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일 낙엽만 쓸기도"..해고 면했지만, 두배 일하는 경비노동자

최예린 2022. 8. 18. 07:05
자동요약 기사 제목과 주요 문장을 기반으로 자동요약한 결과입니다.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일자리를 잃는 사람도 문제지만 남은 사람도 늘어난 업무를 어떻게 감당할지 걱정이에요. 아파트 꼴도 엉망이 될 텐데."

대전 서구 ㄱ아파트에서 경비원으로 일하는 ㄴ씨는 조만간 일자리를 잃을 처지에 놓였다.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2021년 1월5일 서울 시내 한 아파트 단지에서 분리수거 중인 경비원 모습. 연합뉴스

“일자리를 잃는 사람도 문제지만 남은 사람도 늘어난 업무를 어떻게 감당할지 걱정이에요. 아파트 꼴도 엉망이 될 텐데….”

대전 서구 ㄱ아파트에서 경비원으로 일하는 ㄴ씨는 조만간 일자리를 잃을 처지에 놓였다. 아파트 주민 투표에서 경비원을 절반으로 줄이는 관리규약 개정안이 통과됐기 때문이다. 2910가구가 거주하는 이 아파트 단지의 입주자대표회의는 7월 한달 동안 관리규약 개정과 장기수선 계약에 대한 입주자 투표를 진행했다. 관리규약 개정안에는 경비원 56명을 26명으로 줄이는 내용이 포함됐다. 투표자의 60%가량인 1762가구가 개정안에 찬성했다. 25개동으로 이뤄진 이 아파트는 동당 경비원 2명이 배정돼 24시간 교대로 근무하고 있다. 1명이 하루에 1개동씩 맡아 관리하는 꼴인데, 개정된 관리규약대로면 앞으로는 경비원 1명이 2개동을 담당하게 된다. 아파트 관리사무소 관계자는 “관리비에 포함되는 경비비가 평수에 따라 5만~6만원 정도 나오는데, 그 비용을 줄이기 위한 차원으로 안다”고 말했다.

대전 서구 ㄱ아파트 앞에 붙은 일부 입주자들의 ‘경비노동자 감원 반대’ 펼침막. 대전아파트경비노동자권리찾기사업단 제공

주민들이 개정안 내용을 제대로 알고 투표했는지는 의문이다. 지난해 12월 ‘경비원 감축안’만 놓고 입주자 투표를 했을 때는 부결된 전례가 있기 때문이다. 7월 주민들에게 배포된 관리규정 개정안의 앞부분에 요약된 ‘개정 주요 내용’에도 ‘경비원 감원’ 내용은 빠져 있다. 경비원 감원 소식이 알려진 뒤 일부 주민들은 “경비노동자 감원은 입주민의 불편으로 돌아온다. 감원이 아닌 상생 방안을 함께 찾자”는 내용의 펼침막을 아파트 앞에 붙이기도 했다. 주민 신경심(50)씨는 “관리규약 개정안에 경비원 감축 내용이 있는 사실을 전혀 모른 채 투표를 했다”며 “우리 아파트가 비탈길에 있는데, 겨울에 눈이 오거나 여름에 비가 많이 오면 경비원분들이 굉장히 신경을 많이 쓴다. 절반으로 인원을 줄이면 아파트 관리가 제대로 이뤄질지 모르겠다”고 했다.

양보규 대전세종지역서비스노동조합 위원장이 지난 12일 대전 서구 ㄱ아파트 앞에서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대전아파트경비노동자권리찾기사업단 제공

경비노동자를 줄이려는 움직임은 이 아파트만의 일이 아니다. 대전노동권익센터가 조사한 내용을 보면, 대전 지역 300가구 이상 아파트 344곳의 경비노동자 359명이 2019년 이후 일자리를 잃거나 일을 그만뒀다. 최근까지 대전의 아파트에서 경비 일을 하다 그만둔 김아무개(69)씨는 “경비원이 줄어 업무량이 늘어나니 11~12월에는 하루 종일 낙엽만 쓰는 날도 있었다. 분리수거 관리도 예전만큼 할 수 없었다. 초소에 있을 시간이 없으니 주민들 불편 민원은 늘었고, 스트레스가 심해져 결국 일을 쉬기로 했다”고 토로했다.

대전아파트경비노동자권리찾기사업단과 대전세종지역서비스노동조합 대전경비관리지부는 지난 11일부터 ㄱ아파트 앞에서 경비노동자 감축을 반대하고 상생 방안 마련을 촉구하는 1인 시위를 이어가고 있다. 심유리 대전아파트경비노동자권리찾기사업단장은 “경비노동자들에게 해고도 큰 고통이지만 해고가 되지 않더라도 배로 늘어난 업무를 감당해야 한다. 일이 늘어나면 서비스의 질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결국 경비노동자도 입주자도 모두 피해를 보게 되는 것”이라며 “상생 방안을 찾기 위한 사회적 노력이 절실하다”고 지적했다.

최예린 기자 floye@hani.co.kr

Copyright © 한겨레.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크롤링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