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동맹 이점 극대화..美 과학계와 공동 R&D 적극 나설때"

워싱턴=고광본 선임기자 2022. 8. 18. 1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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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 과학기술인 특별좌담]
■ 글로벌 기술패권 시대, 韓 과학계가 갈 길은
미국내 유태인 활용 과기동맹 구축
이스라엘 사례 적극 벤치마킹을
기술유출 우려 적은 韓 장점 활용
美와 자본·인력·기술교류 늘려야
기존 산업 틀에 맞춰진 연구 탈피
의대-공대 융합연구 확대 조언도
미국에서 활동 중인 한국계 중견 과학기술인들이 16일(현지 시간) 미국 워싱턴DC에서 서울경제와 특별 좌담회를 갖고 모국과의 과학기술 협력 방안을 토의하고 있다. 명수아(왼쪽부터) 존스홉킨스대 교수, 원윤진 UC어바인 교수, 박승종 루이지애나주립대 교수, 손용호 차기 재미과학기술자협회장, 여운홍 조지아공대 교수, 조경현 뉴욕대 교수, 김덕호 존스홉킨스의대 교수. 사진 제공=한국과총
[서울경제]

“기술 패권 시대에 한국이 이스라엘이나 일본처럼 미국과의 국제 공동 연구 지원 프로그램에 적극 나서야 합니다. 특히 한미 동맹의 이점을 살려 과학기술 분야에서도 실질적으로 동맹을 꾀해야 합니다.”

미국에서 활동하는 한국계 중견 과학기술인 7명은 미국 워싱턴DC 인근 하이엇리젠시호텔에서 16일 밤(현지 시간) 서울경제와 특별 좌담회를 갖고 “여러 제약으로 쉽지만은 않은데 한국이 미국과의 공동 연구개발(R&D)을 확대하면 윈윈할 수 있다”며 이같이 강조했다. 패스트 팔로어(빠른 추격자)에서 벗어나 퍼스트 무버(선도자)로 도약해야 하는 시점에서 글로벌 R&D 강화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 좌담회는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와 재미과학기술자협회가 공동 주최한 한미과학기술학술대회(UKC)에서 한국계 석·박사와 박사후연구원(포닥)의 진로 멘토링을 위한 ‘SEED 2022’ 세션이 끝난 뒤 열렸다.

참석: 손용호 차기 재미과학기술자협회장, 김덕호 존스홉킨스의대 생명공학과 교수, 박승종 루이지애나주립대 컴퓨터공학과 교수, 원윤진 UC어바인 기계공학과 교수, 여운홍 조지아공대 기계공학과 교수, 조경현 뉴욕대 컴퓨터공학과 교수, 명수아 존스홉킨스대 생물물리학과 교수

사회: 고광본 선임기자

고광본 선임기자

우선 이 자리에서는 글로벌 기술 패권 전쟁을 활용해 한국이 미국에서 영향력을 키워야 한다는 제안이 나왔다. 김덕호 존스홉킨스의대 생명공학과 교수는 “이스라엘이 미국 내 유태인을 활용해 오래전부터 미국과 과학기술 동맹을 구축해왔다”며 “한국도 미국 주류 과학기술계와의 협력을 대폭 늘려야 한다”고 역설했다. 이 과정에서 한미 동맹을 활용해 자본·인력·기술 모두 활발하게 교류해야 한다는 게 그의 입장이다. 글로벌 기술 패권 전쟁이 가열되며 미국에서 기술 유출을 염려하는 시각이 큰데 한국은 이 부분에서 유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 기자가 미국 연구 현장을 조사한 결과 미 국립보건원(NIH)의 경우 대학 등 연구 과제를 수주하는 기관에서 자신의 과제를 수행할 때 외국인 포닥이 포함돼 있는지를 보고하도록 한다. 에너지부와 국방부 등에서도 연구 과제를 줄 때 외국인 석·박사나 포닥이 포함돼 있는지 따져본다. 그만큼 기술 유출에 대해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이다.

김덕호 존스홉킨스의대 교수
박승종 루이지애나주립대 교수

김 교수는 “한국은 반도체 등 정보기술(IT) 분야와 달리 바이오생명과학 쪽은 세계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2%도 안 된다”며 “재능 있는 한국의 바이오헬스케어 기업이 미국과 초기부터 협업하고 벤처캐피털(VC)도 미국의 메이저 투자자와 같이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유도만능줄기세포 기반 장기 칩(Organ-On-a-Chip)을 활용한 신약 개발 플랫폼을 내놓기 위해 ‘큐리바이오’를 창업했다. 미국과 한국에서 1000만 달러를 투자받고 글로벌 제약사들과도 계약을 수주했다.

박승종 루이지애나주립대 컴퓨터공학과 교수는 “한국연구재단이라든지 한국의 여러 과학기술 재단이 미국 과학기술 재단과의 파트너십이 부족하다”며 “이스라엘이 미국 유태인과 협력을 늘리는 것처럼 한국도 그렇게 해야 한다”고 힘줘 말했다. 그는 이어 “미 국립과학재단(NSF)에 한국계 PD(Project Director)가 몇 명밖에 없을 정도로 한국계 과학기술인의 미국 R&D 지원 기관 진출이 부진하다”며 “자연스레 과학기술 최강국인 미국에서 모국인 한국 재단들과의 공동 연구를 지원하는 프로그램이 많지 않은 게 현실”이라고 토로했다. 그러면서 한미 동맹의 이점을 살려 한국이 미국과의 공동 연구와 교류 확대에 적극 나서야 한다고 했다.

원윤진 UC어바인 교수
손용호 차기 재미과학기술자협회장

원윤진 UC어바인 기계공학과 교수는 “이스라엘은 NSF 등 과학기술 재단들과 협약을 맺고 교류 협력을 확대해왔다”며 “한국도 미국 기관들과 협약을 많이 맺고 조직적으로 공동 R&D에 박차를 가해 시너지를 내야 한다”고 말했다.

이날 한국계 과학기술인들은 한국에서 틀에 박힌 연구에서 벗어나고 의대·병원과 공대 간 융합 연구를 가속화해야 한다는 조언도 내놓았다.

차기 재미과학기술자협회장인 손용호 UCF(센트럴플로리다대) 재료공학과 석좌교수는 “한국의 대기업들에서 연구 과제를 수주해 진행하다 보면 틀에 박힌 연구를 원하는 경향이 있다”며 “한국이 기존 산업의 틀에 맞춰진 연구를 하면 퍼스트 무버가 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여운홍 조지아공대(조지아텍) 기계공학과 교수는 “조지아주의 최고 병원인 에머리대병원과 NIH 과제를 10개가량 공동으로 하고 있고 한국 병원들과도 연구 과제를 하면서 양국의 연구 문화 차이를 접하게 된다”며 “상대적으로 한국에서는 의사가 권위적인 면이 있고 의료 기기 연구도 공학자와 의사 간 협업이 잘 안 된다”고 아쉬움을 표했다. 건강진단 센서 업체를 창업한 여 교수는 실상 에머리대병원의 의사가 먼저 환자에게 필요한 의료 기기가 부족하다며 공동 연구를 제안해 이뤄진 것이라고 털어놓았다. 그 결과 병원 측과 지난 1년간 합심해 4년짜리 500만 달러 규모의 NIH 연구비를 수주, 여러 특허를 냈고 잠자거나 움직일 때도 가동하는 건강진단 센서를 1~2년 내 상용화할 것이라고 의지를 피력했다.

연구 현장의 다양성을 강조하는 목소리도 나왔다. 원 교수는 “한국 공대는 남성 위주이고 외국 학생도 많지 않은데 남녀와 국적 등 다양한 사람들의 배경을 인정하고 융합하는 데서 창의성과 혁신이 나온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면서 어려서 화가가 되는 게 꿈이었는데 그 영향을 받아 인공지능(AI)을 활용한 비전·이미지 프로세싱을 연구하게 됐다고 소개했다. 명수아 존스홉킨스대 생물물리학과 교수는 연구 문화와 관련, “미국 연구 현장처럼 자유로운 문화에다가 실수해도 자유롭게 얘기할 수 있고 동기부여를 하는 쪽으로 바꿔나가야 한다”고 했다. 한국 연구현장의 수직적인 문화가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이다.

여운홍 조지아공대 교수
조경현 뉴욕대 교수

이날 좌담회에서는 한국의 인재 유출(브레인 드레인) 현상과 관련해 먼저 인재가 맘껏 뛰어놀 수 있는 생태계를 갖춰야 한다는 조언도 나왔다. ‘제넨텍’이라는 AI 벤처를 창업해 엑시트한 조경현 뉴욕대 컴퓨터공학과 교수는 “인도네시아에 가서 발표한 적이 있는데 장관이 인재 유출을 고민하며 막을 방법을 묻더라”며 “이런 인재 유출 현상은 여러 나라의 공통적인 문제로 한국에서 인재가 돌아오게끔 환경을 만드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 연구 현장에서 다양성이 부족해 외국인이 활동하기 쉽지 않은 여건이라고 꼬집었다.

원 교수는 “한국 학생들이 미국 대학원으로 유학하는 경우도 상당히 감소하는 추세인데 이것도 염려된다”고 주장했다. 그나마 AI·반도체·바이오생명과학 등 관심이 뜨거운 분야의 유학생들은 대부분 미국의 대학이나 기업 등에 둥지를 트려고 하는 게 현실이다. 여기에 한국에서는 25년 전 IMF 경제위기 사태를 계기로 의대 선호현상이 본격적으로 부각돼 이공대 대학원의 인기가 시들해졌고 지금까지도 이런 추세가 이어지고 있다.

명수아 존스홉킨스대 교수

한국의 교육 시스템이 문제를 정의하는 방향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김 교수는 “한국 학생은 일반적으로 문제가 주어지면 잘 푼다. 이는 중국 학생도 마찬가지”라며 “하지만 세계적인 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인재를 키우려면 문제를 정의하고, 창의적으로 접근하고, 자기 주도적 리더십을 갖출 수 있는 교육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중학생 때 이민 온 손 석좌교수는 “한국 초중고·대학 학생의 기본 학습 역량은 미국보다 뛰어나다”며 “하지만 창업해 사업화에 나서거나 대학원에서 실험을 통해 이론을 만들 때 미국 학생이 더 능력을 발현하는 경향이 있는 것에 주목해야 한다”고 했다.

워싱턴=고광본 선임기자 kbgo@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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