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산시렁] 저승에서 그를 소환했다 "당신에게 솔로등반은?"

윤성중 2022. 8. 18. 0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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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 마크-앙드레 르클렉과 가상 인터뷰

*다큐멘터리 <알피니스트: 마크-앙드레 르클렉>의 주인공 마크 앙드레 르클렉Marc-AndreLeclerc과 진행한 가상의 인터뷰입니다. 다큐멘터리에 나오는 그의 여러 대사와 타 매체에 실린 인터뷰 기사를 토대로 작성했습니다. 답변에 오류가 있을 수 있습니다.

마크-앙드레 르클렉. 1992년 태어나 2018년 등반 중 사망했다. 최근 그의 생애를 다룬 다큐멘터리

마크-앙드레 르클렉은 이상한 사람이다. 내가 가진 상식으로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사고방식과 행동을 한다. 단독 등반이 그중 하나다. 그는 내가 생각하는 알피니스트에 가장 근접한 사람이다. 꼭 만나고 싶었다. 눈을 감고 그를 불렀다.

"마크, 마크! 나와봐요. 얘기 좀 합시다.'

(홀연히 등장)

"오, 오. 왔군요. 마크, 당신이 나온 다큐멘터리 봤어요. 궁금한 게 많아요. 어디서 왔고, 뭘 원했고, 그때까지 어떻게 살아남았고, 대체 왜 그랬는지. 다큐를 본 보통의 인간이라면 모두 궁금할 거예요. 제가 대신해서 물어볼 거예요. 준비 됐어요?"

"네, 얼마든지요."

"어떻게 지내고 있어요? 거긴(?) 좋아요?(그는 2018년 알래스카의 멘덴홀 타워를 등반하다가 죽었다)"

"뭐, 똑같아요. 이상하게 등반하고 싶은 마음이 싹 사라졌어요. 다른 세계에 있어서 그런가?"

"어쨌든, 잘 지내고 있다니 다행입니다. 그럼 질문할게요. 먼저 어쩌다가 등반을 시작했죠?"

"저는 밴쿠버에서 동쪽으로 한 시간 반 거리에 있는 브리티시 컬럼비아의 아가시즈라는 지역에서 자랐어요. 주변이 모두 와일드한 자연이었으니까 혼자서 할 수 있는 건 캐스케이드를 배회하거나 낮은 바위에 오르거나 하는 것밖에 없었어요. 산에 관심이 있던 아이에게 여기는 정말 이상적인 공간이었어요. 무수히 많은 하이킹 코스를 비롯해 여기저기를 헤집고 다니는 것엔 어떤 규범 같은 게 없었어요. 혼자서 선택하고 혼자서 배우는 스타일이 이때부터 생긴 것 같아요. 할아버지가 이때 크리스 보닝턴이 쓴 <모험의 탐구Quest for Adventure>를 줬어요. 이 책을 읽으면서 등반에 눈을 떴죠. 9세 때는 마을 체육관에서 스포츠클라이밍을 시작했고요."

"본인이 생각했을 때 첫 번째 위험한 등반은 언제였죠?"

"고등학교 때, 친구와 둘이서 캐스케이드로 갔어요. 이전보다 훨씬 대담한 등반을 하긴 했는데, 우리는 누구도 그때 우리가 뭘 하고 있는지 알지 못했어요. 장비점에서 피톤 같은 걸 구하긴 했는데, 우리는 군사 교본 같은 걸 보고서 피톤 사용하는 방법을 배웠어요."

"혼자서(프리 솔로Free Solo) 등반을 한 건 언제부터였어요?"

"15세 생일 때 엄마가 저에게 책을 선물했어요. <등산: 언덕에서의 자유Mountaineering: The Freedom of theHills>라는 제목이었고요. 책을 읽고 브리티시 컬럼비아 등산 클럽에 가입했어요. 그로부터 솔로로 등반하기 시작했어요. 로프 시스템은 등반하면서 혼자 익혔고요."

"학교 생활은 어땠어요? 산에 다니는 것보다 재미있진 않았겠죠?"

"물론 최악이었죠. 교실이 굉장히 좁게 느껴졌어요. 제 학창시절은 제 인생 최악의 시절이에요. 어른이 된 후에도 학교에 관한 악몽을 꿀 정도였죠."

다큐멘터리를 보면 그는 추위를 그다지 못 느끼는 것 같다. 악명 높은 세로 토레의 토레 에거를 동계 단독 등반에 성공했다.

도대체 왜?

"왜 혼자서 등반을 하는 거죠?"

"혼자서 등반하는 건 그냥 운동활동에 관한 건 아니고 스포츠와 관련 있는 것도 아니에요. 솔로잉은 모험에 대한 정신적인 헌신과 같은데, 무슨 말인지 이해돼요? 그러니까 저는 혼자서 했던 지난 모험에 굉장히 만족해요. 현실로 돌아와서 나에게 일어난 기적 같은 일이나 행운에 감탄하죠. 그러면 입가에 미소가 떠나지 않아요."

"다큐에서는 감독과 함께 산에 가기로 해놓고 연락을 끊었어요. 그리고 혼자 등반을 하고 돌아왔죠. 왜 그랬죠?"

"촬영팀이 아무리 제게 간섭을 하지 않는다고 하지만 그들과 같이 가면 엄밀하게 말해 혼자가 아니잖아요. 촬영은 제가 등반에 성공한 다음, 같이 다시 가서 하면 된다고 생각했어요. 온전히 혼자만의 등반을 하고 싶었어요."

"왜 자신의 등반 성과를 내보이지 않았죠?"

"산에 있을 때 저의 주된 욕망은 모험을 경험하고 내 주변 환경과 내면과 교감하는 거예요. 그 이상의 어떤 스포츠적 성취나 인정 또는 보상을 좇지 않고 등반의 단순함을 즐기는 것이 목표죠. 단순하고 기본적인 것만큼 저를 충만하게 만드는 건 없어요. 제게 최고의 등반이란 빈손으로 걸어서 산에 올라가는 거예요. 등반할 수 있는 능력만 갖춘 채로요."

"그렇다면, 왜 산에 가죠?"

"임무를 안고 산에 가면 인생의 피상적인 면들은 전부 증발해 버리고 종종 더 심오한 정신 상태에 빠지는데, 힘든 등반을 마치면 한동안 그 상태가 이어지죠. 매사에 진심으로 감사하게 돼요. 평소엔 당연히 여기던 것도요. 등반 성공 자체가 인생을 바꾸진 않거든요. 성공을 향해 달려갈 땐 그런 기대를 갖더라도 결국 남는 건 거기까지 이어진 여정인데 그 기나긴 여정 속에서 많은 깨달음을 얻고 계획을 세우는 과정에서 더 몰입하게 되죠. 이어서 오랫동안 아름다운 곳에서 지내며 최선을 다해 노력해서 일종의 정신적 장벽을 넘어서고 나면 풍부한 이야기와 추억과 경험이 남아요. 저한텐 그게 가장 중요해요."

그는 로프 없이 하는 등반 프리 솔로를 자주 했다. 오로지 등반 능력만 가지고 빈손으로 산에 올라가는 것이 그에게 최고의 등반이다.

"마지막 질문이에요. 당신이 출연한 영화 제목이 '알피니스트'예요. 본인이 알피니스트라고 생각해요?"

"알피니즘이 뭔지는 대충 알지만 그 본질은 진정한 모험에 있다고 봐요. 저에게 있어서 진정한 모험은 완전히 '처음'인 곳에서 벌이는 등반이라고 할 수 있어요. 단순히 정상에 도달하기 위한 혹은 기록을 세우기 위해서 정해진 루트로 등반하는 건 알피니즘과는 거리가 있다고 봐요. 그건 그냥 '스포츠'라고 불러도 될 것 같아요. 저는 그 본질에 따르려고 하니까 대충 알피니스트라고 해도 되지 않을까요?"

인터뷰가 끝나고 그는 홀연히 사라졌다. 그 자리엔 희끄무레한 빛 덩어리가 남았다가 이것 마저도 곧 없어졌다. 나도 돌아서서 걸었다. 희망찬 목적지가 생긴 기분. 지금보다 더 나은 무언가가 저기 보이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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