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남북] 주택 공급 ‘역대 최다’ 타이틀이 중요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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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전 대통령은 퇴임 직전인 4월 말 방송된 손석희씨와의 대담 프로그램에서 “우리는 역대 어느 정부보다 (주택) 공급이 많았다”고 말했다. 5년 동안 최악의 집값 폭등을 경험한 많은 국민이 황당해했다. 정부의 과도한 규제와 ‘공급 가뭄’ 때문에 집값이 치솟은 걸 알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부의 주택 공급은 이렇게 표현하는 게 정확할 것이다. “역대 어느 정부보다 많은 주택을 공급한다고 발표는 했다.”
문 전 대통령이 “일찍 했으면 좋았겠다”고 후회했다는 주택 공급 대책은 임기 후반부에 쏟아져 나왔다. 2020년 5월과 8월 연달아 대책을 내놓은 정부는 “3기 신도시 등 수도권에 127만 가구를 공급한다”고 발표했다. 작년 2월엔 공공 주도로 서울 32만 가구, 전국 83만 가구를 공급한다는 대책을 추가했다. 집권 초반 “시장에 집이 부족한 게 아니다”라던 정부가 꽁무니에 불이 붙은 것처럼 210만 가구 공급 계획을 뚝딱 만들어냈다. 서울올림픽 전후로 들썩였던 수도권 집값을 안정시킨 노태우 정부의 200만 가구 건설을 뛰어넘는 규모였다.
문제는 역대 최대 규모라는 문재인 정부의 주택 공급을 국민이 전혀 체감하지 못한 것이다. 정부가 발표한 계획은 번복되거나 축소됐고, 주민 반발과 시장의 외면 속에 흐지부지됐다. LH(한국토지주택공사)나 SH(서울주택도시공사)가 시행사로 참여해 수도권에서 5만 가구 이상을 공급한다던 ‘공공재건축’은 사실상 용도 폐기됐다. 경기도 광명·시흥에 7만 가구를 새로 짓는다던 발표는 일주일도 안 돼 터진 LH 직원 땅 투기 ‘광풍’에 휩쓸려 추진 동력을 상실했다. 서울 태릉골프장에 아파트 1만 가구를 짓는 계획은 얼마 뒤 6800가구로 축소됐지만, 여전히 주민 반발이 거센 탓에 성사 여부가 불투명하다. 태릉골프장 부지 외에도 정부가 공공 택지나 도심 고밀(高密) 개발 후보지로 발표했다가 각계각층의 반발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곳이 부지기수다.
윤석열 정부가 지난 16일 첫 번째 주택 공급 대책을 발표했다. 내년부터 5년간 서울 50만 가구 등 전국에 270만 가구를 공급한다는 내용이다. 윤석열 대통령의 대선 공약인 250만 가구보다 20만 가구가 더 늘었다. 새 정부가 공급 확대를 주택 정책의 확고한 기조로 삼고, “출범 100일 안에 세부 계획을 내놓겠다”는 약속을 지킨 것은 점수를 받을 만하다. “공공 주도로 대량의 주택을 공급할 수 있다”고 밀어붙인 이전 정부와 달리 불필요한 규제를 풀어 민간의 역량을 최대한 이끌어 내겠다는 정책 방향도 바람직하다.
다만 윤석열 정부가 ‘전 정부보다 많은 물량’ ‘역대 1위’ 같은 타이틀에 집착해 주택 공급을 추진하는 게 아닌가 걱정스러운 부분도 있다. 아무리 인·허가 기준이라고 해도 270만 가구는 어림잡기 어려울 정도로 많은 물량이다. 작년 주택총조사 결과, 부산·대구·광주·대전·울산 등 지방 5대 광역시와 세종에 있는 모든 아파트를 더해야 270만 정도다.
관건은 결국 실천이다. 단 1000가구라도, 개별 정책 중 하나라도 하루빨리 부동산 시장에서 실제로 구현되는 것이 중요하다. 시세의 70%에 역세권 아파트를 분양받은 신혼부부, GTX(수도권 광역급행철도)를 타고 출퇴근하는 신도시 주민, 재건축 초과이익 부담금을 감면받는 사람, 완화된 기준의 안전 진단을 통과하는 노후 아파트 단지가 조속히 나와야 한다. ‘이 정부는 정말로 270만 공급을 하려는구나’라는 신뢰가 확산한다면, 아득해 보이던 ‘부동산 시장 안정’이라는 목표가 손에 잡힐 듯 또렷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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