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공부는 배움보다 익힘이다

권승호 전주 영생고 교사 2022. 8. 18. 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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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교육을 떨쳐내지 못하는 이유를 아는가? 편하기 때문이다. 잘 배우고 많이 배우면 성적이 오를 거라는 착각, 다른 친구들이 다니니까 다녀야 할 것 같다는 불안감, 남보다 앞서고 싶은 욕망, 부모님의 요구에 대한 순응도 이유이지만 가장 큰 이유는 편하기 때문이다. 학생도 알지 못하였던 불편한 진실 아닐까?

권승호 전주 영생고 교사

다음 중 옳은 설명은?

①대한민국 중·고등학생의 삶은 엄청 고달프다.

②대한민국 중·고등학생의 삶은 엄청 편하다.

누구나 ①번을 정답이라 생각하고 나 역시 ①번을 정답이라 생각했지만 몇 년 전부터는 ②번도 정답일 수 있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가만히 앉아 있기만 하면 되기 때문이다. 무엇을 공부할지, 어떻게 공부할지, 정답이 무엇일지 고민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머리 쥐어짤 필요 없이 듣기만 하면 되기 때문이고 질문 받으면 모르겠노라 말하면 괜찮기 때문이다.

책상 앞에 앉아 있기만 하면 임무 끝이다. 생각하지 않아도 되고 딴생각해도 되며 졸아도 되고 자도 된다. 얼마나 편한가? ‘한국의 학생들이 가장 편하다’라는 누군가의 이야기가 농담만은 아니다. 배우면 안다고 생각하고 선생님의 실력이 자신의 실력으로 연결된다고 생각한다. 아는 것 같다를 안다고 착각한다. 설명할 줄 모르면서 안다고 큰소리친다. 시간도 돈도 에너지도 많이 투자하지만 지식도 지혜도 보잘것없는 이유다.

학생도 학부모도, 심지어 교사들도 모른다. 세상에 쉽게 얻을 수 있는 것은 없다는 사실을. 땀 흘리지 않고 얻으려는 욕심은 도둑의 심보라는 사실도. 공부는 남이 대신해줄 수 없는 일이라는 상식조차 알지 못한다. 익히지 않으면 배운 것도 도망쳐버린다는 진실은 더더욱 모른다. 스스로 생각하지 않고 스스로 땀 흘리지 않으면 실력을 키울 수 없다는 사실, 반복하지 않으면 알았던 것도 사라져버린다는 사실, 사교육은 익힘의 시간을 빼앗아가기에 실력 향상을 방해할 뿐이라는 사실, 이러한 사실들을 알아야 실력을 키워갈 수 있는데.

<생활의 달인>이라는 프로그램을 볼 때마다 감탄하며 박수를 보내곤 한다. 배워서 ‘달인’이 된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배우지 않았다. 이렇게 저렇게 연구하였고 시간을 투자하였으며 땀 흘림을 즐겼다. 배운다고 실력이 향상되는 것은 절대 아니다. 같은 교실에서 같은 선생님에게 같은 내용의 강의를 들었음에도 누구는 1·2등급이고 누구는 8·9등급임을 통해 확인할 수 있지 않은가? 강의 듣는 일은 공부하는 일이 아니다. 강의 듣는 것만으로 실력을 키워낸 사람은 없다. 노래를 100번 듣기만 하고 무대에 올라 노래 제대로 부를 수 있는 사람은 없고, 하루 15시간 유럽 축구 보기만 하여 축구 잘할 수 있는 사람도 없다. 100번 듣는 것보다 10번 듣고 30번 불러야 노래 잘할 수 있고, 한 시간일지라도 직접 공을 차야 축구 실력을 키울 수 있다.

<아직도 가야 할 길>이라는 책에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저자가 산책하다 잔디 깎는 기계를 고치는 사람을 보고 그에게 다가가 “참으로 대단하십니다. 저는 그런 일은 하나도 할 줄 모르는데…”라고 말하였단다. 그러자 기계 고치던 사람이 퉁명스럽게 “그것은 시간을 들여 해보려 하지 않았기 때문이에요”라고 쏘아붙였다고 한다. 그렇다. 시간을 들여야 하고 스스로 해보려는 의지를 가지고 덤벼야 한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우리나라 학생·학부모들은 배우기만 하면 실력 향상이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잘 가르치는 선생님에게 많이 배우면 성적이 올라갈 거라는 잘못된 생각에서 빠져나오지 못한다. 직간접적으로 경험하고 확인하였음에도 깨닫지 못하고 있다. 생각하고 연구해야 알게 되고 반복해서 익혀야 잘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은 변할 수 없는 진리인데.

권승호 전주 영생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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