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상에 선 화물기사들.."생계도 벼랑 끝"

조해람 기자 2022. 8. 18. 2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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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트진로와 운송료 협상
접점 못 찾고 파업 장기화
일부는 본사 점거 '고공농성'
화물연대, 본사 앞 ‘농성 승리 결의대회’ 하이트진로 본사 점거농성 사흘째인 18일 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 조합원들이 서울 강남구 하이트진로 본사 앞에서 ‘고공농성 승리 결의대회’를 열고 있다. 권도현 기자

“서울 도심 30m 상공은 잠자리로 적절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18일 오후 3시쯤, 서울 강남구 하이트진로 본사 앞 도로에 설치된 대형 스피커를 타고 화물기사 김건수씨의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하이트진로 화물기사로 일하던 그는 지난 16일부터 동료 기사들과 본사 옥상 광고탑에 몸을 묶고 고공농성을 하고 있다.

본사 앞 3개 차로를 메운 1000여명의 화물기사들에게 그는 전화 연결로 상황을 설명했다. “고공농성의 긴장감과 피로, 스트레스로 모두 이틀 저녁 잠을 설쳤습니다. 모두 밝게 웃고 있지만 속으로는 힘든 내색입니다.”

하이트진로 화물기사들의 파업이 접점을 찾지 못하며 78일째로 장기화되고 있다. 투쟁 돌입 시점부터 세면 19일로 100일째가 된다. 사측과의 교섭에 전혀 진전이 없자 화물기사 70여명은 지난 16일부터 하이트진로 본사 점거농성에 돌입했다. 일부 조합원은 옥상 광고탑에서 고공농성을 시작했다. 화물연대의 상급단체인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는 이날 오후 하이트진로 본사 앞에서 ‘고공농성투쟁 승리 결의대회’를 열고 “물가는 매년 오르고 하이트진로의 영업이익도 매년 상승하지만 화물노동자들의 운임은 15년째 그대로다. 생계가 벼랑 끝으로 내몰리게 돼 절박함을 호소하고자 파업투쟁에 돌입했다”고 했다.

하이트진로 화물기사들은 운송료 현실화를 요구하며 파업을 시작했다. 하이트진로의 물류 위탁 계열사인 ‘수양물류’ 소속으로 이천·청주 공장에서 소주를 운반하던 기사들은 2022년 3월 화물연대에 가입했다.

화물연대 가입 이후에도 상황이 달라지지 않자 기사들은 지난 6월2일 파업에 돌입했다. 이들은 이천·청주 공장을 중심으로 공장 문을 막고 시위를 벌였다. 사측은 기사들에게 계약 해지를 통보하고 손해배상 소송을 걸었다.

지난 6월8일 수양물류 소속 기사 132명은 ‘업무에 복귀하지 않으면 계약을 해지하겠다’는 내용증명을 받았다. 사측은 “실제 계약 해지한 파업 적극 가담자 12명을 제외하면 통보만 한 상태이며, 언제라도 복귀하면 받아줄 의향이 있다”고 했다.

하이트진로는 업무방해·불법행위를 이유로 지난 6월17일 기사 11명을 상대로 5억원대의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이 금액은 파업이 장기화되면서 28억원으로 늘었다. 주택 등에 대한 가압류도 진행됐다. 지난 7월22일 법원이 하이트진로의 이천공장 앞 집회금지 가처분 신청을 받아들이자 기사들은 지난 4일부터 집회 장소를 강원 홍천 공장으로 옮겼다. 기사들은 또 지난 16일 하이트진로 본사 점거에 나섰다.

사측 “불법…공권력 나서야”
시민단체 “국가가 해결해야”

파업 장기화의 가장 큰 원인은 원청인 하이트진로의 ‘책임 회피’라는 지적이 나온다. 하이트진로는 “수양물류와 본사는 별도의 회사이며, 원청이 화물기사들의 교섭에 개입하는 것은 하도급법상 허용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노조는 이 사태의 책임이 명백히 원청인 하이트진로에 있다고 주장한다. 주무부처인 고용노동부는 사실상 손을 놓고 있다. 노동·종교·법률 등 55개 시민단체는 이날 오전 용산 대통령실 청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제는 국가가 나서서 해결해야 한다. 하이트진로에 성실 교섭 의무를 부과하고 특별근로감독을 실시해야 한다”고 했다.

조해람 기자 lenno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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