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사일언] 길 알려주기의 ‘어려움’

전현우 서울시립대 자연과학연구소 연구원 2022. 8. 18. 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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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다 보면 유독 내게 길을 묻는 사람이 많다. 초행길이라도 그렇다. 심지어 외국 여행 중에 내게 길을 묻는 사람들을 만나기도 한다. 출장을 가든 여행을 가든 늘 대중교통을 이용하고, 시간 나면 일삼아 도시 구석구석을 답사하다보니 길 위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아 그럴 것이다.

길을 알려줄 때 상황은 대체로 두 차원으로 나뉜다. 한 차원은 주변 다른 사람들이 참견할 수 있는지 아닌지 여부, 또 다른 차원은 목적지가 종합병원이나 KTX 역사 같은 상당한 규모의 건축물인지 여부다. 첫 차원은 내가 혼자 상황을 처리해야 하는지를 결정하고, 둘째 차원은 정보를 얼마나 상세하게 상대가 알아들을 수 있도록 전달할지를 결정한다.

첫 차원에선 사람들이 참견할 때 더 흥미롭다. 예컨대 정류장이나 버스 안에서 이 차가 특정 목적지로 가는지 묻는 상황을 떠올릴 수 있다. 대답할 사람이 나밖에 없다면 대부분 스마트폰에서 정확한 정보를 찾아 알려준다. 하지만 주변에 다른 사람들이 있다면 내가 스마트폰을 뒤지는 사이 승객들은 자신들 머릿속에 있는 정보를 나름대로 늘어놓는다. 그 웅성거림 속에서 정확한 정보가 나올 때도 있고, 산으로 가는 경우도 있다. 경험상 그 비율은 5대5 정도였던 것 같다.

둘째 차원에선, 규모가 큰 목적지를 찾아가는 경우라면 별 어려움이 없다. 하지만 이 규모가 작아질수록 문제는 복잡해진다. 예컨대 작은 가게나 빌라로 들어가는 골목을 알려줘야 할 때 정보를 대충 알려줬다간 사람들은 목적지 주변을 빙빙 헤매고 말 것이다. 자세하게 길을 알려줘야 할 때, 지도를 활용하곤 한다. 하지만 모두가 지도에 익숙한 것은 아니다. 그럴 때면 남은 방법은 하나, 결국 눈에 보이는 지형 지물을 손가락으로 일일이 가리켜 가며 목적지를 알려줘야 한다.

AI(인공지능)에 의한 자율주행이 유망 기술이 되면서 지리 정보의 중요성은 하도 들어서 진부하게 느껴질 정도다. 하지만 지리 정보를 실제 길찾기에 활용하려면, 얼마나 많은 판단과 해석이 붙어야 할까. 낯선 사람에게 길을 알려줄 때마다 이를 새삼스럽게 깨닫는다. 이는 서로 다른 배경 지식, 서로 다른 이해의 지평 속에서 무언가 공유하는 것을 찾아내는 훈련에도 꽤 유용한 수단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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