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루한 달동네 온기로 가득 채우다
빌딩 숲 사이 초라한 판잣집
스케치 후 한지 구겨서 붙이고
아크릴 물감으로 색 입혀 표현
창·골목서 포근한 빛 새어나와
유년시절 기억, 작품에 반영
"잊혀진 것에 파라다이스 선물"

그렇게 시작된 작가의 분신 같은 판잣집 작품들이 아트페어와 화랑가에서 대중의 사랑을 받으면서 점차 변해갔다. 미술시장에서 확고한 인기작품 지위에 올라 있는 지금은 따뜻하고 평화로운 느낌이 가득하다는 감상을 듣는다. 이젠 더 이상 비참한 현실 속 정체불명의 건축물, 위태로운 임시거처가 아니라 대지에 뿌리내린 단단한 공동체 풍경으로 인식된다. 마치 상처와 트라우마를 치유하는 것이 사랑과 애정임을, 작품이 걸어온 나름의 역사가 보여주는 셈이다. 정영주 작가 스스로도 “경제적으로 어렵던 시절의 트라우마가 이 작업을 지속하면서, 또한 이 작업이 점차 큰 사랑을 받으면서 치유되고 있고, 치유되고 있는 나 자신이 다시 작품에 반영되고 있다”고 말한다.
요즘 서울 종로구 삼청로에 위치한 갤러리 학고재에는 이렇게 따뜻하고 정겨운 판잣집 풍경을 보려는 관람객들로 연일 발 디딜 틈이 없다. 정 작가 개인전 ‘Another World(어나더 월드)’ 현장이다.



시장에서의 인기, 인기를 반영하는 가격 상승세의 반대편에는 정 작가의 소재를 ‘빈곤 포르노’로 여기며 불편함을 말하는 이도 있다. 오랫동안 변화 없이 규격화된 상품으로서 작품을 선보이고 있다는 평도 있다. 그런 그가 예술성과 역사성을 중시해온 국내 메이저 갤러리 기획하에 전시를 펼친다는 소식은 관심이 쏠릴 만했다.

“심리적이고 정신적인 유대를 영원히 그리워하는 것이야말로 우리의 숙명일 것이다. 진정으로 인간은 심리적, 정신적 상태와 조건으로부터 분리될 수 없다. 이것을 다시 회복하는 것이야말로 철학과 예술의 영원한 과제일 것이다. 정영주 작가는 영원히 끝날 수 없는 중대한 과제를 수행하는 세계에서 몇 안 되는 작가 중 한 사람이다. 정서의 회복과 회화의 복권을 위해서 오늘도 종이를 오리고 선과 면의 세계에 침잠하다 그 세계에 빛을 밝히고 있다.” 21일까지.
김예진 기자 yeji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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