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효성 있는 재정준칙으로 나랏빚 관리해야..독립적 재정기구 필요"

윤희훈 기자 2022. 8. 18. 1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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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세연·행정학회 '재정준칙 컨퍼런스' 개최
"복지 지출 지속 위해서도 재정건전성 담보돼야"
"재정준칙, 재정 활용 제한 아닌 안정적인 활용 지원"
기재차관 "재정준칙 국회 통과 만만치 않을 것..정치권 인식 전환 절실"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장관이 18일 오후 서울 중구 예금보험공사에서 열린 '재정의 지속가능성을 위한 재정준칙 컨퍼런스'에서 축사를 하고 있다. /뉴스1

문재인 정부 임기 5년 동안 국가채무가 400조원 이상 증가하는 등 최근 급격히 늘어난 나랏빚을 관리하기 위해서는 실효성 있는 재정준칙을 도입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왔다. 재정준칙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재정준칙을 어겼을 때의 교정 장치를 마련하고, 전문적이고 독립적인 재정기구를 신설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국내 재정 전문가들은 18일 오후 서울 중구 예금보험공사에서 열린 ‘재정준칙 컨퍼런스’에서 재정의 지속가능성을 위해선 재정준칙이 필요하다고 한목소리를 냈다.

재정준칙은 재정수지와 재정지출, 국가채무 등 재정지표에 대한 목표치를 제시하고 이를 달성할 수 있도록 재정운용을 제약하는 재정운용체계를 말한다. 윤석열 정부는 재정건전성 확보를 국정과제로 삼고 재정준칙 법제화를 추진 중이다.

정부는 현재 관리재정수지 적자를 국내총생산(GDP) 대비 △3%대로 관리하고, 국가채무비율이 GDP대비 60%를 초과할 경우 적자 폭을 △2%대로 축소하는 재정준칙을 설계한 상태다.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이날 컨퍼런스에서 “이번(9월) 정기국회에서 재정준칙 법제화를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이날 토론회에서 전문가들은 재정준칙의 필요성에 공감대를 표했다. 컨퍼런스 기조 발제를 맡은 오연천 울산대 총장은 “수출입의존비율이 높은 경제구조와 기축통화국의 영향에 민감한 우리나라의 국제적 위상을 감안할 때, 대외관계의 불확실성에 대처할 수 있는 재정의 대응력은 국가 공신력을 담보할 수 있는 최후의 보루”라며 “재정 건전성을 유지하기 위한 노력에는 여야가 따로 있을 수 없다”고 말했다. 재정준칙 법제화가 야당의 반발로 무산될 가능성을 염두에 둔 발언으로 해석된다.

오 총장은 “효율적인 정부를 지향하는 쪽은 물론, 복지 확대가 중요하다고 보는 적극적 재정론자의 입장에서도 복지 지출의 지속적인 실현을 위해서는 재정의 건전성이 담보돼야 한다는 상식을 잊어선 안 된다”며 “재정건전성 훼손을 방치한다면 기존 정책의 유지조차 난관에 부딪힐 수 있다”고 강조했다.

18일 서울 중구 예금보험공사에서 열린 재정준칙 컨퍼런스에서 재정 전문가들이 토론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김정훈 재정정책연구원장, 박명호 홍익대 경제학부 교수, 박봉권 매일경제 논설위원, 염명배 충남대 경제학과 명예교수, 박노욱 한국조세재정연구원 선임연구위원, 박정수 이화여대 행정학과 교수, 배인명 서울여대 행정학과 교수. /윤희훈 기자

‘재정준칙 도입의 필요성과 방향’ 발제를 맡은 김태일 고려대 행정학과 교수는 “재정준칙은 본원통화 창출에 대한 불안을 제거해 물가 안정 등 거시경제 안정성을 높일 것이고 건전한 재정은 통화·환율 정책 수행에 긍정적”이라며 “정부 재정 운용에 대한 불확실성이 줄어 대내외 시장 및 국민의 신뢰를 확보하는 효과도 기대된다”고 말했다.

김태일 교수는 재정준칙이 경기 부양을 위한 재정 지출 확대를 가로막을 것이라고 재정준칙 비판론자의 주장을 언급한 뒤, “코로나19 상황을 제외하더라도 최근 한국의 국가채무 증가율은 다른 국가들보다 매우 빠른 편”이라고 꼬집었다. 그는 이어 “재정준칙은 필요한 재정수단의 활용을 제한하는 게 아닌 안정적인 활용을 지원하는 것”이라며 “재정준칙의 궁극적인 목표는 재정 성과 제고”라고 말했다.

김우철 서울시립대 세무학과 교수는 “경제발전에 따른 복지수요 증대, 행정부처의 이기주의, 선거 과정에서 예산의 정치적 수단화, 다음세대가 져야 하는 빚에 대한 현세대의 무책임으로 정부 지출이 지속적으로 증가한다”며 “한국의 경우 저성장과 고령화로 인해 재정 여건이 다른 선진국보다 빠르게 악화되는 실정”이라고 진단했다.

김우철 교수는 이어 “국가채무비율에 단순 상한선을 설정하는 방식은 피하고, 재정지출증가율을 명목성장률에 준하는 수준으로 통제하는 지출준칙 활용을 적극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재정준칙이 재정의 역할을 크게 약화시킬 것이라는 주장은 근거가 부족하다”며 “재정준칙에 의한 채무 통제가 반드시 작은 정부를 의미하는 것도 아니다”고도 했다.

조영무 LG경영연구원 연구위원은 “재정 여력 평가시 우리나라는 장기적으로 통일 가능성에 대비해야 한다는 특수성도 고려해야 한다”며 “재정 건전성 유지는 경제 리스크 관리뿐만 아니라 국가적 관점에서도 매우 중요한 과제”라고 했다. 조 연구위원은 “출산율 저하와 인구 감소, 급격한 고령화 추세만으로도 현 세대에 비해 다음 세대는 세금 부담은 늘어나고 연금 수혜는 줄어들 가능성이 매우 높다”며 “올해만 지나면 상황이 호전될 것이라는 낙관적 기대 하에 재정을 쓰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노욱 한국조세재정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기재부의 장기재정전망과 국가재정운용계획에 사용된 전망치 기준으로 보면 2027년까지 국가채무 55%, 관리재정수지 3% 이하를 유지하는 데에도 상당한 재정혁신 노력이 필요하다”며 재정적자 발생의 만성화 원인 분석과 목표치 설정에 근거한 근본적인 지출 구조조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박 선임연구위원은 유럽연합(EU), 스위스 등 주요국 사례를 참고해 재정준칙 위반 시 교정 장치를 만들어야 한다고 제안했다. 박 선임연구위원은 국가채무가 기준치(60%)를 초과할 경우, 관리재정수지 적자한도를 3% 이하로 조정하는 방안과 재정준칙에서 벗어나면서 발생한 국가채무를 기록하는 계정을 신설해 일정 기간 내에 해소하도록 하는 명시적 규정을 도입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전자는 재정운용의 경직성은 완화할 수 있지만 교정장치의 실효성은 한계가 있다는 지적을 받는다. 후자는 유연성은 떨어지지만 구체적 과정을 명시해 교정장치의 실효성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라는 게 박 선임연구위원의 설명이다.

재정 관련 결정과 모니터링을 위한 독립적인 기구가 필요하다는 의견도 다수 나왔다. 김태일 교수는 “재정준칙 이행을 모니터링하고 위반 시 교정 방안을 제시할 수 있는 독립적인 재정기구가 필요하다”며 “국회예산정책처가 독립 재정기구에 해당하지만 현행 구조로는 한계가 있다. 독립성을 지닌 위원회 구조로 전환해야 한다”고 말했다.

배인명 서울여대 행정학과 교수는 “정치인이나 행정부에 재정관련 정책 결정을 모두 맡기면 ‘확장적 재정쟁책’에 대한 유혹으로 인해 재정 건전성이 낮아질 수 있다”며 “정치적으로 중립적인 재정 기구를 설치해 재정관련 주요 정책이나 예산 규모 적정성에 대한 검증, 재정추계 등에 대한 객관적 검증 등의 임무를 수행하도록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옥동석 인천대 무역학부 교수도 “정치중립성을 위해 독립적인 재정위원회를 구성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옥 교수는 이와 함께 헌법에 재정준칙 내용을 규정한 독일의 사례를 소개하면서 “재정준칙은 정권의 이해와 무관하게 준수돼야 하기 때문에 국회의 통상적인 의결절차보다 더 엄격하게 할 필요가 있다”며 “재정준칙의 법적 구속력을 높이기 위해선 재정준칙 수정 조건을 국회 2/3 의결로 제한할 필요가 있다”고도 했다.

최상대 기재부 제2차관은 “컨퍼런스에서 재정준칙의 필요성과 역할을 강조했지만, 실제로 법제화가 되기까지 국회 통과의 여정은 만만치 않을 것”이라면서 “재정준칙이 법제화되기 위해서는 정치권의 전향적인 인식 전환이 절실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최 차관은 이어 “재정준칙 도입은 재정의 역할을 포기하겠다는 게 아니다”며 “엄격한 재정 운용을 지향하되, 재정의 역할은 제대로 하도록 하는 형태로 재정준칙을 설계하겠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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