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m 핑크색 붐박스에서 튀어나온 BTS의 '다이너마이트'..톰 삭스, 국내 첫 개인전
거대한 핑크색 붐박스(Boombox) 앞에 서자 방탄소년단(BTS)의 ‘다이너마이트’가 흘러나왔다. 작품으로서의 붐박스임에도, ‘소리의 질감’이 예사롭지 않다. 전시장으로 빈틈없이 꽉 채워진 사운드가 울려 퍼지자 관객들은 이내 리듬을 타기 시작했다. 조각가이자 건축가이며, 디자이너이면서 ‘지구의 모험가’인 톰 삭스(Tom Sachs)의 ‘붐박스 회고전’(9월 11일까지·하이브인사이트)에서다.
리셀가 1000만원에 달하는 ‘나이키 마스야드’ 운동화와 샤넬 로고가 들어간 단두대를 만든 주인공. ‘소비 과잉시대’를 살아가는 예술가의 시선을 한 번에 관망할 수 있는 전시가 ‘셀럽들의 천국’으로 떠올랐다. 톰 삭스의 첫 국내 개인전은 지난 7일 서울 아트선재센터에서 막을 내렸고, 현재 하이브 인사이트와 타데우스 로팍(‘로켓 팩토리 페인팅’, 8월 20일까지)에서 열리고 있다. 이미 방탄소년단 제이홉, 슈가를 비롯해 ‘나이키 마스야드’ 의 정체를 국내에 알린 지드래곤 등 K팝 스타들이 총출동했다.
하이브 인사이트에선 톰 삭스가 지난 20여년간 발전시켜온 ‘붐박스’ 시리즈의 초기작부터 최근작까지 13점을 만날 수 있다. 이여운 하이브 인사이트 큐레이터는 “톰 삭스만의 재치와 독창성을 바탕으로 음악을 재생하고 공간을 활성화해 몰입감 있는 사운드 환경으로 바꾼 작품들”이라고 설명했다.
톰 삭스의 창작활동에는 경계가 없지만, 그는 스스로 “조각은 나의 시작이자 끝”이라고 말한다. 톰 삭스에겐 붐박스 역시 “귀를 위한 하나의 조각”이다. 그는 “성당이나 교회는 아름다운 건축물이면서 종교적 신념을 보여주는 조각이다. 각각의 붐박스는 음악 소리를 위한 성당이다”라고 말했다.
톰 삭스의 붐박스 시리즈의 탄생은 1981년으로 거슬러 올라갔다. 유년시절 작가는 소니 워크맨에 합판 조각을 덧대 작은 스피커를 연결, 최초의 사운드 시스템을 제작했다. 개인의 경험과 흥미로 태어난 작업은 이후 그의 작품 세계에서도 한 축을 이뤘다. 이여운 큐레이터는 “1999년부터 지속적으로 확장하고 있는 붐박스 시리즈는 톰 삭스가 구축해온 브리콜라주(현대적 공정의 생산품을 재제작하는 방식) 기법을 통해 카드 보드, 테이프, 합판, 접착제 등 일상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재료를 변용하고 조합해 독창적 사운드 시스템을 만든다”고 설명했다.
하이브 인사이트의 입구로 들어가 가장 먼저 만나게 되는 분홍색 붐박스는 이 전시의 하이라이트 격이다. 이번 서울 전시를 위해 특별히 제작한 1m 98㎝에 달하는 ‘빅핑크’(Big Pink, 2022)다. 톰 삭스는 “빅핑크는 모든 붐박스의 관제탑 역할을 하고 있다”며 “빅핑크는 음악을 뿌려주고, 관객들이 음악을 잘 듣고 즐기고 있는지 지켜보고 있다”고 말했다. 빅핑크의 존재로 여러 붐박스에서 나오는 사운드가 적절한 수준으로 조정된다. 이에 하나의 붐박스 앞에 서면 다른 붐박스 소리에 방해받지 않고 음악을 즐길 수 있다.
또 전시에선 거리에서 파티를 연 자메이카 DJ 문화를 담은 ‘구루스 야드스타일(Gurus Yardstyle·1999)’, 인공위성처럼 태양전지 패널 날개를 단 ‘퐁키(Phonkey·2011)’까지 만날 수 있다. ‘퐁키’는 화성 탐사선 피닉스의 모습을 본떠 만들었다. 톰 삭스는 “지구에서 화성으로 가져간 붐박스는 행성간 경계를 뛰어넘어 지구의 음악으로 하나 되는 문화를 전파하고, 화성에 존재하고 있을지 모를 생명체들에게 우리의 도착을 알리는 인사와도 같은 상징적 역할을 한다”고 했다. 이 작품은 실제로 화성에 다녀왔다. 우주에서 음악을 재생한 탓에 큰 압력을 받아 고장난 것이 ‘퐁키’의 스토리다. 톰 삭스는 하지만 ‘퐁키’를 폐기하지 않고 백업 카세트를 연결, 그것까지 작품으로 만들었다. 이번 ‘붐박스 회고전’에서 나오는 24시간 플레이리스트는 스포티파이에서도 일부 공개되고 있다. 고승희 기자
sh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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