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백] 국무총리의 단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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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달변가다.
"그분은 답변하기 곤란한 질문이 나오면 단답형으로 응한다." 주변에서 들은 말이다.
일인지하 그의 입장에선 간단치 않은 질문일 수 있다는 걸 십분 이해한다.
그의 단답이 무관심이나 일종의 거리두기로 받아들여지는 건 이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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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달변가다. 어떤 질문에도 막힘이 없다. 답변은 정경사문 종횡무진이다. 식견은 넓고 깊다. 톤은 낮고 진중하다. 몸을 낮춰 귀 기울이지 않으면 중간에 맥락을 잃고 헤매기 일쑤다. 영어구사능력은 탁월하다. 디터런스(deterrence), 어려운 단어다. 그가 외교 영역에서 자주 입에 올리는 영단어 중 하나다. 뉴클리어(nuclear)와 어울려 핵억제력을 뜻한다. 처음엔 알아듣지 못해 당황했다. '영어 공부를 다시 해야 하나…' 생각한 적 있다. 프라이오리티(priority·우선순위), 매크로(거시), 마이크로(미시) 정도는 상투적이다. 경제·외교·통상에 밝은 정통관료 한덕수 국무총리의 고급하고 간명한 언어다. "그분은 답변하기 곤란한 질문이 나오면 단답형으로 응한다." 주변에서 들은 말이다. 사실에 가까워 보인다. 최근 간담회에서 새정부 출범 100일을 평가해 달라는 아주 짧은 질문이 나왔다. 일인지하 그의 입장에선 간단치 않은 질문일 수 있다는 걸 십분 이해한다. 그의 답변을 받아 적었다. 200자 원고지 23장(4600자) 분량이다. 각종 수치를 동원한 세세한 분석에도 기억에 남는 건 "점수를 매기라고 한다면 나는 못 매기겠다"는 워딩 단 한 줄이다. 장광설(長廣舌)의 비애다.
그의 단답이 무관심이나 일종의 거리두기로 받아들여지는 건 이 때문이다. 전국 지방정부가 사활을 걸고 있는 수도권 공공기관 지방이전에 대해 물었다. "검토는 하고 있는데 아직 파이널라이즈 할 단계는 아닌 것 같다." 35자다. 마무리 짓다는 뜻의 'finalize'를 어떤 뉘앙스로 사용한 것인지 알 길이 없다. 무작정 수도권 공공기관을 들어내 각 혁신도시에 안분(按分)하는 단순작업이 아니라는 점은 참작할 만하다. 숙의는 필요하다. 하지만 이전대상으로 거론되는 공공기관들은 예측불가능성에 잠 못 이룬다. 전임 정부 시절부터 기관 유치 레이스의 출발신호를 마냥 기다리고 있는 전국 지방정부는 헛심만 빼다 날 저물까 노심초사다. 이익형량 관점에서 정책안정성을 추구해야 할 정부와 정부를 대표하는 한 총리에 유리한 사유로 보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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