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플레, 짧아도 6~12개월은 이어져.. 소비재 시장 격변 일으킬 것"

안상현 기자 2022. 8. 18.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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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EKLY BIZ] 닐슨IQ의 사전트 아·태 총괄 CEO

“인플레이션(지속적 물가 상승)은 짧으면 6~12개월 정도 이어질 것입니다. 이보다 더 장기화하고 심각해질 가능성도 있습니다.”

소비재 분야에 특화된 글로벌 시장조사기관 닐슨IQ에서 아시아·태평양 지역을 총괄하는 저스틴 사전트 아태지역 CEO(최고경영자)가 세계 경제의 최대 화두인 인플레이션에 대해 내놓은 전망이다. 지난달 사업 점검차 한국을 찾은 사전트 CEO는 “인플레가 소비자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기업들 우려가 크다 보니 관련 데이터 분석 의뢰도 많이 들어온다”며 “이번 인플레는 유럽을 넘어 아시아까지 번지는 등 전 세계적인 현상이라는 점에서 과거 인플레보다 불확실성이 높고, 장기화할 가능성도 커 보인다”고 말했다.

지난달 21일 서울 중구에 있는 닐슨IQ 한국 지사에서 만난 저스틴 사전트 아시아·태평양 지역 CEO. 소비재 부문 데이터 전문가인 그는 세계 경제를 위협하는 인플레이션이 최소 6개월 이상 이어질 것이라며 "앞으로 2~3개월 뒤면 소비 패턴에도 변화가 감지될 것"이라고 말했다. /오종찬 기자

◇“가격 전가, 곧 한계 다다를 것”

사전트 CEO는 영국 출신으로 대학에서 통계와 경제학을 전공한 뒤 글로벌 소비재 기업 P&G(프록터앤드갬블)를 거쳐 닐슨IQ에서만 28년째 종사한 데이터 분석 전문가다. 그가 몸담고 있는 닐슨IQ는 TV 시청률 조사 기관으로 세계적 명성을 가진 미국 닐슨그룹의 소매·소비자 행동 분석 담당 부문으로 시작해 지난해 분사했고 사모펀드 에드벤트인터내셔널에 약 30억달러(약 3조9000억원)에 인수되며 완전히 독립했다.

소비재 분야에서 거의 한 세기 동안 데이터를 수집해 온 기업답게 현재 109국에 진출해 있다. 코카콜라·P&G·킴벌리클락 같은 글로벌 소비재 기업을 비롯해 아모레퍼시픽·CJ·농심·동서식품 등 국내 상장 소비재 기업 중 75%가 닐슨IQ 서비스를 이용 중이다.

사전트 CEO는 “현재 많은 소비재 기업들이 가파른 물가 상승에 따른 수요 감소와 함께 인건비나 물류, 원자재 비용 상승에도 수익성이 악화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그만큼 제품 가격을 올려 소비자에게 비용을 전가했기 때문이다.

닐슨IQ의 데이터 분석에 따르면, 올해 1분기 기준 국내 소비재 시장의 판매 감소율이 4.1%를 기록했지만, 판매 수익은 오히려 0.4% 늘어난 것으로 집계됐다. 식품 같은 필수 소비재는 가격 탄력성이 낮은 만큼 기업들이 제품당 평균 판매 가격을 4.4% 올리는 방식으로 수요 감소 효과를 상쇄시킨 것이다.

해외 기업들도 마찬가지다. 세계 최대 소비재 기업으로 꼽히는 유니레버는 올 2분기 제품 평균 가격을 전년 동기 대비 11.2% 올리며 판매 감소(-2.1%)에도 매출을 8.8% 끌어올렸다. 킴벌리클락과 코카콜라, 맥도널드 같은 기업들도 같은 시기 가격을 10% 안팎으로 인상했다.

다만 사전트 CEO는 인플레 장기화가 예상되는 만큼 가격만 끌어올리는 전략을 지속적으로 끌고 가선 안 된다고 봤다. “당장 소비 급감은 보이지 않지만 2~3개월 후에는 소비 패턴 변화가 가시화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인플레를 핑계로 무턱대고 가격을 끌어올리는 전략은 종국에는 소비자들의 외면을 받을 것입니다.”

그는 “이제 가격 결정력은 시장 선도 기업이 아닌 소비자들의 선택을 받는 브랜드가 가져가게 될 것”이라며 “기업은 이익과 소비자의 신뢰 사이에서 균형을 유지하려고 노력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실제 한국 소비 시장에선 이미 소비 패턴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 가령, 국내 대표 전자상거래 플랫폼 쿠팡에서 올해 비(非)식품군 10대 판매 상품 종류(SKU) 중 쿠팡 자체 브랜드(PB) 제품이 4개나 된다. 2년 전만 해도 이 비중은 2개에 불과했다. 유통업체가 제조업체에 직접 위탁 생산해 유통하는 PB 제품은 기성 제품보다 저렴한 가격이 특징인데 물가 상승기가 되자 특히 큰 인기를 끌고 있는 것이다.

중소·중견 기업들의 약진도 눈에 띈다. 닐슨IQ 집계 결과, 올 1분기 기준 총 소비재 제조업체들의 전년 동기 대비 실적은 0.5%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지만, 100위권 밖의 중소·중견 기업들의 성장률은 4.3%에 달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시장의 약 90%를 차지하는 100위권 내 소비재 제조업체 대부분이 역성장하는 상황에서 군소 기업들은 오히려 성장한 것이다. 사전트 CEO는 “유통 물류 및 전자상거래 인프라가 잘 갖춰진 나라일수록 온라인 중소 업체(SMB)가 빠르게 성장하는 경향이 있다”고 설명했다.

◇“이커머스, 종합몰에서 전문몰로 분화”

소비재 시장에 불어닥친 태풍은 인플레이션만이 아니다. 팬데믹을 거치면서 디지털 전환과 함께 고속 성장하던 전자상거래 시장 성장세 역시 둔화하고 있다. 올해 국내 전자상거래 거래액은 전년 대비 10.7%로 성장할 것으로 추산되는데, 팬데믹 전 성장률이 20% 안팎이던 걸 감안하면 성장세가 크게 꺾였다. 사전트 CEO는 “전자상거래 시장이 이제는 성장보단 수익성 중심으로 재편되고 있다”며 “한국은 전자상거래 분야 선도 국가인 만큼 그 변화상을 유심히 살펴보고 있다”고 했다.

재편되는 전자상거래 시장에서 그가 주목하는 분야는 카테고리 전문몰이다. 신선식품에 집중하는 마켓컬리나 패션 전문몰 무신사, 헬스&뷰티에 주력하는 CJ올리브영 등 특정 분야 제품이나 고객층에 집중하는 전문몰의 강세가 지속될 것이라 본 것이다. 사전트 CEO는 “소비자들이 온라인 구매에 익숙해질수록 종합몰에서 이탈하는 경향이 커질 것”이라며 “소비자들의 온라인몰 이용 습관이나 선호도 역시 더 세분화되고 전문적으로 변할 수 있다”고 했다.

전문몰에서 많이 취급하는 한정 상품이나 단독 상품, 프리미엄 상품들은 기업들의 인플레이션 헷지(위험 회피) 수단으로도 이용될 수 있다. 제품 가격 인상에 소비자 반발이 가장 큰 이유는 제품의 변화가 없기 때문인데, 원료·품질·포장 등이 달라지거나 친환경·유기농·무설탕·비건 같은 건강 중심의 가치가 담긴 상품은 이런 반발을 상쇄시킬 수 있다. 가격 인상의 명분으로 활용되는 것이다.

실제 건강을 강조하는 식품들은 가격 인상과 무관하게 판매가 늘고 있다. 닐슨IQ 분석에 따르면, 제로 슈가(무설탕) 탄산 음료는 올해 3월 기준 지난 1년간 전년 동기 대비 122%, 무알코올 맥주는 129.4%의 성장세를 보였다. 사전트 CEO는 “한국은 풀필먼트(물류업체의 배송시스템)와 전문몰, 소셜커머스 등 다양한 요소에서 선도적인 트렌드를 보이는 시장”이라며 “기업들 역시 과거 시장 변화나 마케팅 전략을 답습하기보단 매년 새 전략을 마련해 점점 세분화되는 시장에 대처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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