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이 블록 레고'의 놀라운 변신..회의에 '창의성' 보태다

서울앤 2022. 8. 18. 1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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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보근 선임기자의 '비즈니스 코치를 위한 레고 시리어스 플레이 워크숍' 참가기

[서울&]

지난 14일 서울 강남구의 한 학습공간에서 열린 ‘비즈니스 코치를 위한 레고 시리어스 플레이 워크숍’이 끝난 뒤 퍼실리테이터인 최은정(가운데) 코치와 안나은(왼쪽부터)·서지영·조창환 코치, 그리고 강사윤(오른쪽부터)·양현주·김재훈 코치가 대한민국 최고 코칭회사의 성공 요인을 결합한 ‘하나의 큰 모델’을 앞에 두고 밝게 웃고 있다. 김보근 선임기자

1996년 레고를 회의용 도구로 ‘개발’

‘아이디어의 3D화’와 ‘메타포 사용’ 장점

나사 회의 등에 사용되며 활용도 높이고

2010년 오픈소스 공개로 폭넓게 확산

전문코치들, ‘기업 성공 비결 찾기’ 체험

페르소나 제작, 즉석 질문 등 ‘재미+효능’

참가자 아이디어 모아서 ‘큰 모형 완성’

“문제 안 풀릴 때 돌파구 마련에 유용”

27일까지 텀블벅에서 책 출간 펀딩중

“국내서도 좋은 회의 도구로 활용 기대”

“오늘 모인 코치님들이 코칭회사를 설립했는데, 5년 뒤인 2027년 대한민국에서 제일 유명한 코칭회사가 되었다고 가정합시다. 무엇 때문에 그게 가능했는지 ‘레고 모델’을 만들고 그 이유를 설명해주세요.”

진행촉진자(퍼실리테이터)인 최은정 삼성전자 엠엑스(MX)사업부 유엑스(UX) 리서처 겸 사내 코치의 말에 회의장에 모인 7명의 코치들이 깊은 생각에 잠겼다. 코치들 앞에는 대표적인 어린이 놀이 블록인 레고가 가득 쌓여 있었다. 과연 이 어린이 놀이 블록으로 진지한 회의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을까?

이런 의문이 잘못되었다는 듯 코치들은 이내 레고로 무엇인가를 열심히 만들기 시작했다. 지난 14일 서울 강남구의 한 학습공간에서 진행된 ‘비즈니스 코치를 위한 레고 시리어스 플레이 워크숍’ 현장 모습이다.

화면을 보면서 워크숍의 시작을 알리는 최은정 코치. 김보근 선임기자

이번 워크숍은 국제코칭연맹(ICF) 전문코치(PCC)이기도 한 최 코치의 번역 출간을 계기로 마련됐다. 최 코치가 삼성전자에서 같이 근무하는 안수정 디자이너와 함께 번역한 책은 <시리어스 워크>(사진). ‘레고 시리어스 플레이’에 대한 상세한 안내서다. 현재 펀딩사이트 텀블벅에서 오는 27일까지 이 책의 출간을 위한 펀딩이 진행되고 있다.(www.tumblbug.com/seriouswork)

책의 주제인 ‘레고 시리어스 플레이’는 1996년 당시 스위스 국제경영개발원(IMD) 교수였던 요한 루스와 바르트 빅터가 레고사와 함께 개발한 회의 방식이다. 두 사람은 “아이디어를 3차원(3D)으로 표현하고 메타포를 통해 상징성을 보탤 수 있는 레고가 회의 도구로서 뛰어난 효과를 발휘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실제로 레고 시리어스 플레이는 미 항공우주국(NASA)이 2003년 1월 발생한 콜럼비아호 폭파 사고의 원인 규명 회의 등에 사용하면서 사회 각 분야에서 활용도를 높여왔다. 이어 2010년 레고가 이 방법을 누구나 사용할 수 있도록 오픈소스화하면서 더욱 폭넓게 확산했다.

최 코치는 2019년 네덜란드로 연수휴직을 갔을 때 레고 시리어스 플레이를 처음 접하고 그 매력에 푹 빠졌다. 그는 영국에 기반을 둔 레고 시리어스 플레이 전문회사인 ‘시리어스 워크’에서 이 분야 최고 퍼실리테이터인 ‘시스템 레벨 퍼실리테이터’ 자격증을 땄다. 시리어스 워크의 대표인 션 블레어는 최 코치가 번역한 <시리어스 워크>의 공동 저자이기도 하다. 오후 1시부터 4시간 동안 진행된 워크숍에서 최 코치는 몇 개의 단계를 차근차근 거치면서 레고를 회의 도구로 쓸 수 있도록 하는 체험을 이끌었다.

우선 첫 단계는 포인터 만들기다. 사물을 지적하는 데 쓰는 포인터는 레고 시리어스 플레이에서 중요하다. 만들어놓은 레고 모델을 포인터로 짚어가면서 설명해야 하기 때문이다.

레고 블록을 이용해 참가 코치들이 만든 포인터는 제각각이었다. 굵은 것과 가는 것, 긴 것과 짧은 것 등 다양한 포인터를 접하면서 참가자들은 ‘사람 생각은 모두 다르다’는 사실을 확인한다.

두 번째 단계는 레고 블록으로 ‘자신의 페르소나 만들기’다. 최 코치는 “보통 자기소개를 하라고 하면 ‘어떤 회사에 다닙니다’부터 나오지만, 레고 시리어스 플레이로 페르소나를 만들면 자신의 내면과 지향하는 바를 쉽게 설명해내는 자기소개가 된다”고 말했다.

워크숍 참석 코치들이 만든 자신들의 ‘페르소나’ 모델. 윗줄 맨 오른쪽이 서지영 한국슈퍼바이저코치(KSC)가 만든 페르소나 모형이다. 서 코치는 “바퀴는 무엇인가 끊임없이 해나가는 모습을 담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보근 선임기자

안나은 한국코치협회 전문코치(KPC)는 2개의 블록을 가운데 두고 주변에 4개의 나무를 심은 모습을 만들었다. 안 코치는 “숲에 들어가는 것을 좋아한다”며 “‘자연과 함께하는, 얽매이는 것 없는 생활’을 그리는 마음을 표현했다”고 설명했다. 한국코치협회 최고등급인 슈퍼바이저코치(KSC)인 서지영 코치는 높은 탑을 세우고 바퀴를 단 레고 모델을 만들었다. 서 코치는 “바퀴는 무엇인가 끊임없이 해나가는 모습을, 탑은 탁월성을 추구하는 마음을 담았다”고 설명했다.

이어서 최 코치는 레고 모델을 활용한 게임을 제안했다. 레고 블록 5개를 무작위로 선택해 레고 모델을 만든 뒤 무작위 질문에 던져서 그 모델을 설명하게 하는 것이다. 최 코치는 “이렇게 무작위 블록으로 레고 모델을 만든 뒤 전혀 예상하지 못한 질문을 받게 되면, 자신의 내면 밑바닥에 있는 얘기를 자연스럽게 끌어내게 된다”며 무작위 질문 게임의 의미를 설명했다.

이날 나온 무작위 질문은 ‘나에게 코칭이란’ ‘어린 시절 나의 꿈’ ‘새로운 나의 도전’ ‘내가 좋아하는 사람’ ‘강아지의 머릿속’ 등이었다.

펭귄 앞에 타이어를 놓아둔 레고 모델을 만든 조창환 KPC 코치는 ‘어린 시절 나의 꿈’이라는 질문을 받고 “어린 시절의 꿈은 요리사”였다며 “펭귄은 어린 시절의 나를 상징하는 것으로, 다양한 요리를 맛보기 위해 남극을 떠나 세계 각국으로 가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재훈 PCC 코치는 열린 창문 위에 식물 모양의 블록을 얹어놓은 모델을 만들었는데, ‘내 최고의 휴가’라는 질문을 받았다. 김 코치는 “어느 섬에 갔을 때 창문을 열어놓고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는 내 모습을 그린 것”이라며 “그 기억을 바탕으로 앞으로도 시원하고 개방적으로 살아가고자 한다”고 설명했다.

이런 준비 과정을 거친 뒤 ‘2027년 대한민국에서 제일 유명한 코칭회사 비결 찾기’라는 워크숍의 핵심 주제로 이어졌다. 최 코치는 우선 “각 개인이 생각하는 성공 비결을 담은 레고 모델을 만들어보라”고 주문했다. 강사윤 PCC 코치는 레고 블록으로 계단을 만든 뒤 두 사람을 놓아둔 모델을 만들었다. 강 코치는 “회사의 구성원들이 서로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모습”이라며 “열정을 가진 앞사람이 뒤에 있는 사람을 이끌어가고, 뒤에 있는 사람도 앞에 나서는 사람을 받쳐주는 모습”이라고 설명했다.

바퀴 달린 탈것 위에 세 사람이 한 방향으로 나아가는 모습을 표현한 양현주 PCC 코치는 “기업의 성공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들의 마음이 한 방향으로 정렬되는 것”이라며 “이런 정렬된 상태를 같은 쪽을 바라보고 있는 사람들로 표현했다”고 말했다.

개인별 모델 제작 뒤 워크숍은 마지막 단계로 이어졌다. 마지막 단계는 각자가 만든 레고 모델을 ‘열정’ ‘자신감’ ‘도전정신’ ‘지혜’ ‘정보’ 등 각 ‘성공 요소’로 분해하는 데서 시작했다. 이어 참가자 전원이 돌아가면서 이 성공 요소들을 결합해 ‘하나의 큰 모델’을 만들었다.

양현주 세계코칭연맹전문코치(PCC)가 자신이 만든 ‘성공 비결을 담은 레고 모델’을 분해했다. 양 코치는 성공의 핵심 요소를 ‘도전 목표’와 ‘지혜·열정’ 등으로 상정했다. 양현주 코치

참가자들은 시계 방향으로 돌아가면서 자기 차례가 오면 자기가 가진 성공 요소들을 올려놓았다. 성공 요소들이 하나씩 보태질수록 함께 만드는 ‘하나의 큰 모델’은 점점 틀을 갖추어나갔다.

이렇게 모두가 몇 차례 돌아가면서 성공 요소들을 보태자 모든 참가자가 생각하는 성공 요소들이 결합된 레고 모델이 마침내 모습을 드러냈다. 단순한 놀이 도구라고만 생각했던 레고를 통해 각자가 생각하는 기업 성공 비결을 함께 공유하고 결합해 ‘우리의 성공 비결’을 만들어낸 것이다.

강사윤 PCC 코치가 자신이 만든 성공 요소들을 ‘하나의 큰 모델’에 결합하고 있다. 김보근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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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가자들도 좋은 반응을 보였다. 양현주 코치는 “메타포를 사용해 내 안에 내재한 것을 끄집어내면서 새로운 통찰을 하게 되는 것 같다”고 평가했다. 강사윤 코치는 “문제가 풀리지 않을 때 창의적 아이디어를 도출해 돌파구를 열어가는 데 유용할 것 같다”고 말했다.

최 코치는 “회사에서 사회 초년생을 대상으로 워크숍을 진행했는데 호응이 좋았다”며 “이 외에도 다양한 영역에 적용될 수 있는 좋은 툴”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레고 시리어스 플레이가 해외에서는 널리 활용되는데 국내에서는 상대적으로 소개가 덜 된 듯하다”며 “이번 출간 관련 펀딩과 워크숍을 통해 이 도구가 좀 더 많은 사람에게 알려졌으면 좋겠다”고 바람을 나타냈다.

김보근 선임기자 tree21@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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