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도 실패한 산체스, 더 아쉬운 3년 전의 선택[슬로우볼]

안형준 2022. 8. 18.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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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엔 안형준 기자]

과감하게 선택한 도전이었지만 결과는 처참했다.

보스턴 레드삭스는 8월 17일(한국시간) 내야수 욜머 산체스를 빅리그 로스터에서 제외하며 DFA(Designated for assignment, 지명할당)했다. 키케 에르난데스, 롭 레프스나이더를 부상자 명단에서 복귀시키면서 로스터 자리를 마련하기 위해 취한 조치였다.

전력 외 판정을 피하기 어려운 성적이었다. 산체스는 지난 7월말 빅리그 로스터에 콜업됐고 14경기에 출전해 .108/.214/.108 2타점 5볼넷 13삼진을 기록했다. 장타는 없었고 단타 4개만을 기록했다. 보스턴은 더 좋은 생산성을 기대할 수 있는 선수들이 복귀하자 산체스를 포기했다. 마이너리그 계약으로 입단해 콜업된 산체스는 애초에 입지가 불안한 상태였다.

1992년생 산체스는 최고의 주가를 올리던 시기에 과감한 도전을 선택했다. 하지만 결과는 전혀 만족스럽지 못했고 지금까지도 제대로 자리를 잡지 못하고 있다.

베네수엘라 출신 우투양타 내야수 산체스는 2009년 국제아마추어 계약으로 시카고 화이트삭스에 입단했고 2014년 빅리그에 데뷔했다. 원래 타격 측면에 큰 재능이 있는 선수는 아니었지만 마이너리그에서 시즌을 거듭하며 컨택 능력이 성장했다. 빅리그 데뷔 즈음에는 3할 수준의 타율도 기록했다.

하지만 빅리그의 벽은 높았다. 데뷔시즌 28경기에서 .250/.269/.300 5타점 1도루를 기록하는데 그쳤고 정교함과 선구안, 장타력 어느하나 제대로 선보이지 못했다. 그래도 2010년대 초반부터 전력이 크게 떨어진 화이트삭스는 기회의 땅이었다. 화이트삭스는 몇 년 동안 반복해 부진하던 특급 유망주 출신 고든 베컴에 대한 기대를 거뒀고 베컴보다 6살 어리고 수비력 만큼은 안정정이었던 산체스에게 계속 기회를 부여했다.

2015년 주전 2루수로 기용된 산체스는 팀 앤더슨이 데뷔하고 브렛 로우리가 잠시 몸담은 2016시즌 마이너리그를 오갔지만 2017시즌부터 다시 주전 내야수로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 2019시즌까지 646경기에 출전해 .244/.299/.357 31홈런 214타점 30도루를 기록했다. 한 번도 리그 평균 이상의 타격 생산성을 보이지는 못했지만 2루와 3루, 유격수를 소화하며 견고한 수비력을 선보였고 나름의 입지를 구축했다. 2019시즌에는 골드글러브도 수상했다.

산체스는 2017-2018시즌 296경기에서 .253/.312/.390 20홈런 114타점 22도루를 기록하며 타석에서도 최소한의 체면치레는 했지만 2019시즌에는 149경기에서 .252/.318/.321 2홈런 42타점 5도루를 기록하는데 그쳤다. 상위권 도약을 준비하며 투자를 감행한 화이트삭스는 타석에서 산체스보다 더 좋은 결과를 낼 수 있는 선수를 원했고 결국 2019시즌 종료 후 산체스를 논텐더 방출했다.

골드글러브 수상 후 방출을 당한 산체스는 큰 결심을 했다. 당당하게 타격 생산성까지 인정받아 주전 내야수 자리를 차지하겠다는 것이었다. 2019년 겨울 FA 시장에서 산체스는 여러 구단으로부터 영입 제안을 받았다. 산체스의 유틸리티 플레이어로서의 능력, 견고한 수비력을 높이 평가한 구단들이 벤치멤버 역할로 메이저리그 계약을 제안했다. 하지만 산체스는 이 제안들을 거절하고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와 마이너리그 계약을 맺었다.

백업 역할을 제안한 구단들의 제시 금액이 샌프란시스코가 제시한 스플릿 계약 금액보다 낮은 것도 큰 이유였다. 하지만 더 큰 이유는 확실한 주전 2루수가 없는 샌프란시스코에서 경쟁을 통해 당당히 자리를 따내겠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선택은 패착이 됐다. 샌프란시스코는 겨울이 끝나갈 무렵 주전 내야수로 윌머 플로레스를 영입했고 설상가상으로 코로나19 팬데믹으로 마이너리그 시즌까지 취소되며 산체스는 자신을 어필할 무대도 잃었다.

샌프란시스코에서 8월말 방출된 산체스는 '친정' 화이트삭스와 마이너리그 계약을 맺고 돌아갔다. 그리고 시즌 중 빅리그 콜업을 받아 벤치멤버로 12경기에 출전했고 .313/.476/.688 1홈런 1타점의 좋은 성적을 썼다. 하지만 이미 큰 투자로 전력을 구축한 화이트삭스는 산체스에게 자리를 계속 내줄 생각이 없었다. 결국 시즌 종료 후 웨이버 공시된 산체스는 볼티모어 오리올스로 이적했지만 2021시즌 개막 직전 방출됐고 애틀랜타 브레이브스와 마이너리그 계약을 맺어 지난시즌을 모두 애틀랜타 산하 트리플A에서 보냈다.

지난해 트리플A 102경기에서 .216/.309/.352 9홈런 35타점 6도루를 기록하는데 그친 산체스를 주목하는 팀은 없었다. 산체스는 올시즌을 앞두고 보스턴과 마이너리그 계약을 맺었고 시즌 중반 콜업됐지만 이번에 전력 외 판정을 받았다. 수비 측면에서는 여전히 문제가 없었지만 공격 측면에서는 구단 입장에서 전혀 매력을 느낄 수 없었다.

가장 근본적이 원인은 빅리그에서 타격 생산성을 보이지 못했기 때문이지만 계약도 한 몫을 했다. 만약 2020시즌을 앞두고 메이저리그 보장 계약을 맺었다면 공백 없이 더 많은 경기에 출전하는 것이 가능했다. 결국 가치를 인정받는 것도 빅리그 경기에 나서야 가능한 것. 로스터 자리를 새로 만들어야 하는 마이너리거보다는 빅리그 로스터에 포함된 선수에게 더 많은 기회가 주어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이미 한 번 산체스를 버린 경험이 있는 화이트삭스가 아닌 다른 구단과 빅리그 보장 계약을 맺었다면 2020시즌 종료 후 대우가 달랐을 수도 있다.

모든 선수들이 메이저리그 보장 계약에 목을 매는 것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메이저리그 경기에 나설 기회조차 제대로 얻지 못한 산체스는 결국 악순환의 고리에 갇힌 꼴이 됐다. 도전에 실패하며 마이너리그를 전전하는 사이 산체스는 어느덧 30세가 됐다. 시장에서의 가치는 더욱 낮아질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당장 산체스에게 좋은 조건으로 손을 내밀 구단이 나타나는 것은 기적에 가깝다.

더 큰 성공을 위한 도전에 나섰던 산체스를 어리석다고 비난할 수는 없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도전은 실패했고 산체스는 힘겨운 시간을 계속 이어가게 됐다.(자료사진=욜머 산체스)

뉴스엔 안형준 markaj@

사진=ⓒ GettyImages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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