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끼에 미군사망..北 8·18 판문점 도끼 만행[그해 오늘]

김영환 2022. 8. 18. 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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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6년 8월18일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에서 `도끼만행사건`이 벌어졌다.

미루나무 가지를 자르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북한군이 유엔(UN)군 장교를 사망케 한 사건으로, 한국전쟁 휴전 이후 한반도 내 군사적 긴장감이 가장 높아졌다.

이날 오전 JSA UN군 제3초소 앞에서 UN군 11명의 호위 아래 한국인 노무자 5명이 미루나무 가지를 쳐내고 있었다.

미루나무 절단 자체를 지켜보기만 했으며 한국군이 북한군 초소를 공격하는데도 도망치기에 바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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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루나무 가지치기 빌미로 北, 유엔군 장교 살해
美, 한반도에 전력 동원..'데프콘3' 발령하며 준전시체제 돌입

[이데일리 김영환 기자] 1976년 8월18일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에서 `도끼만행사건`이 벌어졌다. 미루나무 가지를 자르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북한군이 유엔(UN)군 장교를 사망케 한 사건으로, 한국전쟁 휴전 이후 한반도 내 군사적 긴장감이 가장 높아졌다.

북한군들이 1976년 8월 18일 판문점 도끼만행 사건 당시 JSA 모습.(사진=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
이날 오전 JSA UN군 제3초소 앞에서 UN군 11명의 호위 아래 한국인 노무자 5명이 미루나무 가지를 쳐내고 있었다. 관측소의 시야 확보를 위해 풍성해진 나무를 자르려고 한 것이다.

이때 북한군 10여 명이 나타나 이를 방해하며 대치했다. UN군은 작업을 이어나갔고 이후 20여 명의 북한군이 도끼 등의 무기를 갖추고 더 합류했다. 이들은 당시 현장을 지휘하고 있던 미국군 장교 보니파스 대위와 바레트 중위를 도끼로 살해했다. 단 4분만에 벌어진 참극이었다.

미국과 한국이 발칵 뒤집혔다. 사건 직후 주한미군 사령관 리처드 스틸웰은 일본에서 전투기를 타고 급거 한국으로 돌아와 박정희 대통령을 만나 `데프콘3` 발동에 합의했다.

한국전쟁 이후 `데프콘3`가 발령된 것은 처음으로, 사실상 준전시체제에 돌입한 것이다. 북한도 사건의 책임을 상대에게 돌리면서 전시태세에 돌입했다. 미군이 먼저 도끼를 던졌다면서 적반하장으로 맞섰다.

미국은 문제가 된 미루나무를 제거하는 `폴 버니언` 작전을 통해 전쟁을 준비했다. 미국 본토와 괌, 오키나와 등에서 전투기와 항공모함 등 전력을 한반도에 배치했다. 미루나무 절단 중 북한이 교전 의지를 보일 경우 JSA를 넘어 북한을 타격하겠다는 계획이었다.

북한은 미국의 대규모 화력 시위에 한발뒤로 물러섰다. 미루나무 절단 자체를 지켜보기만 했으며 한국군이 북한군 초소를 공격하는데도 도망치기에 바빴다. 소련과 중국 등 당시 공산권 국가도 `미국`을 넘어 `UN`을 공격한 북한과 거리를 뒀다.

결국 북한은 미국에게 `비밀회담`을 요청하고 김일성이 `유감 표명` 편지를 낭독하면서 위기가 해소됐다. 북한이 항전 의지를 보이지 않은 데다 김일성이 유감을 표명하면서 미군은 작전을 종결지었다.
(사진=연합뉴스)
이 사건을 계기로 JSA 경비 초소는 확실한 경계를 세우고 남과 북의 분할경비로 바뀌었다. 여담으로 문재인 전 대통령이 당시 북한 초소를 공격했던 특전사 제1공수 특전여단 소속으로 작전에 투입되기도 했다.

김영환 (kyh1030@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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