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이코노미스트] 최후통첩 게임과 새 정부 개혁과제

2022. 8. 18. 00:06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출범 100일 맞은 尹정부 개혁
세대 간 공정성 회복이 핵심
손실회피 성향에 수도 많은
기성세대는 희생수용 어려워
개혁 실패가 불러올 계산서
투명 공개해 압박하는 수밖에
최후통첩 게임(Ultimatum game)은 실험경제학의 방법론으로 인간의 의사결정이 경제적 합리성으로만 설명되지 않음을 보여준다. 게임 참가자는 제안자와 반응자로 구분되며 제안자는 일정 금액의 돈에 대한 분배 권한을, 반응자는 제안에 대한 거부권을 갖는다. 제안이 거부되면 참가자 누구에게도 보상이 주어지지 않는다. 잘 알려진 바대로 반응자는 경제적으로는 이득이지만 공정하지 못하다고 판단되는 제안을 거부하며, 제안자는 30% 이상을 반응자에게 제안하는 경향을 보였다. 실험 결과는 경제적 이득의 크기로 인간의 선택행위를 설명한 전통적 경제학에 비해 공정성에 기반한 사회적 협력이 가능함을 의미한다는 점에서 매우 고무적이다. 그런데 최후통첩 게임이 함축하는 것과 달리 현실에서 보다 공정하고 지속가능한 경제사회 개혁의 길은 왜 이렇게 험난하고 지지부진한가. 최후통첩 게임과 현실의 개혁 과제는 어떻게 다른가.

윤석열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지속가능한 복지를 위한 연금개혁, 일자리 창출을 위한 노동개혁, 기술 진보에 맞는 교육개혁을 새 정부의 3대 개혁과제로 내걸었다. 대부분 사회경제 개혁은 기존 제도가 만들어낸 기득권이 배분의 공정성을 떨어뜨려 경제의 성장동력과 사회의 지속가능성을 훼손시키는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것이다. 특히 새 정부가 지난 100일 동안 제시한 개혁 의제의 주요 내용은 국민연금에서 내는 돈과 받는 돈의 모수 조정, 노동 분야에서 연공서열제도나 이중노동시장 개혁과 같이 세대 간 공정성의 회복을 주요 축으로 한다.

세대 간 갈등 문제는 참여자 간 협력을 통해 사회적 파이를 키울 수 있으며 제안자(기성세대)와 반응자(청년세대)로 구분된다는 점에서 일견 최후통첩 게임과 유사해 보이지만 두 가지 점에서 결정적인 차이가 있다. 우선 게임의 출발점 차이에 따른 보상체계 차이를 들 수 있다. 최후통첩 게임에서 제안자는 더 많이 가질 것인지, 조금 덜 가질 것인지를 선택했다. 이에 반해 연금·노동개혁에서 기성세대는 이미 기득권자의 지위를 누리고 있으므로 제안자는 현재만큼을 누릴 것인지, 덜 누릴 것인지의 선택에 직면하고 있다. 행동경제학의 대가인 리처드 세일러 교수가 이야기한 '손실회피' 성향에 따르면 인간은 이익에 비해 손해에 훨씬 더 민감하게 반응한다. 세대 간 개혁은 기성세대가 손해의 정도를 선택하는 문제이므로 현재보다 덜 누리는 개혁은 고도성장의 시대에 커진 경제 파이를 나누는 것과는 비견되기 어렵다.

의사결정 구조의 차이 역시 세대 간 갈등 문제의 구조개혁을 어렵게 하는 요인이다. 최후통첩 게임에서 반응자는 제안에 대한 거부권을 갖는 것으로 설계돼 있다. 현대 민주주의에서의 1인 1표와 다수결원칙을 고려하면 반응자의 거부권이 실질적 의미를 가지기 위해서는 참여자는 소수의 제안자, 다수의 반응자로 구성돼야 한다. 그러나 연금개혁, 노동개혁과 같은 세대 간 이슈에서는 기성세대가 오히려 다수를 점하고 있다. 이런 인구구조에서는 반응자의 거부권이 투표를 통해 실현되기 어려우며 제안자가 공정한 분배구조를 제안할 유인이 줄어들게 된다.

결국, 공동체적 협력의 가능성을 제시한 최후통첩 게임의 논리와 달리 새 정부가 풀어야 할 개혁과제는 구조적으로 훨씬 더 까다롭다. 이러한 조건하에서 제안자가 당장의 손해를 감수하더라도 세대 간 공정성 확보를 위한 개혁에 동참하게 할 묘수는 없다. 개혁의 실패가 제안자와 반응자 모두에게 가져올 계산서를 국민에게 투명하게 제시하고, 노딜(No Deal)에 따른 결과가 현상 유지가 아니며 현재의 보상체계는 붕괴될 수밖에 없음을 지속적으로 설득하는 것이 유일한 해법으로 보인다.

[이선화 국회미래연구원 연구위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Copyright © 매일경제 & mk.co.kr.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