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 칼럼] 안빈낙도의 삶

국제신문 2022. 8. 18. 03:03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가난마저 삶으로 여긴 안회, 공자도 경이로워하며 감탄
조선 선비도 정신 이어받아..현재의 상류층은 어떠한가

공자(孔子) 사당인 문묘(文廟)나 대성전(大成殿)을 방문할 때마다 제자들의 순서가 궁금했다. 공자가 가운데 있고, 그 왼쪽 첫 번째 줄에 안회(顔回)가 있고 자사(子思)가 있다. 오른쪽 첫 번째 줄에 증자(曾子)가 있고 맹자가 있다. 왼쪽이 우선이라는 말이 있는데. 그렇다면 안회 증자 자사 맹자의 순서로 이어진다. 같은 제자인데 왜 안회가 증자보다 먼저인가?

증자는 공자가 말한 일이관지(一以貫之)를 “자기 마음으로 상대방의 마음을 이해하며 일을 처리해 나간다”는 충서(忠恕) 개념으로 설명했다. 증자는 매일 세 번 자신을 반성하며 몸과 마음을 닦는 삶을 살았다. 군자는 자기 인격 수양에 힘쓸 뿐 다른 사람이 알아주기를 바라지 않는다는 말이 ‘논어’의 핵심인데, 증자가 줄곧 강조하던 말이다. 이런 증자가 있었기 때문에 공자의 학문이 후세에 계승 발전될 수 있었다. 그런데 학문적으로 공헌한 증자보다 안회를 더 평가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공자가 안회에 대해서 말했다. “어질다, 안회여! 밥 한 그릇과 물 한 바가지로 끼니를 때우면서 누추한 곳에서 생활하는 것을 사람들은 감당하지 못하거늘, 안회는 오히려 즐거움으로 여기는구나. 어질다, 안회여!”(賢哉라 回也여 一簞食와 一瓢飮으로 在陋巷을 人不堪其憂어늘 回也不改其樂하니 賢哉라 回也여). 공자의 제자들은 세속적으로 성공한 삶이란 마차를 끌고 가벼운 가죽옷을 입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들은 가난을 극복해야 할 대상으로 여겼다. 그런데 안회는 가난을 평소의 삶으로 받아들였다. 공자는 안회를 경이로운 눈으로 바라보고 찬탄했다. 그러면서 제자들에게 말했다. “안회는 너희들은 물론 나보다 낫다!” 공자는 안회를 어질 인(仁)자에 가장 접근한 제자로 인정했다. 그러면서 인(仁)의 경지에 도달하는 방법을 알려주었다. 후세 학자들은 안회를 성인(聖人)은 아니어도 현인(賢人) 정도는 된다고 평가했다.

조선시대 선비들도 안회를 모범적인 인물로 추앙하였고, 선비는 으레 가난하게 산다고 생각하며 살았다. 그러면서 부유함은 감추려고 하였고 오히려 가난한 삶을 떳떳하게 여겼다. 이들의 가난에 대한 인식을 잘 알게 해주는 ‘논어’의 문장을 인용해본다. “부유함과 높은 지위는 모든 사람들이 원하는 것이지만 부당한 방법으로 생긴다면 받아들이지 않는다. 가난함과 낮은 직급은 모든 사람들이 싫어하는 것이지만 내 잘못으로 생긴 것이 아니라도 버리지 않는다.”(富與貴是人之所欲也나 不以其道로 得之어든 不處也하며 貧與賤이 是人之所惡也나 不以其道로 得之라도 不去也니라).

위의 두 문장에서 첫 문장은 문제가 없다. 부당한 방법으로는 부자가 되고 높은 자리에 오르는 짓을 하지 않겠다는 말이니 그대로 당연할 뿐이다. 그런데 문제는 두 번째 문장에 대해 상반된 해석이 가능하다는 점이다. 내 잘못이 아닌 데 빈곤에 처하게 되었을 때 어떻게 해야 하는가? 내 잘못이 아니라면 극복하려고 노력하는 것이 당연한 것 아닌가? 그렇지만 위의 인용문처럼 완전히 다르게 해석할 수도 있다. 내 잘못으로 가난하게 된 것이 아니더라도 그런 가난을 버리지 않는다는 뜻으로 해석하는 것이다. 이렇게 한문 원문은 그대로인데 토를 어떻게 다느냐에 따라 뜻이 완전히 달라진다. 조선시대 선비들은 두 가지 해석을 놓고 격렬한 논쟁을 벌였다. 그러다가 결국 어떤 경우에도 가난을 버리지 않는다는 해석을 채택했다. 그런 정신이 1590년과 그 이후에 계속 간행된 ‘논어언해(論語諺解)’에 반영됐다. ‘논어언해’는 ‘논어’에 대한 표준적인 한자음과 해석을 국가적 차원에서 제시하기 위해 만든 일종의 국정교과서다. 여기에서 해석이 곧 국가적으로 인정하는 것이다. 이런 책에서 이 문장을 해석할 때, 가난과 낮은 직급은 내 잘못이 아니더라도 그것을 버리지 않는다는 뜻으로 “득지(得之)라도”라는 토를 달아서 해석했다. 이것은 가난을 장애나 질병, 불행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평소의 일처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라는 말이다. 그야말로 고난도의 선비정신인 것이다. 그런 삶의 모델이 안회였다.


최근 몇 년간 빈부 격차가 더욱 심화되었다. 계급과 계층이라는 말이 다시 등장하고, 젊은 세대는 빈부 차이를 정직한 근로와 자력을 통해서는 극복할 수 없다고 체념하고 있다. 실패와 가난이 곧 죽음으로 이어지는 극단적인 사례도 발생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도 일확천금을 번 사람들에 관한 믿기 어려운 이야기가 언론에서 계속 보도되고 있다. 이렇게 심각한 양극화 상황에서 고위 공직이나 교직에 있거나 사회적으로 주목을 받는 사람들의 처신은 어떠해야 하는가? 안빈낙도(安貧樂道)의 삶을 산 안회를 그리워하며, 운명처럼 닥친 시련에 의연히 맞서며 분투를 벌이는 분들에게 거듭 위로와 격려를 보낸다.

부남철 영산대 자유전공학부 교수

Copyright © 국제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