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물상] 전자전

선우정 논설위원 2022. 8. 18. 0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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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블이 연결되기 전까지 사람들은 생선뼈 모양의 안테나를 통해 TV를 시청했다. 집집마다 꽂혀 있어 도시 미관을 해치는 주범이라고 했다. 이 안테나는 1926년 개발됐다. 일본의 개발자 이름을 따 ‘야기·우다 안테나’라고 한다. 세계 방송사를 바꾼 기술로 꼽히지만 세계 전쟁사를 바꿨다는 소리도 듣는다. 전자전(電子戰)의 서막을 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기술을 활용해 2차 대전을 승리로 이끈 나라가 일본이 아니라 미국이란 사실이 흥미롭다.

▶야기 안테나 기술은 전파를 더 멀리, 더 많이 보내는 탁월한 지향성이 장점이다. 군사용 레이더에 사용하면 적을 더 빨리 포착할 수 있었다. 미국이 가치를 알아본 것은 절실함 때문이었다. 진주만 공습 때처럼 미국은 일본 주력 전투기 ‘제로센’의 항속 거리와 기동력을 당해낼 수 없었다. 적보다 느렸기 때문에 먼저 찾아내야 대비할 수 있었다. 일본은 적보다 빨랐기 때문에 자만했고, 안방 기술을 경시하다가 전자전에서 까막눈이 됐다.

▶전쟁 다큐의 명작인 NHK의 ‘태평양전쟁’은 제로센의 참혹한 종말을 다루고 있다. 제로센은 출격 직후 미군의 고성능 레이더에 포착된다. 높은 상공에 숨어있던 미 전투기 ‘헬캣’이 기습해 제로센의 기동력을 무너뜨린다. 2차 사냥은 전파장치를 장착한 미 함대의 대공포탄이 담당했다. 일정한 거리에서 자동 폭발해 산탄으로 제로센을 격추한다. 전자전에서 무력화된 제로센은 결국 가미카제의 자살 전투기로 전락해 태평양에 수장돼 버렸다.

▶현대의 전자전은 누가 먼저 적을 포착하는지 겨루는 수준이 아니라고 한다. 전자 무기로 적의 감시와 통신 시스템까지 엉망으로 만든다. 좌표가 엉망이 되면 최첨단 스텔스 전투기를 보유해도 띄울 수 없고 최신형 미사일을 도입해도 쏠 수가 없다. 겨우 전투기를 띄운다고 해도 유령을 찾아 헤매다가 적을 보지도 못한 채 격추된다. 제로센처럼 ‘날아가는 관짝’ 신세가 되는 것이다. 미국이 세계 최강인 것은 2차 대전 이후 전자전에서 초격차 기술을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낸시 펠로시 미 하원의장이 대만을 방문할 때 중국군이 최신 구축함과 전투기를 동원해 펠로시 의장이 탑승한 비행기를 추적했지만 실패했다고 한다. 미 군용기의 전파 방해 때문에 중국 장비가 모두 먹통이 됐다는 것이다. 미국의 진짜 위력은 이런 게 아닐까 한다. 펠로시 방문 이후 중국은 대만을 포위하고 미사일을 쏴대면서 무력시위를 벌이고 있다. 기세등등해 보이지만 결국 부처님 손바닥 안에서 용쓰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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