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득권을 가진 자들이 지배하는 세상의 원리

한겨레 2022. 8. 18. 1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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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머스 그레셤(Thomas Gresham·1519-1579)은 16세기 영국의 무역상으로 런던 거래소를 설립했다.

영국 여왕 엘리자베스 1세(1533-1603)은 재정에 밝았던 그를 재정고문관으로 임명했다.

안 그런 세상을 꿈꾸는 자는 기득권을 갖지 못한 약자들일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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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심정] 문병하목사의 희망충전]

픽사베이

토머스 그레셤(Thomas Gresham·1519-1579)은 16세기 영국의 무역상으로 런던 거래소를 설립했다. 영국 여왕 엘리자베스 1세(1533-1603)은 재정에 밝았던 그를 재정고문관으로 임명했다. 그는 1588년에 여왕에게 재정상의 충고를 담은 서한을 바쳤는데, 첫머리에 ‘악화는 양화를 구축(驅逐)한다’(The bad money drives out the good money)란 말을 적었다. 여기에서 ‘그레셤 법칙’(Gresham's Law)이라는 용어가 태어났다. 그 당시에 영국을 비롯한 유럽에는 지폐가 없었고, 화폐는 은화(銀貨) 아니면 동화(銅貨)였다. 왕은 재정상의 궁핍을 덜기 위하여 명목가치(face value)와 실질가치(real value)가 같은 은화(銀貨)만 발행하는 것이 아니라 실질가치가 명목가치에 견줘 현저히 떨어지는 동화(銅貨)도 발행해 함께 유통시켰다. 그렇게 하면 실질가치가 명목가치와 같은(혹은 때에 따라서는 실질가치가 명목가치에 앞서는) 양화(良貨)인 은화는 장롱 깊숙이로 자취를 감추고 실질가치가 형편없는 악화(惡貨)인 동화만 시중에 유통되게 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적정량의 화폐가 유통되지 못하므로 경제는 다시 어려움을 겪게 되는 현상이다.

‘그레셤의 법칙’은 지금도 유효합니다. 화폐유통을 설명하는 법칙으로서가 아니라 악화가 양화를 몰아내는 사회·정치·경제 현상을 설명하는 용어로 적절한 말입니다. 정치인들이나 행정 관리들이 그들의 능력에 따라서 적재적소에 배치되는 것이 아니라, 부정하고 부패하나 교활한 재주 있는 사람들이 자리를 차지하는 것도 이 법칙으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정직하고 청렴하며 능력 면에서는 뛰어나지만, 자기 자랑을 하지 못하거나 줄이 없는 사람들을 그들이 마땅히 있어야 할 자리에서 쫓겨나고, 대신 교활한 자들이 그 자리를 차지하는 경우도 이 법칙으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정치인과 공무원이 욕을 먹고, 교사의 도가 땅에 떨어지고, 목회자가 거짓말쟁이처럼 여겨지는 것도 이 법칙에 따른 것입니다. 바른 정치인과 공무원, 바른 교사, 바른 목회자는 그 설 자리와 목소리를 잃어버리고 권모술수의 정치인, 부정한 교사, 삯꾼 목회자의 위치와 목소리가 큰 비중을 차지하고 대우받는 사회적 현상도 이 법칙으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역사를 돌봐도 안 그런 적이 있었습니까? ‘그레셤의 법칙’은 기득권을 가진 이들 중심으로 세상이 돌아가는 원리이고 세상을 살아가는 방식이기도 하기에 그렇습니다. 안 그런 세상을 꿈꾸는 자는 기득권을 갖지 못한 약자들일 뿐입니다.

글 문병하 목사·양주 덕정감리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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