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중_비욘더게임] 큰 그림을 그리는 한국의 풋볼 '매니저'
[골닷컴] “방향성을 가지고 팬들에게 감동을 주고, 축구산업화를 통해 수익을 내고 유스의 성공적인 사항을 시스템화 하여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야 합니다. 모기업의 지원을 바라지 않고 경쟁력을 끊임없이 지향해 나가는 구단, 그런 구단이 한국의 K리그1에 한 팀 정도는 있어야 하지 않겠어요?”
언뜻 보면 프로 구단 행정가의 이야기로 들린다. 퀄리티 높은 축구에 마케팅이 뒷받침돼 수익을 창출하고, 유스팀도 탄탄하게 발전시켜 구단 전체의 경쟁력을 키워서 결국 자생할 수 있는 조직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말은 놀랍게도 그라운드 최전선에 있는 프로 구단 감독의 입에서 나왔다. FC서울 안익수 감독이다.
지난 15일 저녁 서울은 김천상무와 K리그1 28라운드 경기를 치렀다. 결과는 2-1 역전승. 1년 8개월 팀을 이끌던 주장 기성용의 뒤를 이어, 나상호를 중심으로 한 새 주장단이 발표된 후 치른 첫 경기에서 기분 좋은 승리를 챙겼다.
서울은 최근 2경기에서 1무 1패로 승리가 없어, 김천전은 파이널A로 가기 위한 매우 중요한 일전이었다. 오랜만에 10일이라는 시간동안 회복과 재충전에 집중할 수 있었지만 경기 준비에 대한 부담은 컸을 터다.
경기 전 만난 안익수 감독은 주장단 교체, 선수단 컨디션 등 일반적인 질문에 답변하며 인터뷰를 진행했다. 이어 서울의 올 시즌 행보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이때부터 경기 전 인터뷰로는 이례적으로 10여 분 간 질문과 답이 오갔다. 안익수 감독이 생각하는 FC서울의 방향성, 어떻게 보면 다소 모호할 수도 있었지만 이날 짧은 시간을 통해 꽤나 명확해졌다.
올 시즌 서울은 좋은 흐름을 타도 길게 이어가지 못한다. 단적인 예로 연승이 5월과 7월에 각각 한 번씩 한 2연승뿐이다. 물론 연승을 길게 하면 순위표 상 더 높은 위치에 있겠지만, 좋은 분위기를 제대로 탔다 싶을 때 살짝 미끄러지곤 했다. 안익수 감독은 뚜렷한 색채를 입히기 위해선 시간이 필요하다고 진단했다. 그는 “기다림의 미학이라는 말이 있듯 색채를 완성하려면 시간이 필요하다. FC서울은 흥미를 주고 감동을 주고 끊임없이 기대를 갖게 하는 축구를 해야 한다. 어떤 부침이 오더라도 완성해 가야 한다. 한국 축구에 더 나은 방향을 제시하는 구단이 되어야 한다. 한 경기 치르고 ‘뭐가 좋다, 뭐가 좋지 않다’가 아니라 방향성을 가지고 가야 색채가 완성된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성격 급한 팬들도 있기 마련이다. 이에 대해서는 “제가 제일 잘하는 게 질식수비다. 지도자 라이선스 코스에서도 하나의 논의 대상이 될 정도였다. 그때 순위는 5위였다. 근데 관중은 1200명이 채 안 됐다. 그 이상의 팬들을 끌어 모으지 못했다”라는 말로 대신했다.
이어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가야할 방향성은 분명하다. 방향성을 가지고 축구산업화의 발전적인 상황들, 산업화를 통한 마케팅 효과로 수익을 내고 유스팀의 성공을 시스템화 시켜서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언제나 모기업의 지원을 바라는 것이 아니고 그 안에서 경쟁력을 끊임없이 지향해 가는 그런 구단, 그런 구단이 한국의 K리그1에 하나 정도는 있어야 하지 않나, 그것이 FC서울이어야 하지 않을까”라고 말했다.
굳이 왜 어려운 길을 가는지 궁금했다. 또 홀로 가는 길이 외로워 보이기도 했다. 그는 “외롭기도 하다. 외롭고 힘들고 남들이 안 가는 길을 가다 보니 바람도 세다. 그런데 즐겨야 한다. 즐기지 못하면 바람을 피해 내려와야 한다”라며 웃었다.
서울은 최근 주장단 교체를 진행하며 주장 나상호와 함께 4명의 부주장을 선임했다. 이상민(24), 조영욱(23), 김진야(24), 윤종규(24). 모두 젊은 선수들이다. 안익수 감독이 그리는 FC서울의 연장선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는 “세대교체를 하고 있다. 그 선수들이 코어 세대이고 그들을 통해서 FC서울의 미래와 비전을 보는 것이다. 유스팀인 오산고 선수들도 성장하면서 명확한 시스템화가 되어야 한다. 그렇게 되면, 미래와 현재, 그리고 과거를 통해서 배우고 완성체로 거듭날 수 있다. 그럼 FC서울의 시스템이 한국 축구에 주는 메시지가 분명히 있을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또 “혹여나 제가 실패한다 해도 방향성을 가지고 가면 거기에 적합한 분들이 오실 거고, 그렇게 해서 잘 되면 그 또한 보람이 아닐까 생각한다”라고 덧붙였다.
이어 “중요한 것은 한국 축구시장이 자꾸 작아진다는 점이다. 저출산으로 축구에 입문하는 저변이 줄어든다. 그러면서 경쟁력이 떨어진다. 프로 리그에서 해야 할 역할이 있다. FC서울이 팬들에 감동을 못 주면 축구에 입문하는 선수들이 줄어든다. 그만큼 축구시장이 작아진다. 축구산업화도 지체될 것이기 때문에 갈수록 더 어려워질 거다”라고 말했다.
최근 각 연령대에서 일본에 밀리는 현상을 예로 들며 이어갔다. “17세 대표 3-0, 23세 아시안컵 3-0, 덴소컵 5-0, 대표팀 3-0 패… 일본은 엄청난 준비를 한다. 대표나 프로나 유스나 하는 축구가 똑같다. ‘일본 축구는 이런 거’라는 걸 보여준다. 중계권료가 3천억이 생겼지 않나? 그걸 동력으로 또 발전한다. 한국이 지향하는 축구는 어떤 축구인지 고민해야 한다. 그런 메시지들을 FC서울이 주고 싶다”
단순히 서울이 프로 축구 구단으로서 재밌는 축구, 팬들을 불러모으는 축구를 하며 수익을 창출하고 자생하는 것이 목표가 아닌, 그것을 통해 한국 축구에 이바지하는 것으로 연결되어야 한다는 설명을 하며 인터뷰를 마쳤다. 경기장에서, 심지어 킥오프가 한 시간도 안 남은 상황에서 이런 이야기를 했다는 것은 이례적이다. 하지만 그만큼 안익수 감독의 뚜렷한 축구철학이라고 볼 수 있다.
흔히 감독을 표현하는 영어 단어로는 헤드 코치와 매니저가 있다. 헤드 코치는 경기와 관련된 업무가 주를 이루고, 좋은 경기력을 바탕으로 성적을 끌어올리는 게 역할이다. 반면 매니저는 경기는 물론 팀의 전반적인 시스템, 선수를 포함한 인적 구성원 관리 등을 주 업무로 한다. 잉글랜드를 포함한 축구 종주국 영국에서는 보통 매니저라고 부른다. 우리나라에서 감독은, 굳이 따지자면 헤드 코치의 역할이 더 가깝다. 그러나 안익수 감독은 ‘매니저’를 추구하고 있었다.
*비욘더게임(Beyond the Game)은 축구 경기 그 이상의 스토리를 전합니다.
글 = 김형중
사진 = 한국프로축구연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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