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가 골 넣고 상의 던지자 나이키가 웃었다

성유진 기자 2022. 8. 18. 19:00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WEEKLY BIZ]
지난달 31일 영국 런던에서 열린 '여자 유로' 결승전에서 잉글랜드팀의 클로이 켈리 선수가 결승골을 넣고 환호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지난달 31일(현지 시각) 영국 런던에서 열린 ‘2022 여자 유럽축구선수권 대회(여자 유로)’ 결승전. 잉글랜드와 독일이 1-1로 맞서던 연장 후반 5분, 잉글랜드의 클로이 켈리 선수가 결승골을 넣고 환호를 지르며 상의를 벗어 던졌다. 그가 안에 입고 있던 것은 나이키 로고가 선명하게 찍힌 스포츠 브라. 다음 날 아침 주요 영국 신문들에 이 사진이 대문짝만 하게 실렸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는 “나이키가 발 빠르게 여성 스포츠에서 기회를 포착한 덕분에 ‘암사자 군단(Lionesses)’ 승리의 후광 효과를 누릴 수 있었다”고 전했다.

이날 결승전을 포함해 이번 여자 유로 대회에는 총 57만명 넘는 관중이 입장했다. 2017년 네덜란드 대회 때의 관중 기록(24만명)을 훌쩍 뛰어넘은 것이다. 결승전에만 8만7192명이 입장해 역대 최다를 기록했고, BBC 생중계로 경기를 본 사람도 1740만명에 달했다. 전문가들은 이번 대회가 지난 수년 사이 유럽에서 높아진 여자 축구의 인기를 입증한 무대였다고 평가한다. 축구뿐 아니라 여자 농구와 여자 크리켓 같은 종목에서도 최근 몇 년간 시청자와 관중 수가 크게 증가하는 추세다. 여기에 직접 운동을 즐기는 여성들이 늘면서 여성 스포츠 시장이 급성장하고 있다.

◇ 女축구 관중 5년새 2배로… 여성 스포츠가 뜬다

여자 프로 스포츠 인기는 아직 남자 경기에 훨씬 뒤처져 있지만 관심은 빠르게 늘고 있다. 작년 미국 여자 프로농구 포스트시즌 평균 시청자 수는 2년 전보다 42% 증가했다. 캐시 엥겔버트 전미여자농구협회(WNBA) 총재는 “작년 시즌에 2008년 이후 가장 많은 시청자를 확보했고 상품 판매와 소셜미디어 참여 역시 크게 늘었다”고 말했다. WNBA는 지난 5월 시작한 올 시즌 팀당 경기 수를 기존 34경기(코로나 때는 32경기)에서 36경기로 늘렸다.

지난 3·4월 뉴질랜드에서 열린 여자 크리켓 월드컵은 국제크리켓협회(ICC) 공식 채널에서 총 16억4000만 조회 수를 기록했다. 2017년 영국에서 열린 대회가 1억 뷰에 그쳤던 것과 대조된다. TV로 경기를 본 사람도 전 세계적으로 누적 1억480만명에 달했다. 호주에선 작년 여자풋볼리그(AFLW) 시청자 수가 2019년 대비 58% 급증했다.

여성 스포츠에 대한 관심 증가는 유튜브 같은 온라인 채널 성장과 연관돼 있다. TV는 방송 시간과 채널이 한정적이라 보통 남자 경기 중계를 더 많이 편성했고, 자연스럽게 여성 경기는 소외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온라인 채널이 보편화하면서 이런 제약이 사라지고 있다. 영국 방송사 스카이스포츠는 2020년부터 자사 유튜브 채널을 통해 WNBA, 여자 럭비·크리켓 같은 경기 방송을 대폭 늘렸다. 비슷한 시기 북미여자아이스하키리그(NWHL)는 동영상 플랫폼 트위치와 3년짜리 생중계 계약을 체결했다.

새로운 기회를 엿본 기업들은 후원을 늘리고 있다. 영국 경제지 이코노미스트는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여자 축구에 투자하는 것은 단지 (여성을 차별한다는) 비난을 피하려는 조치였지만 이젠 기업들의 태도가 변하고 있다”고 전했다. 영국 투자은행 바클리는 작년 말 2022~2025년 여자 축구에 기존의 두 배가량인 3000만파운드(약 480억원) 이상을 투자하고 ‘FA 위민스 챔피언십’ 타이틀 스폰서도 맡는다고 밝혔다. 미국 US뱅크는 지난 3월 보통 남녀 리그를 같이 후원하던 관행을 깨고 여자 농구리그와만 계약을 맺었다. WNBA는 스폰서십 판매와는 별도로 올해 나이키 등으로부터 총 7500만달러(약 980억원) 규모의 지분 투자도 받았다.

한국에서도 여자 프로 스포츠 인기가 늘어나는 추세다. 한국프로스포츠협회가 발표한 ‘2021 프로스포츠 관람객 성향조사’ 자료에 따르면 여자 프로배구·프로농구 관람객 가운데 2019년 이후 응원 구단 응원을 시작했다고 응답한 비율은 각각 59.8%, 48.8%로 남자 리그(각각 45.8%, 35.9%)보다 높았다. 프로축구(35.1%), 프로야구(22.8%)와 비교해서도 월등히 높다. 새로운 팬 유입이 활발하다는 의미다. 신세계그룹이 2019년 대한축구협회와 공식 파트너 협약을 맺고 2024년까지 여자 국가대표팀 경기력 향상 등에 100억원을 지원하기로 하는 등 후원 계약도 늘고 있다.

스포츠웨어 브랜드 푸마(위 사진)와 룰루레몬은 여성 발에 맞춰 설계한 러닝화를 출시했다. /푸마·룰루레몬

◇운동하는 여성 잡아라

코로나 이후 일상에서 운동하는 여성이 늘어나며 여성 스포츠용품 시장이 북적이고 있다. 미국 스포츠웨어 브랜드 언더아머는 지난 6월 여성용 라스트(발 모양 틀)를 기반으로 한 첫 러닝화를 출시했다. 언더아머 측은 “전통적인 여성 러닝화는 종종 여성 발에 맞게 사이즈를 줄인 남성용 신발에서 파생돼 여성이 필요로 하는 기능이 부족한 경우가 많았다”며 “이번에 출시한 제품은 여성 데이터와 피드백을 활용해 처음부터 여성 전용 신발로 만들어졌다”고 했다. 스포츠 브랜드 푸마도 여성용 사이즈로만 제공되는 러닝화를 공개했고, 요가복 업체 룰루레몬 역시 올해 여성 맞춤 운동화를 출시했다.

스포츠 브랜드 푸마가 지난 6월 내놓은 여성 전용 러닝화. 멕시코의 유명 여성 화가 '프리다 칼로' 작품에서 영감을 얻었다. /푸마

전부터 여성 전용 운동화를 만들어온 브랜드들은 최근 들어 제품군을 더 확장하고 있다. 아디다스는 올 초 여성 축구 선수 의견을 적극적으로 반영한 축구화를 출시했고 작년엔 생리 때 입기 편한 운동복을 내놓기도 했다. 아디다스는 지난 2월 여성 선수들과 함께하는 ‘불가능, 그것은 아무것도 아니다(Impossible is nothing)’ 캠페인도 시작했다.

여성 스포츠 시장이 커지자 올 초 아디다스는 피겨스케이팅 선수 유영을 포함해 여성을 전면에 내세운 캠페인을 시작했다. /아디다스

시장조사업체 NPD그룹에 따르면 작년 미국의 남성용 운동화 매출은 전년보다 17% 늘어난 반면, 여성용 운동화 매출은 24% 늘었다. NPD 선임 고문인 매트 파월은 “스포츠 산업에서 여성용 제품은 가장 큰 실패이자 가장 큰 기회로 남아 있다”며 “여성 고객에게 초점을 맞춘 특화 브랜드들이 번창하고 있고 앞으로 더 크게 성장할 것”이라고 했다.

한국에서도 운동을 즐기는 여성들이 많아지고 있다. 여성을 위한 운동 일일수업을 제공하는 업체 위밋업스포츠는 2019년만 해도 한 달 이용자 수가 50~60명에 그쳤지만 최근엔 500~600명까지 늘었다. 수업 종목도 2~3가지에서 농구, 배구, 럭비 등 10개 이상으로 늘었다. 신혜미 대표는 “주로 다이어트 목적으로 운동하던 예전과는 달리 요즘 여성들은 운동 자체를 즐기거나 새로운 활동에 도전해보고 싶어한다”고 말했다. G마켓에 따르면 전년 같은 기간과 비교해 올해 상반기 여성 고객의 축구용품 구매는 21%, 배구용품은 44%, 트레킹화는 153% 늘었다.

WEEKLY BIZ Newsletter 구독하기https://page.stibee.com/subscriptions/146096

Copyright © 조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