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일간 100건, 우후죽순 여론조사... ‘침묵의 숨은표’ 만드나 [여론&정치]

홍영림 여론조사전문기자 2022. 8. 18. 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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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윤석열 대통령의 국정 운영 평가 조사에서 특이한 것은 ‘매우 잘못한다’는 극안티층이 많게는 60%에 이른다는 점이다. 이명박 전 대통령도 취임 초반에 지지율이 20%대로 하락했지만 당시 극안티층은 30% 정도였다.

윤석열 대통령이 17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브리핑룸에서 열린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 얼굴을 만지고 있다. 2022.08.17./뉴시스

이 전 대통령의 지지율이 임기 2년 차에 50%에 육박하며 회복한 것과 비교하면 윤 대통령은 언제 지지율이 반등할지 기약하기 어렵다. 각 조사에서 윤 대통령이 앞으로 국정 운영을 ‘잘못할 것’이란 전망이 60%가량인 점도 눈길을 끈다. 윤 대통령이 매우 싫거나 그에게 기대를 접은 국민이 10명 중 6명이란 것은 웬만해선 지지율 복원이 쉽지 않은 심각한 상황이란 의미다.

윤 대통령 지지율과 관련해 특이한 것은 또 있다.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여심위)에 따르면 윤 대통령 취임 이후 100일간 공표한 대통령 지지율 조사가 무려 100건이었다. 박근혜 정부 초반 100일간 50건의 두 배나 되고 문재인 정부 때 66건보다도 크게 늘었다. 여론조사 결과가 쏟아지다 보니 관련 기사도 많았다. 주요 신문·방송 54곳의 뉴스 빅데이터 서비스인 한국언론진흥재단 ‘빅카인즈’에서 윤 대통령 지지율 조사를 다룬 기사는 100일간 3288건이었다.

‘우후죽순 여론조사’가 윤 대통령의 지지율 하락을 부채질했다는 견해도 있다. 대통령 지지율 조사와 관련 뉴스가 거의 매일 반복되자 여권 지지층이 기가 눌려서 입을 못 여는 분위기가 영향을 미쳤다는 것이다. 독일 학자 노엘레 노이만은 ‘침묵의 나선(螺線)’ 이론에서 “사람들은 자신의 견해가 다수에 속한다고 생각할 때에는 공개적으로 의견을 밝히지만 반대일 때는 침묵한다”고 했다. 선거에서 여론조사와 다르게 막판 뒤집기가 종종 나타나는 것도 ‘침묵의 숨은 표’ 때문이라고 한다.

여론조사 폭증은 조사 회사 난립의 영향도 있다. 현재 여심위에 등록된 조사 회사는 92곳으로 1년 전보다 22곳 늘었다. 정치 여론조사 회사가 13곳에 불과한 프랑스, 20곳인 일본보다 많아도 너무 많다. 강준만 전북대 교수는 “여론조사의, 여론조사에 의한, 여론조사를 위한 선거와 더불어 평상시 정치마저도 여론조사에 휘둘리고 있다”며 “여론조사는 여론조사로 먹고사는 사람들을 위한 게임”이라고 했다. 여론조사가 돈벌이가 된다는 것을 눈치 챈 사람들이 여론조사를 쏟아내면서 민주주의의 맥박을 측정하는 본래 목적을 잃었다는 것이다.

마침 중앙선관위는 ‘선거 여론조사 등록 기관 관리 강화 방안’을 관련 학회에 의뢰해 연구 용역을 추진 중이다. 조사 회사 등록과 취소 요건을 점검하고 개선책을 모색해서 여론조사의 신뢰성을 높이겠다는 목적이다. 수준 낮고 부실한 여론조사 양산을 막을 방안을 반드시 마련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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