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구명가 삼성, 재건은 지옥에서 시작됐다
남자 프로농구 2022-2023시즌은 두 달 후인 10월 15일 개막한다. 서울 삼성 썬더스의 은희석(45) 신임 감독은 누구보다 다가오는 시즌을 설렘 속에 기다린다. 삼성은 지난해 9승 45패, 1할대 승률로 최하위 수모를 맛봤고, 은 감독에게 ‘구원투수’ 역할을 맡겼다. 그는 KGC 인삼공사에서 은퇴한 뒤 1년간 코치로 있다 모교 연세대 감독으로 부임했고, 당시 중위권을 맴돈 연세대를 몇년간 공들인 끝에 최강으로 이끌었다. 연세대는 은 감독 지휘 아래 대학농구리그 5회 연속 우승 위업을 이루기도 했다.
최근 훈련장인 용인 삼성 트레이닝센터(STC)에서 만난 은 감독은 “성적에 대한 부담이 없다면 거짓말이지만, 도전자로서 기대감이 더 크다”며 “현 위기를 극복하고 팀에 사라진 투지를 되살리기 위해 ‘올드 스쿨(Old School)’, 즉 옛날 농구에서 답을 찾았다”고 했다. 은 감독은 팀을 맡은 뒤 가장 먼저 훈련량부터 늘렸다.
◇”하루 한 시간의 마법, 투지를 되살린다”
삼성의 훈련은 오전 7시 시작된다. 아침 먹고 9시 30분 시작하던 훈련을 두 시간 반 정도 앞당겼다.
“선수들이 식사 전 한 시간 정도 가볍게 공 만지고 패스, 슈팅 하는 시간을 만들었어요. 그 소리를 들은 한 선배님이 ‘손 감각 무딘 아침에 공 다루는 연습을 하면 도움이 많이 된다’고 하시더라고요. 뜻밖의 효과도 봤네요, 하하.”
과거 일주일이던 국내 전지훈련도 2주로 늘렸다. 강원도 한 스키장에서 눈 없는 아스팔트 코스 오르막길을 달리며 극한 훈련을 소화했다. 새로 팀에 합류한 베테랑 이정현(35)이 “지옥 같다”고 했고, 프로 2년 차 이원석은 “꿈도 꾸고 싶지 않다”고 했다. 8월부터 팀 훈련과 연습 경기로 시즌을 준비 중이다. 삼성 관계자는 “감독님이 체력 강화에 비중을 많이 두고 있다”고 말한다.
팀 훈련 코트 한쪽 벽에는 ‘Family(가족)’와 ‘One Team One Goal(하나의 팀, 하나의 목표)’, 다른 한쪽에는 ‘Defense(수비)’와 ‘Rebound(리바운드)’라고 새겨진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모두 은 감독이 직접 고른 문구라고 했다.
“강한 수비, 다섯 명 모두가 가담하는 리바운드를 강조하고 있어요. 조직적인 수비를 바탕으로 트랜지션 오펜스(공수 전환 때 공격을 빨리 하는 것) 기회를 많이 만드는 게 제가 추구하는 농구죠. 훈련할 땐 하나가 돼 최선을 다하고, 끝난 뒤엔 가족처럼 지내는 팀 문화를 만들자는 뜻도 담겨 있어요.”
대학·프로 시절 뛰어난 수비수로 이름을 날렸던 그는 “선수들이 상대를 막아냈을 때 희열을 느껴 더 재미있게 수비했으면 좋겠다”며 “키가 작아도 리바운드를 따낼 수 있다는 열정도 심고 싶다”고 했다.
은 감독에겐 당장의 성적과 함께 팀의 미래를 길러내는 임무도 맡겨졌다. 삼성은 최근 신인 드래프트에서 즉시 전력감보다는 나이가 어린 차민석(21)과 이원석(22)을 지명했다. 노련한 가드 이정현을 ‘취임 선물’로 받은 은 감독은 “이정현이 가세하면서 메인 볼 핸들러 김시래(33)의 부담이 줄고, 어린 선수들이 보고 배우며 성장할 환경이 마련됐다”고 했다.
◇ “대학 감독 출신은 실패한다? 편견이다”
농구계에선 ‘대학 감독 출신은 프로에서 실패한다’는 통념이 존재한다. 삼성 역시 중앙대 최강을 이끈 김상준 감독이 2011년 부임했다가 성적 부진으로 한 시즌 만에 사임했던 아픈 기억이 있다. 은 감독은 이에 대해 “대학 감독들이 지금 이 순간에도 어려운 환경 속에서 묵묵히 선수를 길러낸다”며 “편견과 평가절하가 줄어들도록 내가 더 잘하겠다”고 다짐했다.
그는 대학 감독 시절 스파르타 훈련과 함께 학구파로도 유명했다. 지금 사용하는 감독실 테이블에는 코치들이 사용하는 노트북 컴퓨터 여러 대가 놓여 있었다. 한쪽 벽면에 새로 달아놓은 화이트보드에는 ‘2-1-2′ ‘2-2-1′ ‘¾ 지점 스틸’ 등 각종 작전을 암시하는 단어가 줄줄이 적혀 있었다.
“미국 서던메소디스트대학(SMU)에 연수 갔을 때 래리 브라운(82) 감독이 하던 것에서 착안했어요. 코치들과 함께 앉아서 각자 업무를 보다가 외국 경기 영상도 함께 보고, 화이트보드에 떠오르는 걸 적고 이런저런 얘기를 하며 새 아이디어를 얻는 거죠.”
브라운 감독은 미국 농구 역대 최고 명장으로 꼽히는 인물이다. 은희석 감독은 “프로팀 선수와 코치, 대학팀 감독 등을 하며 국내외에서 보고 배운 것들을 앞으로 팀에 반영해 나가겠다”고 했다. 올 시즌 목표를 플레이오프 진출로 내세운 그는 “우린 지난 시즌 꼴찌고 다른 팀의 먹잇감이다. 다른 9팀이 모두 넘어야 할 산이지만, 물러설 곳이 없는 팀의 무서움을 보여주겠다”고 투지를 불태웠다.
/용인=김상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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