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길의 다석 늙은이(老子) 읽기(53)삶잘가진이

김종길 다석철학 연구자 입력 2022. 8. 18. 0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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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은이(老子) 50월은 ‘삶잘가진이’(善攝生者)의 글이다. 삶(生)은 사람이 늘 하늘땅 하나로 돌아가는 마음 바탕을 가지고 하루하루 여는 살이다. 가온찍기의 늘살이다. 다석은 ‘오늘살이’로 그 삶을 살았고 ‘오! 늘살이’라고 외쳤다. 늘살이의 ‘늘삶’에 참이 있다고 했다. ‘삶잘가진이’는 ‘늘삶’을 고디(貞:神)로 세우고 곧이 곧장 가는 이다. ‘늘삶’의 고디가 곧 참이요 길이리라. ‘늘삶’은 늘 나고 나는 삶이다. 늘 솟고 솟는 삶이다. 늘 나고 나야 솟을 수 있고, 늘 솟고 솟아야 뚫을 수 있다.

‘삶가짐’(攝生)은 ‘삶기름’(養生)과 조금 다르다. ‘삶기름’이 몸과 마음을 탈 없이 튼튼하게 하여 오래살기를 꾀하는 것이라면, ‘삶가짐’은 쥐어 잡아 굳게 지키는 것이다. 닝겔, 흐르는 시선9, 2022, 아이패드

‘삶가짐’(攝生)은 ‘삶기름’(養生)과 조금 다르다. ‘삶기름’이 몸과 마음을 탈 없이 튼튼하게 하여 오래살기를 꾀하는 것이라면, ‘삶가짐’은 쥐어 잡아 굳게 지키는 것이다. ‘몸성히’, ‘맘놓이’, ‘바탈태우’를 스스로 굳게 지켜가야 한다. 그것이 ‘삶잘가진이’의 살아감이다.

열 사람 있으면, 살아가는 이들이 셋이다. 살아가는 이들은 하루하루 삶의 숨․김(氣)을 힘껏 깨 캐 내 산다. 살고 살려고만 하는 바퀴를 굴려 삶을 돌린다. 들숨이 있고 날숨이 있고 멈숨이 있듯이 날마다 삶을 돌려 살아가는 것이다. 삶을 돌려서 사는 이들에게 하루하루는 나고(出) 나는(生) 삶이다. 저가 저를 낳고 저가 나서 저를 이루는 삶이다. 젊은이든 늙은이든 저를 낳고 사는 삶은 힘이 있다. 그러나 그들에게도 죽음은 언제나 찾아온다.

열 사람 있으면, 죽어가는 이들이 셋이다. 죽어가는 이들은 하루하루 삶의 숨․김이 버겁고 헐겁고 무겁다. 살고 살려는 바퀴가 다해서 굴려도 잘 굴러가지 않는다. 들숨은 거칠고 날숨은 깊고 멈숨이 길다. 삶이 점점 잦아들어 죽어가는 것이다. 삶이 다하여 죽어가는 이들이게 하루하루는 들고(入) 드는(死) 듦이다. 젊은이든 늙은이든 들고 드는 그 듦에 산숨(生氣)은 없다. 산숨이 없으니 곳곳이 다 죽을 터다.

열 사람 있으면, 나(生) 움직여(動) 죽을 터로 가는 이들이 또 셋이다. 하루하루 나고 나도 삶의 숨․김이 버겁고 헐겁고 무거운 사람들이다. 삶을 살려고 죽음 힘을 다해 바퀴를 굴린다. 바퀴가 굴러가도 들숨이 거칠고 날숨은 깊고 멈숨 또한 길고 길다. 삶이 헉헉 거리면서도 굴리기를 멈추지 않으니 곳곳이 죽을 터다. 젊은이든 늙은이든 살기로만 움직이는 하고픔(欲心)에는 온살림이 없다.

열에 한 사람, 다 열려 열린 오직 한 사람, ‘삶잘가진이’는 얼․숨․김이 하나로 숨 돌아가는 솟나 가온이다. 몸․맘․얼이 늘 가온찍기로 돌고 도니 으뜸숨(元氣)이 용오름 회오리로 솟구쳐 시원시원한 한늘(宇宙)을 열지 않겠는가. 한늘 열린 삶은 ‘참삶’이다. 바로 이 ‘참삶’이 ‘삶잘가진이’의 늘살이다. 예수의 삶이 그랬고, 석가모니의 삶이 그랬다. 그들은 이 세상에서 바로 살 줄 알았고, 말을 아는 사람이었으며, 사는 것이 좋은 것인지 나쁜 것인지 기쁜 것인지 슬픈 것인지 잘 모르고 살았다. 이들은 으뜸말(元言)과 으뜸삶(元生) 사는 것을 아는 사람들이었다.

나 살고 들어 죽는다(出生入死).

다석 류영모는 『다석일지』(제4권) 345쪽에서 이렇게 말했다(작은따옴표는 연구자가 붙인 것이다. 글에 인용된 시는 일지에서 찾아 원문 그대로를 실었다).

“나는 한 끄트머리며 하나의 점이면서 하나의 끝수이기도 하다. 땅 밑의 싹이 하늘 높이 태양이 그리워서 그그하고 터 나오는 것을 그린 것이 ‘긋’이요, 그것이 터 나와서 끄트머리를 드러낸 것이 ‘끝’이요, 끝이 나왔다고 ‘나’다. 석가가 천상천하에 유아독존이라고 뽐내며 ‘나다’하는 것이 ‘나’요, 이 나야말로 가장 가치가 있는 점수를 차지할 수 있다는 것이 끝수가 많은 ‘한끝’이다. 그래서 나는 나를 이렇게 표현해 본다.

한 금을 내려 그은 줄은 ‘이’라고 발음하며 영원한 생명줄을 말한다. 영원한 생명이 시간 속에 터져 나온 한 순간이 ‘이긋’이요, 그것이 공간으로 터져 나와 육체를 쓰고 민족의 한 끄트머리로 나온 것이 이 세상에 터 나온 나라고 하는 ‘제긋’이고, 이 육체 속에 정신이 터져 나와 가장 고귀한 점수를 딸 수 있는 가치가 ‘이제긋’이다. 이제 시간과 공간과 인간의 긋이 모여 영원한 이가 공간 속에 나타나 이어 계속 나타나 이것이 이어져서 예 이 땅에 예 예어 나가는 내가 한 점 광명 긋이오니 고디 곧장 오르고 또 올라 내 속에 있는 고디(神)를 살려내어 내 속에 가온찌기, 내 속에 가장 옹근 속알(德)이 있는 것을 자각하여 깨닫고 나오는 가온찌기가 가장 소중하며, 자각은 한 번만 할 것이 아니라 순간순간 계속 자각하기 때문에 끗끗내내 자각하고 또 자각하여 종당은 땅위에 하늘 뜻을 드디고 실천하는 디긋디긋 철인들이 되어서 이긋이 태초의 맨첫긋과 종말의 맨마지막 맞끝이 한통이 되어 영원한 생명이 되는 것을 이 인제 임을 머리에 인(ㆆᅟᅵᆫ ) 하늘의 아들들은 겸손하게 머리 숙여 모른다고 하지만 그 모르는 속에 참 앎이 있지 않을까.”

여섯은 그대로 앉아서 훤히 열린 안팎의 세상을 본다. 참나(眞我)는 처음부터 든 적이 없어 나지 않으나, 제나(自我)에 갇힌 참나는 나날로 솟지 않으면 나날이 죽는다. 제나는 참나로 나(出)야 살고(生) 들면(入) 죽는다(死). 늘 참나를 깨고 캐고 내야 살고 산다. 여섯은 아래가 저절로 터 되어 나고 나서 죽을 터 없이 높오르는 ‘높속알’(上德)을 보았다. ‘삶잘가진이’(善攝生者)의 속알믿이(德臣)다.

어린님 : 제나는 참나가 아니야. 참나는 늘 새로 나지(出) 않으면 결국 죽어. 제나에 가린 참나를 깨고 캐고 내야 살지. 늘 나고 나야(出) 사는(生) 거야.

사슴뿔 : 들어(入) 죽음(死)은 제나에 갇히는 걸 말한다네. 엄마 뱃속에서 갓 나온 붉은 어린이는 참나로 밝고 밝지만, 얼마 안가서 제나의 덜미에 갇힌다네. 그러므로 사람은 덜(魔)의 덜미를 벗기고 참나로 솟구치는 길 가 닦음을 나날로 해야 한다네.

늙은이 : 열 사람이 있으면, 살아가는 이들이 셋이지. 그들은 오직 삶을 살고 또 살아가려는 이들이야. 살고 살려는 눈 먼 삶으로 올(理)을 세우려고 하니, 이 열에 셋은 나날이 저를 잘 살려고만 하는 이들이라고 할 수 있지. 젊은이도 늙은이도 살려고만 하는 삶은 죽을 때까지 쉴 수가 없어.

사랑이 : 열 사람이 있으면, 죽어가는 이들이 셋이지. 그들은 삶을 열지 않고 들어가 닫으려고만 하는 이들이야. 살려고 하는 삶을 닫으려고만 하니, 이 열에 셋은 나날이 죽음에 드는 이들이라고 할 수 있어. 젊은이도 늙은이도 삶이 흩어지면 그대로 죽어가지. 언제 어디서든 죽을 수 있어.

떠돌이 : 열 사람이 있으면, 사람으로 나 움직여도 죽을 터로 가는 이들이 또 셋이지. 그들은 살려고 삶을 열어도 올을 세우는 둥 마는 둥이니, 이 열에 셋은 살아도 삶이 아닌 죽음을 보는 이들이라고 할 수 있지. 젊은이도 늙은이도 올을 세우는 둥 마는 둥이면 곳곳이 죽을 터야.

깨달이 : 삶을 살고 또 살려고만 하는 이들이나, 삶을 열지 않고 들어가 닫으려고만 하는 이들이나, 사람으로 나 움직여도 죽을 터로 가는 이들이나 다 똑같이 문제는 그들이 그 눈 먼 삶을 두텁게만 하려는 하고픔이지. 모두 삶에 눈이 먼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어. 제나의 삶에 눈이 멀면 ‘참나’를 볼 수가 없어. 저 없이 ‘참나’의 눈을 떠야 삶을 잘 가져갈 수 있지.

어린님 : ‘삶잘가진이’는 저 없이 ‘참나’의 눈을 뜬 사람이겠군.

사슴뿔 : ‘있다시 온’(本來) 내 속의 참나(眞我)는 처음부터 든 적이 없다네. ‘있다시 온’이라 했듯이 본디부터 ‘나’라는 ‘있’(有)은 하늘이 스스로 저절로 있는 그대로 솟은 ‘참나’이기 때문이라네. 눈 먼 제나의 앞가림을 벗겨내고 참나의 눈이 밝게 떴으니 삶을 잘 가져 돌아간다네.

늙은이 : 나고 나고 솟고 솟고 돌고 돌아감을 굳게 지켜야 하지. 하루하루 늘 참나로 샘솟아 돌아야 제나가 들지 못해. 맑고 맑은 우물거울의 집집 우주로 텅 비어 시원하게 돌아가는 거야.

사랑이 : 들으니. 그런 참나의 삶을 잘 가진 이는 뭍에 가도 뿔소나 범과 마주치지도 않고 만나지도 아니하고, 또 싸우는데 들어가도 칼날을 사리지 않는다고 하더군. 이미 제나는 죽었고 참나가 솟아서 맑고 맑으니 뿔소가 그 뿔을 던질 데가 없고, 범이 그 발톱을 댈 데가 없으며, 싸움터에서 하필 쥐어 잡은 게 칼날이어도 그 칼날을 들이밀 데가 없다고 하더군.

떠돌이 : 사나운 짐승을 안 만나고, 칼날을 안 사리고, 뿔을 던질 데가 없고, 발톱을 댈 데가 없고, 칼날을 들이밀 데가 없다하니 왜 그런가? ‘삶잘가진이’는 한아 얻은 이일 터. 잘몬이 하나를 얻어서 삶으로 쓴다 했으니 ‘삶잘가진이’는 하나가 아닌가! 하나는 참나요, 큰이(大我)요, 없이 계시는 빈탕(太虛)이지 않은가!

깨달이 : 한아 얻은 이는 ‘제 없음’의 ‘길가진이’(有道者)지. 제가 없으니 그 죽을 터도 없지. 참나는 늘 나고 솟는 하나 하늘의 하실이거든. 자, 그럼, 50월도 새로 새겨 볼까!

■김종길은
다석철학 연구자다. 1995년 봄, 박영호 선생의 신문 연재 글에서 다석 류영모를 처음 만났는데, 그 날 그 자리에서 ‘몸맘얼’의 참 스승으로 모셨다. 다석을 만나기 전까지는 민중신학과 우리 옛 사상, 근대 민족 종교사상, 인도철학, 서구철학을 좇았다. 지금은 그것들이 모두 뜨거운 한 솥 잡곡밥이다. 함석헌, 김흥호, 박영호, 정양모, 김흡영, 박재순, 이정배, 심중식, 이기상, 김원호 님의 글과 말로 ‘정신줄’ 잡았고, 지금은 다석 스승이 쓰신 <다석일지>의 ‘늙은이’로 사상의 얼개를 그리는 중이다.

■닝겔은
그림책 작가다. 본명은 김종민이다. 대학에서 철학을, 대학원에서 일러스트레이션을 공부했다. <큰 기와집의 오래된 소원>, <소 찾는 아이>, <섬집 아기>, <워낭소리>, <출동 119! 우리가 간다>, <사탕이 녹을 때까지> 등을 작업했다. 시의 문장처럼 사유하고 마음을 움직이는 그림으로 독자들과 만나는 작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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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길 다석철학 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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