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강제동원' 갈등.. 피해배상금 대신 갚아주면 해결될까
피해자 측은 '사과'도 요구.. 日정부 호응 여부도 변수
(서울=뉴스1) 박응진 기자 = 한일 양국 간 최대 갈등현안인 일제강점기 강제동원 피해배상 문제의 해법으로 '대위변제'가 재차 관심을 모으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17일 기자회견에서 언급한 "일본이 우려하는 주권 문제 충돌 없이 채권자(피해자)들이 보상받을 수 있는 방안"이 '대위변제', 즉 우리 정부나 기업 등이 피해 배상금을 우선 변제하고 일본 측에 구상권을 청구하는 방안을 염두에 둔 것이란 해석이 나오면서다.
NHK·니혼게이자이신문 등 일본 주요 언론들 또한 윤 대통령의 해당 발언에 대해 비슷한 해석을 내놓고 있다.
우리 대법원은 지난 2018년 10월과 11월 일본제철과 미쓰비시(三菱)중공업 등 일본 전범기업을 상대로 각각 강제동원 피해자 1인당 1억원 또는 1억5000만원의 배상금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그러나 일본 정부는 강제동원 피해자 등에 대한 배상이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 체결 당시 우리 정부에 제공한 총 5억달러 상당의 유무상 경제협력을 통해 "이미 해결됐다"며 우리 법원의 해당 판결에 대해 "국제법 위반"이라고 주장해왔다. 일본 기업들이 피해자 측과의 배상 협의에 응하지 않은 것도 이 같은 일본 정부 입장 때문이다.
반면 피해자 측에선 그동안 일본 기업들의 한국 내 자산에 대한 압류·매각을 통해 배상금을 받기 위한 법적 절차를 진행해온 상황. 특히 우리 대법원은 강제동원 피해자 중 양금덕·김성주 할머니가 제기한 미쓰비시중공업의 한국 내 상표·특허권에 대한 특별현금화(강제매각) 명령 사건에 심리를 계속할지 여부를 19일까지 결정해야 한다.
만약 대법원이 이 사건에 대한 '심리 불속행'을 결정한다면 미쓰비시중공업의 국내 상표·특허권에 대한 강제매각이 진행된다.
현재 까지 '유효'한 강제동원 손해배상 청구 소송 건수는 80여건, 피해자는 300여명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따라서 대법원 결정에 따라 미쓰비시의 한국 내 자산 현금화가 진행될 경우 다른 소송에도 영향을 줄 가능성이 크다.
일본 기업들이 한국 내 자산 현금화로 경제적 피해를 입을 경우 일본 정부도 그 대응에 나설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일본 정부는 이미 우리 대법원의 배상 판결이 나왔을 당시 우리 정부 소유의 일본 내 자산을 '동결'하는 등의 대응조치를 검토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일본 정부가 2019년 7월 발동해 현재도 유지 중인 대(對)한국 수출규제 강화조치도 우리 대법원의 강제동원 피해배상 판결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와 관련 정부 안팎에선 그동안 일본 기업들의 자산 매각에 이르기 전 피해배상금을 지급할 수 있는 '외교적 해법'의 하나로 한일 양국 정부나 주요 기업들의 출연자금, 혹은 국민 성금을 활용해 기금을 조성한 뒤 이를 피해자들에 지급하는 방안이 꾸준히 거론돼왔다.
그러나 이는 일본 정부·기업 등의 동의가 필요한 데다 피해자 측에서도 그간 진행해온 법적 절차를 중단하는 결정을 해야 해 "개별 당사자들에 대한 설득과 합의 도출이 쉽지 않을 것"이란 지적이 많다.
특히 박근혜 정부 시절인 2015년 한일위안부합의에 따라 한국 내 위안부 피해자 지원재단(화해·치유재단) 설립에 10억엔(약 100억원)을 출연했던 일본 정부로선 2017년 문재인 정부 출범 뒤 '피해자들 의견이 제대로 반영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재단을 해산하는 등 사실상 합의를 원점으로 되돌리는 조치를 목도한 만큼 '강제동원 피해자들을 돕기 위해 다시 돈을 모으는 방식의 해법엔 난색을 표시할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도 제기된다.
2015년 위안부합의 때 아베 신조(安倍晉三) 당시 총리를 대신해 외무상으로서 한일 간 협상에 나섰던 인물이 바로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현 총리다.
뿐만 아니라 피해자 측은 배상금과 더불어 일본 측의 '진정어린 사과'까지 원하고 있어 강제동원 피해배상 판결 자체를 "한국 측이 책임지고 시정해야 할 일"이라고 밝혀온 일본 정부와는 인식의 간극이 크다.
이런 가운데 윤 대통령은 "(한일) 양국이 미래지향적 협력관계를 강화할 때 양보와 이해를 통해 과거사 문제가 더 원만하게, 빠르게 해결될 수 있다"는 말로 일본 측의 협조를 요청했으나, 일본 기업 자산의 현금화를 피하면서 피해자들도 사과와 배상금을 모두 받을 수 있는 해법이 마련될 수 있을진 여전히 미지수다.
pej86@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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