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의 싸움

한겨레 2022. 8. 18.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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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와 쓰는 계약서도 몇줄만 읽으면 머리가 지끈거려 중요사항만 보고 치워두는 내가 최근에 그 어렵다는 법조문을 조금 읽어보게 됐다.

이것은 순전히, 법무부에서 얼마 전 개정된 검찰청법 시행령안이 나오면서 "~등"이라는 표현이 문제가 됐다는 신문기사에 낚인 결과다.

개정 전 시행령은 바로 그렇게 읽은 듯, "'부패범죄대형참사 등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중요 범죄'란 다음 각호의 범죄를 말한다"고 말한 다음 각 유형에 해당하는 죄목을 나열하고 끝맺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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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틱]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지난 11일 경기 과천 법무부 청사에서 검사의 수사개시 규정과 관련한 언론 브리핑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크리틱] 정영목 | 번역가·이화여대 통역번역대학원 교수

출판사와 쓰는 계약서도 몇줄만 읽으면 머리가 지끈거려 중요사항만 보고 치워두는 내가 최근에 그 어렵다는 법조문을 조금 읽어보게 됐다. 이것은 순전히, 법무부에서 얼마 전 개정된 검찰청법 시행령안이 나오면서 “~등”이라는 표현이 문제가 됐다는 신문기사에 낚인 결과다. 법조문에는 흥미가 없지만 텍스트 읽기가 문제가 됐다니 관심이 갔던 것이다. 거기에, 검찰청법 개정 자체는 물론 법 자체에 대한 식견도 없는 사람이지만 전문가가 아닌 나 같은 평범한 국민에게는 해당 텍스트가 어떻게 읽힐까 하는 호기심도 물론 있었다.

검찰청법은 제4조(검사의 직무)에서 “검사가 수사를 개시할 수 있는 범죄의 범위”를 규정하는데, 그 가운데 첫번째가 “부패범죄, 경제범죄, 공직자범죄, 선거범죄, 방위사업범죄, 대형참사 등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중요 범죄”다. 이것이 얼마 전 앞의 두개만 남기고 나머지는 삭제하는 식으로 개정돼 “부패범죄, 경제범죄 등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중요 범죄”가 됐다. 물론 검사가 수사를 개시할 범죄 범위를 줄이려는 의도였을 것이다. 이에 대해 법무부는 그런 의도는 고려할 필요 없이 “법문언”만 볼 따름이라는 신비평적 반응을 보였는데, 이 또한 저자(입법부=국민의 대의기구)의 의도와 텍스트(법)의 관계라는 흥미로운 문제를 제기한다. 어쨌거나 내가 참고한 법제처 제공 법령에서는 “제정·개정 이유”도 검색이 가능한 것으로 보아 법 전문가들도 이런 이유를 다 무시하는 것은 아님을 짐작할 수 있다.

구체적으로 “부패범죄, 경제범죄 등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중요 범죄”에서 “등”은 실제로 간단치 않은 문제로 보인다. <표준국어사전>을 보면 이 “등”은 “1. 그 밖에도 같은 종류의 것이 더 있음을 나타내는 말. 2. 두개 이상의 대상을 열거한 다음에 쓰여, 대상을 그것만으로 한정함을 나타내는 말”이라고 나오는데 이 두 의미는 모순되는 것 아닌가. 이번에 법무부 시행령은 “등”을 1번 뜻으로 이해했다. 따라서 부패·경제범죄 외에도 중요 범죄를 대통령령으로 추가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 대목만 보자면 이런 해석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

그런데 이렇게 읽을 때 중요 범죄는 부패·경제범죄와 동격이 된다. 즉, 구체적 죄목이 아니라 법무부 표현대로 범죄 “유형” 또는 “범위”가 된다. 따라서 법무부가 해석하는 대로 부패·경제범죄 외에 다른 중요 범죄 유형을 추가할 수 있다는 뜻이 된다. 곧 법을 시행하는 쪽에서 중요하다고 간주하는 모든 유형을 추가할 권한이 있다는 것이다. 과연 그런 것일까? 그것이 “하위법령 위임의 전형적 규정 방식”일까? 상위법령에서 “유형”을 규정했으면 하위법령에서는 그 유형에 들어가는 세목을 규정한다는 것이 평범한 국민의 상식 아닐까?

그렇다면 그런 상식에 맞도록 “등”의 뜻을 2번으로 읽을 수는 없을까? 다시 말해 부패범죄, 경제범죄 등 2개 중요 범죄는 수사를 개시할 수 있으며, 여기에 들어가는 구체적 죄목은 대통령령으로 정한다는 식으로. 개정 전 시행령은 바로 그렇게 읽은 듯, “‘부패범죄…대형참사 등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중요 범죄’란 다음 각호의 범죄를 말한다”고 말한 다음 각 유형에 해당하는 죄목을 나열하고 끝맺었다.

하지만 이 논란이 정리된다 해도 문제는 끝나지 않는다. 시행령안에서 이보다 앞에 있는 게 “부패·경제범죄의 개념 정의 및 재분류”다. 이것은 형식적으로는 하위법령 위임 방식에 어긋나지 않으나,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에 대해 확고한 입장이 없던 나 같은 사람의 눈에도 그 자의적 범위 확대는 언어를 통한 소통의 기초를 흔드는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결국 자구 해석 문제란 사실 자구 해석 문제가 아님을 새삼 깨닫게 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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