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적] 법제처의 추락

오창민 기자 2022. 8. 18. 2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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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완규 법제처장. 연합뉴스

검찰의 직접 수사 범위를 확대한 ‘한동훈 법무부’의 시행령이 검찰 수사권을 축소한 법률(개정 검찰청법·형사소송법)에 위배된다는 지적은 이완규 법제처장에게 우이독경이고 마이동풍인 모양이다. 법무부의 시행령 개정 작업이 법으로 규정한 40일 이상의 입법예고 기간조차 거치지 않고 급속 추진되고 있지만, 이 처장은 “제때 정비해 사법체계 혼란을 방지할 필요가 있다”고 법무부를 옹호했다. 공직자 인사 검증을 담당하는 법무부 산하 인사정보관리단 신설은 입법예고 기간이 단 이틀이었는데, 이 역시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해석했다.

이 처장은 행정안전부 산하 경찰국 신설에도 문제없다고 판단했다. 경찰의 중립성 훼손뿐 아니라 위법 소지가 크다는 여론이 비등한데도 눈을 감았다. 이명박 정부에서 법제처장을 지낸 이석연 변호사는 이를 두고 “명백한 위헌이고, 법치주의의 근간을 흔드는 일”이라고 말했다. 대한민국 법률 어디에도 행안부 장관이 관장하는 사무로 경찰이나 치안을 명시한 조문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처장은 “별도의 법률 개정 없이 직제 개정으로 설치할 수 있다”고 했다.

이 처장은 검사 출신으로, 윤석열 대통령과 막역한 사이다. 두 사람은 서울대 법대 79학번 동창인 데다 사법연수원도 동기다. 이 처장은 검찰 재직 때 ‘최고의 형사법 이론가’라는 소리를 들었다. 2003년 ‘전국 검사와의 대화’에서는 당시 노무현 대통령 면전에서 쓴소리를 한 적도 있다. 하지만 그가 법제처장으로 내린 결정을 보면 이런 세간의 평가가 무색하다. 일개 검찰주의자에 불과해 보인다. 최고 권력자인 친구를 맹종하는 느낌마저 든다. 표절 의혹을 받는 김건희 여사의 논문에 면죄부를 주려는 국민대 측이 논문 검증시효와 관련해 법제처에 유권 해석을 요청한 배경이 이해가 된다.

법제처는 법령의 해석권을 갖고 있는 정부 기관이다. 법률의 위헌 여부와 다른 법령과 모순되는지를 심사하는 매우 중요한 기능을 한다. 그런 법제처가 윤석열 정부의 시행령 통치와 김 여사를 위한 방패막이로 활용되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이 처장은 자신이 법제처의 존재 이유를 흔들고 있다는 지적을 되돌아보아야 한다.

오창민 논설위원 riski@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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