된 이원석 대검찰청 차장검사는 2016년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장일 때 ‘정운호 게이트’ 수사정보를 법원행정처에 유출한 문제가 주요 검증 대상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 내정자의 수사정보 유출 문제는 2019년 서울중앙지법의 ‘사법농단 사건’ 공판에서 처음 불거졌다. 서울중앙지법 형사수석부장 재직 중 정운호 게이트 사건 수사정보를 법원행정처로 유출한 혐의(공무상 비밀누설)로 기소된 신광렬 전 판사 등의 재판에서다.

검찰의 공소사실은 신 전 판사가 임종헌 전 행정처 차장에게 수사정보를 알려준 행위가 중심이었다. 그런데 피고인인 신 전 판사 등의 변호인들이 수사기록에서 ‘정운호 게이트’ 사건을 수사하던 이 내정자와 김현보 당시 행정처 윤리감사관(현 변호사)이 40회 이상 통화한 내용을 발견했다. 그러면서 재판 분위기가 뒤집혔다. 김 전 감사관은 ‘정운호 게이트’에 법관이 연루됐으니 수사 상황을 잘 살펴봐야 한다는 임 전 차장의 방침에 따라 이 내정자와 통화했다. 통화 내용은 문건으로 정리해 임 전 차장에게 보고됐는데, 문건엔 ‘오늘 저녁 영장 청구 예정’을 포함해 영장의 종류와 내용, 특정인 조사 상황 등이 담겨 있다.

김 전 감사관은 신 전 판사 등의 재판에 증인으로 나와 자신이 이 내정자와 사법연수원 동기(27기)이고, 2009년 행정처에서 사법등기심의관을 할 때 이 내정자가 법무부 법무심의관실에 근무해 잘 아는 사이라고 했다. 김 전 감사관은 “처음엔 이 내정자가 먼저 연락했고, 이후엔 자신이 더 많이 연락했다”고 했다. 이 내정자가 김 전 감사관에게 전화를 걸어 “법관 비위 관련 사항이니 돌아가는 상황을 윤감실(윤리감사실)에서 알고 있는 게 좋을 것 같다. 본격 수사가 시작될 것”이라고 알려줬다는 것이다.

두 사람의 친분과 이 내정자의 전화는 정운호 게이트에 법관이 연루돼 사건이 커질 것을 우려하던 행정처의 필요와 맞아떨어졌다. 행정처 문건에는 ‘수사 진행 경과 파악할 수 있는 인적 콘택트 포인트 필요’ ‘면밀한 수사 상황 점검 및 상황 발생 시 신속한 대응 전략 수립’이라는 문구가 있다. 이에 따라 이 내정자를 ‘콘택트 포인트’로 삼았느냐는 질문에 김 전 감사관은 “인위적으로 그런 생각은 안 했다”고 했다.

신 전 판사 등은 수사 담당자인 이 내정자가 유출한 정보가 어떻게 공무상 비밀누설죄에서 말하는 ‘비밀’에 해당하느냐고 재판에서 주장했다. 설령 신 전 판사 등이 행정처로 수사정보를 알려줬다고 해도 범죄는 아니라는 것이다. 신 전 판사 등은 이 내정자를 법정에 증인으로 불러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성사되지 않았다. 1심 재판부는 신 전 판사 등에게 무죄를 선고했는데, 무죄로 판단한 핵심적인 근거가 바로 이 내정자의 수사정보 유출 문제였다. 1심 재판부는 검찰이 스스로 행정처에 수사정보를 알려준 정황을 보면 신 전 판사가 행정처에 알려준 수사정보를 유출해서는 안 될 만한 비밀로 보기 어렵다고 했다.

이 내정자가 유출한 수사정보가 특수1부장으로서 직무상 취득한 것이고 외부에 알려지지 않은 내용이 있다면 공무상 비밀누설죄에 해당할 여지가 있다. 다만 공무상 비밀누설죄는 정보 유출로 국가 기능에 장애가 초래돼야 성립하는데, 이 내정자의 행위로 수사 기능에 장애가 생겼는지는 불분명하다.

판결문에 적시된 이 내정자의 행위가 사실이라면 위법성 여부와는 별개로 부적절하다는 지적을 받을 수 있다. 수사가 종료된 뒤 정식으로 관계기관에 공직자의 비위사실을 통보한 것이 아니라 수사 중에 정보를 유출했기 때문이다.

사법농단 사건 수사를 지휘한 사람은 당시 서울중앙지검 3차장 검사였던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다. 검찰총장 임명 제청자인 한 장관이 이 내정자의 수사정보 유출 문제를 몰랐다고 보기 어렵다. 검찰총장 후보 추천과 검증이 제대로 이뤄졌느냐는 지적이 나온다.

이혜리 기자 lhr@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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