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표는 침체 시그널인데.. 고용이 왜 이리 뜨거워

김지섭 기자 입력 2022. 8. 18. 21:00 수정 2022. 8. 22. 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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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EKLY BIZ] 美경제 '불황·호황 두모습'

‘침체인 듯 침체 아닌 침체 같은 미국 경제.’

최근 시장에서는 미국 경제를 침체에 빠진 것으로 봐야 하는지 아닌지를 놓고 논쟁이 뜨겁다. 2개 분기 연속 역(逆)성장, 장단기 금리 차 역전 등 침체의 ‘기술적 요건’에는 부합하는 상황이지만 고용시장은 여전히 견조하고, 소비 심리도 나쁘지 않아 “결코 침체로 볼 수 없다”는 반론도 거세다. 통상 침체에 빠지면 성장률이 크게 꺾이면서 소비가 얼어붙고 고용이 악화하기 때문에 침체 여부를 판단하는 데 큰 어려움이 없지만, 현재는 호황과 불황일 때의 특징이 모두 나타나 혼란을 가중시킨다. “지금이 경기 침체 상황이라면 침체에 대한 정의를 다시 써야 한다”(뉴욕타임스)는 얘기가 나올 정도다.

그래픽=김의균

◇너무 뜨거운 고용시장

경기 침체 논쟁이 벌어지는 근본 원인은 침체에 대한 객관적·구체적 정의가 없기 때문이다. 미국의 경기 침체 또는 확장 여부를 공식 판단하는 전미경제연구소(NBER)는 침체를 ‘경제 활동의 현저한(significant) 감소가 경제 전반에 퍼지고 수개월간 이어질 때’ 정도로 두루뭉술하게 규정하고 있다. 이에 시장에서는 성장률이 2개 분기 연속 마이너스(-)를 기록하거나 미 국채 10년물 금리가 2년물 금리보다 낮아지면 침체의 범주에 들어온 것으로 판단해왔다. 이러한 조건에 해당하면 고용을 비롯해 생산·소비·투자 등 다른 주요 지표에도 빨간불이 들어오면서 경제 활기가 눈에 띄게 떨어지는 게 일반적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재 경기 흐름은 사뭇 다르다. 미국의 국내총생산(GDP) 증가율은 올해 1·2분기 각각 -1.6%, -0.9%(이상 연율)를 기록했고, 경기 침체의 전조(前兆)로 불리는 장단기 금리 차는 지난달 초 이후 한 달 반 넘게 마이너스 구간에서 움직이고 있다. 반면 대표적인 경기 바로미터(척도)인 고용 상황이 너무나 탄탄하다.

지난달 미국의 비농업 취업자 수는 전월보다 52만8000명 늘면서 시장 예상치(25만명)를 두 배 이상 웃돌았다. 비농업 고용 통계가 집계되기 시작한 1939년 1월 이래 팬데믹 이전까지 973개월 중 월간 50만개의 일자리가 더 생긴 경우는 15번(1.54%)에 불과하다. 실업률은 사상 최저 수준인 3.6%를 4개월(3~6월)간 유지하더니 지난달에는 3.5%까지 떨어졌다. 그만큼 현재 고용 상황이 차고 넘칠 만큼 좋다는 것이다.

일자리만 늘어난 것이 아니라 임금까지 오르며 고용의 ‘양과 질’이 모두 좋아지는 모습이다. 미국의 시간당 임금은 최근 3개월(5~7월) 연속 상승하며 지난달 0.5%(전월 대비)에 근접했다. 제롬 파월 연방준비제도(Fed) 의장이 지난달 말 기준금리를 0.75%포인트 올린 후 기자회견에서 “노동 시장이 이렇게 강한데 침체라고 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한 이유다. 미 실물 경제의 3분의 2가량을 차지하는 개인소비지출이 지난 1·2분기 증가세(각각 1.8%, 1.0%)를 유지한 점 역시 침체라고 보기 어려운 이유다.

◇고용 호조의 어두운 이면

이에 맞서 미국 경제가 침체에 빠졌다거나 최소한 침체로 가는 길목에 서 있다고 보는 진영이 내세우는 논거는 크게 두 갈래다. 먼저 고용지표 중 ‘가계 조사를 통한 취업자 수’와 ‘신규 실업수당 청구 건수’가 불안한 흐름을 보이는 점이다. 기업체를 통해 조사하는 ‘비농업 취업자 수’에 비해 가계 조사는 농업·자영업자·무급가족종사자가 포함되며 복수 직업을 가진 경우도 일자리 1개로 인식하기 때문에 고용의 ‘민낯’을 더 잘 보여주는 통계로 평가받는다. 이 지표가 지난 4월, 6월 각각 전년 대비 35만3000명, 31만5000명 감소했다. 취업자가 감소한 것은 팬데믹 초기인 2020년 3~4월 이후 2년 만이다.

신규 실업수당 청구 건수가 지난 4월 이후 오름세를 보이는 것도 미심쩍은 부분이다. 미 노동부에 따르면 해당 건수는 지난 4월 첫 주(16만7000건)에 연저점을 기록한 이후 꾸준히 상승해 이달 첫 주에는 26만건을 기록했다. 2018~2019년 평균이 20만건대였음을 감안하면 절대적 수준이 높은 것은 아니지만, 상승세가 가파른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침체론자들은 실업률이 낮은 것도 고령화로 경제활동 인구가 감소하면서 나타난 착시라고 주장한다. 실업률이 구직 활동을 기준으로 집계되기 때문에 고령 사회에서는 경기와 무관하게 낮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미국의 고령화율(65세 이상 인구 비율)은 2020년 기준 17%로 초고령 사회(20% 이상) 진입을 눈앞에 두고 있다. 고령화율이 22%에 달하는 독일도 지난 2분기 성장률이 정체(0.0%)됐지만 실업률은 40년 만에 최저 수준(5%대 초반)으로 떨어졌다. 고령화율이 30%에 육박하는 일본은 장기 저성장에도 실업률이 2%대에 불과하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와 팬데믹을 거치며 외국인 노동자 유입이 크게 줄어든 것도 미국 고용시장이 호조를 보이는 요인으로 꼽힌다. 2015~2016년 미국으로의 순유입 이민자는 100만명 정도였는데 2020~2021년에는 25만명까지 급감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이런 점들을 근거로 미국이 현재 “고용 호조 속 경기 침체(jobful recession)에 해당할 수 있다”고 평가했다.

◇경기 오판, 더 큰 침체 부를라

이 밖에 경기 침체론자들은 실질 소매판매가 4개월(지난 3~6월) 연속 마이너스인 점, 산업생산 증가율이 지난 2월 고점(7.0%) 이후 하락한 점, 제조업 구매관리자지수(PMI)가 3개월 연속 하락(59.2→52.2)한 점 등을 불안 요소로 꼽는다. ‘닥터 둠(doom·파멸)’으로 유명한 누리엘 루비니 미국 뉴욕대 교수는 최근 블룸버그에 “심각한 경기 후퇴 속에 부채·금융 위기를 겪을 요소들이 많다”며 “이것(경기 침체)이 짧고, 얕을 것이라는 생각은 망상”이라고 했다.

경기 침체 여부에 시장이 촉각을 곤두세우는 이유는 연준이 경기를 오판(誤判)해 통화정책을 그르칠 것을 우려해서다. 파월 의장은 지난달 기자회견에서 “경기가 둔화될 수 있지만 침체에 빠지진 않을 것”이라면서도 “침체를 피할 길이 좁아지고 있는 건 사실”이라며 모호한 태도를 보였다. 연준은 작년 내내 인플레이션이 ‘일시적 현상’이라고 오판해 물가 상승을 조기 진화할 기회를 놓쳤다는 비판을 받는다. KB증권 권희진 연구원은 “일자리 수에 더해 임금까지 계속 오르면서 연준이 공격적 금리인상 기조에서 당장 후퇴할 명분을 찾기 어렵다”며 “고용시장 호황이 연준을 오히려 딜레마에 빠뜨린 셈”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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