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요단상] 예술의전당 공연을 마치고

김강석 2022. 8. 18.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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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반 선생님 기리며 다시 한번 준비하는 '그날, 그날에'
▲ 김강석 극단 파.람.불 대표

어느 날 갑자기 고성은 강원문화재단 본부장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2022 예술의전당 지역우수공연 초청 공모사업 신청 링크였다. 연락을 받자마자 생각 난 작품은 ‘그날, 그날에’였고, 그 다음 든 생각은 “무대 세트를 얼마 전에 버렸는데…”였다.

걱정이 먼저 앞섰다. 하지만 가고 싶었다. 배우 생활을 하면서 언제 한번 예술의전당을 가보겠는가. 바로 연출에게 전화를 걸어 이 상황을 설명하고 의논한 끝에 우리가 얻은 결과는 “가자!”였다.

서울을 떠나기 하루 전 이반 선생님의 산소에 들러 담배 한 개비를 드리며 “선생님! 선생님 작품이 또 숨을 쉬고 관객을 만나고 싶나 봐요. 서울 관객들 잘 만나고 오겠습니다”하고 인사드리고 왔다. 이번 공연 기간에 비가 많이 왔지만 신기하게도 우리가 작업할 때는 비를 피할 수 있었다. “선생님이 이런 것까지도 도와주시는구나”라는 생각을 안 할 수가 없었다.

3일간의 공연. ‘강원도 민간단체로는 최초로 예술의전당에 선다’라는 설렘도 있지만 나의 최고 걱정은 관객 동원이었다. ‘1004석의 좌석을 어떻게 채우지?’ 제일 걱정스러운 부분이었다. 결과부터 말하자면 다행히도 많은 관객분이 찾아주셨다. 12일 500명, 13일 500명, 14일 700명. 너무 다행이면서 이반 선생님의 작품, 속초의 이야기, 속초 배우들, 강원도의 힘, 강원도 연극을 보기 위해 이렇게 많은 분들이 오신 것에 감격했다.

처음 대본을 리딩했을 때가 기억난다. 처음부터 끝까지 리딩하는데 3시간이 꼬박 걸렸다. 이반 선생님의 작품 ‘그날, 그날에’는 실향의 아픔을 그린 분단극이다. 사투리는 너무 어렵고, 외국말 같았다. 그리고 실향의 아픔을 ‘1’도 공감할 수 없었다.

이 작품의 배경은 고향을 떠난 지 20년이 되는 1970년대다. 작품 인물분석 과정에서 나에게 도움이 되었던 말은 “우리는 2주만 있다가 고향에 갈 줄 알았다”라는 어느 실향민 어르신의 이야기였다. 그러나 지금은 실향한 지 70년이 되는 시점이다. 실향민 1세대들은 거의 돌아가시고 없다.

이반 선생님께서 살아생전에 이런 말씀을 하셨다는 글을 읽은 기억이 난다. “한숨짓는 실향민 1세대들이 없어져가고 있기에 서둘러 이 작품을 써야겠다” 선생님의 말씀이 이해가 된다. 우리 세대들은 분단의 아픔을 모른다. 실향민의 마음도 모른다. 그들이 왜 바다를 나가고, 북쪽을 바라보며 한숨을 쉬는가에 관심 없이 산다.

나 또한 그랬다. 작품 ‘그날, 그날에’는 우리 과거 시대의 비극을 그린 게 아니다. 아직까지도 진행되고 있는 우리의 아픔을 그린 작품이다. 내가 연기한 김노인, 박노인의 대사 중 제일 많이 나오는 단어는 ‘그날’과 ‘바다’다. 고향, 통일… 이반 선생님은 그렇게도 바다에 나가고 싶으셨나 보다.

배우로서 관객들에게 작품에 대한 메시지를 주고 싶지는 않다. 강요하지 않는다. 오직 작가가 쓴 텍스트만을 연기한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그 의미가 전달된다고 믿는다. 선생님의 생각과 마음을 고스란히 관객에게 전달하는 것이 나의 임무였다. 많이 부족한 연기지만 조금이나마 관객들께 전달이 되었으면 한다. 그리고 잊혀 가는 우리 분단의 아픔에 마침표를 찍는 그날까지 이 공연은 계속돼야 한다. 어찌 보면 무거운 주제이고, 접근하기 어려울 수 있다. 하지만 파.람.불은 그 무겁고, 어려운 이야기를 계속할 것이다. 이게 파.람.불이 해야 할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속초에서 강원도로, 강원도에서 전국으로. 전국에 계신 실향민 가족분들에게 보여 드리고 싶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다시 한번 감사의 말씀을 드리고 싶다. 공연을 준비하면서 도움을 주신 많은 분들. 마지막 날 직접 공연장을 방문한 속초시장님과 부시장님, 시 공무원들을 비롯해 강원도 전역에서의 응원과 방문. 너무나도 감사드린다. 속초문화관광재단과 신오일 연극협회 속초지부장님, 변유정 연출 및 30명의 배우와 스태프에게도 지면을 통해 다시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 극단 파.람.불이 할 일은 또 좋은 공연으로 보답하는 것이다. 지난 14일 공연을 마친 후 바로 무대를 철거하고, 속초로 향했다. 마지막 날까지 비가 왔다. 마지막 나무 세트를 내리면서 하늘을 보니 마치 이반 선생님께서 수고했다고 흘리시는 눈물처럼 느껴졌다. 연극 ‘그날, 그날에’가 계속 숨쉬고 바다로 노 저어갈 수 있도록 노력하는 파.람.불이 되도록 더 열심히 하겠습니다. 선생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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