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본 닮은 '휴대용 해시계' 국내 첫 발견..조선시대 '일영원구' 공개
고궁박물관 특별전에서 19일부터 일반에 공개
"공 모양, 기능 크게 향상된 획기적 과학문화재"
국내 최초로 공같이 둥근 모양(구형·球形)을 한 조선시대의 휴대용 해시계가 발견됐다.
조선 후기인 1890년(고종 27년) 당시 무관이던 상직현이란 인물이 제작한 이 해시계는 문화재청이 미국 경매에서 확인·구입해 최근 국내로 환수됐다. 조선시대 해시계는 반구형 모양의 ‘앙부일구’ 등 10여점과 휴대용 해시계인 ‘휴대용 앙부일구’(보물)가 현재 전해지고 있다. 하지만 구형의 새로운 형태, 구조·기능도 한층 발전한 휴대용 해시계는 처음 확인돼 조선 과학기술사 연구의 획기적 유물로 평가된다.
문화재청과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은 18일 국립고궁박물관에서 구형의 휴대용 해시계인 ‘일영원구(日影圓球)’를 미디어에 소개하고, ‘일영원구’는 지난달 환수·공개된 조선 왕실 유물 ‘보록’과 함께 9월25일까지 열리는 ‘나라 밖 문화재의 여정’ 특별전에 19일부터 공개된다.
처음 발견된 새로운 해시계 ‘일영원구’
‘일영원구’는 높이 23.8㎝로, 십자형 받침대 위에 시각을 표시하는 선 등이 새겨진 지구본 모양의 원구(지름 11.2㎝)와 위도 조절장치 및 해 그림자를 만들기 위한 뾰족한 막대(영침·影針) 등 각종 장치가 설치돼 있다. 조사 결과 기존에 알려진 조선시대의 대표적 해시계인 ‘앙부일구’보다 크게 진보된 것으로 나타났다. ‘앙부일구’는 영침과 시간이 표시되는 바탕인 시반(時盤)이 고정돼 있어 한 지역에서만 사용할 수 있었지만, ‘일영원구’는 두 개의 반구가 맞물리며 시반과 영침, 각종 장치도 조정할 수 있어 어느 지역에서나 시간을 측정할 수 있다.
‘일영원구’의 한쪽 반구에는 12지(支) 명문과 96칸의 세로선으로 시각을 표시했는데, 이는 하루를 12시 96각(刻·15분)으로 표기한 조선 후기의 시각법을 따른 것이다. 또 정오 표시 아래에는 시간을 알려주는(시보) 둥근 구멍의 시보창이 있어 시간 표시가 나타나는 구조다.
이용삼 충북대 명예교수는 “기존 해시계와 달리 각종 기능이 더해져 남반구나 먼 바다 등 어느 곳에서도 시계 기능을 할 수 있는 역사적·과학사적 가치가 높은 독창적인 유물”이라며 “자동 물시계 ‘자격루’(국보)나 시계장치와 자명종 원리를 조화시킨 천문시계인 ‘혼천의 및 혼천시계’(국보)에 있는 전통적 시보 방법도 채택했다”고 밝혔다. 이 교수는 “과학적으로 다양하고 정교한 기능과 역사적 가치, 예술적 품격을 지닌 명품 해시계로 향후 귀중한 연구·교육 자료”라고 덧붙였다. 12지로 시간을 나타내는 조선시대의 전통적 시보 장치를 수용해 기존 과학기술을 계승하면서도 외국과의 교류 속에 다른 나라에서도 사용할 수 있도록 새롭게 발전시킨 유물인 것이다.
‘일영원구’는 명확한 제작 시기, 제작자도 알 수 있어 가치를 더한다. 원구 한쪽에 ‘대조선 개국 499년 경인년 7월 상순에 새로 제작했다’는 글과 ‘상직현 인(尙稷鉉 印)’이 새겨져 있다. 1890년 7월 상순 상직현이라는 인물이 제작했다는 뜻이다. <고종실록> 등에 따르면, 상직현은 고종대에 활동한 무관으로 국왕의 호위와 궁궐·도성의 방어를 담당한 군관이다. 네 개의 꽃잎 형태인 받침대는 용과 항해 중인 선박 등이 은으로 만든 실(은사)로 정교하게 장식돼 금속공예 연구의 귀한 자료다. 둥근 구체는 구리(동), 지지대와 기둥 등은 황동, 받침은 쇠로 확인됐다.
문화재청은 “‘일영원구’는 원래 소장자인 일본 주둔 미군 장교의 사망 후 이를 입수한 개인 소장가가 경매에 내놓은 것”이라며 “작년 말 해당 유물의 경매 출품정보를 입수해 면밀한 조사를 거쳐 지난 3월 낙찰받아 환수에 성공했다”고 밝혔다.
해시계, 조선의 대표적 과학문화재
해시계는 인류 역사에서 가장 먼저 발명된 시계로 추정된다. 현재 가장 오래된 해시계 유물은 고대 이집트 유적에서 발굴된 것으로 기원전 1500년쯤에 사용됐다고 알려져 있다. 한반도에서 해시계가 언제 처음 활용됐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삼국시대에는 사용했을 것으로 본다. 실제 신라시대 해시계로 추정되는 유물 파편이 국립경주박물관에 소장돼 있다.
해시계가 문헌상으로 명확하게 확인되는 것은 물시계·천문시계 등 과학기술이 발전한 조선 세종 때다. 1434년에 장영실·이천 등이 세종의 명에 따라 해시계를 만든 이후 조선 말까지 다양한 해시계가 제작됐다. 특히 세종은 해시계를 번화가에 설치해 공중시계 기능도 이뤄졌다.
세종시대에 제작된 해시계는 앙부(仰釜) 등 갖가지 형태와 이름을 가졌다. 대표적이자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진 게 ‘앙부일구(仰釜日晷)’다. 솥모양의 반구가 하늘을 향해 있는 모습(앙부)에 해시계라는 뜻의 ‘일구’가 붙여진 명칭이다. 안타깝게도 남아 있는 세종시대의 해시계는 없다. 현존하는 해시계는 ‘앙부일구’ 등 공식 확인된 게 10여점인데 모두 18세기 이후 제작됐다. 비록 조선 후기의 해시계들이지만 독창성과 함께 조선의 천문 과학기술 발전사를 살펴볼 수 있는 귀중한 과학문화유산이다.
현재 ‘보물’로 지정된 ‘앙부일구’들은 각각 국립중앙박물관·고궁박물관·성신여대박물관에 소장돼 있다. 이들은 크기나 재질·제작기법·기능 등이 엇비슷해 같은 시기, 동일한 제작자가 만든 것으로 추정된다. 십자형 다리에 청동으로 몸체를 만들고 글자와 선을 은실의 상감기법으로 새겨 아름다운 예술품으로도 평가받는다. 보물로 지정된 또다른 해시계는 1785년 2개의 해시계를 하나의 돌에 새긴 ‘간평일구·혼개일구(簡平日晷·渾蓋日晷)’, 17세기 청나라에서 들여온 것으로 추정되는 ‘신법 지평일구(新法 地平日晷)’와 이를 본따 만든 또다른 ‘신법 지평일구’가 있다.
‘보물’로 지정된 휴대용 해시계도 있는데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된 ‘휴대용 앙부일구’다. 돌로 만들어 졌으며 제작 시기(1871년)와 제작자 이름이 새겨져 학술적 가치가 크다.
도재기 기자 jaeke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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