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업계 "정부 주도 EUV 전용 연구 인프라 절실"

강해령 기자 2022. 8. 17. 2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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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차세대 리소그래피 학술대회 패널 토론 현장. 사진=서울경제 DB
[서울경제]

"기술 개발에 성공했더라도 마음놓고 테스트할 수 있는 공간이 없습니다. 정부가 과감하게 극자외선(EUV) 전용 테스트베드에 투자해야 합니다."

국내 반도체 EUV 분야 업계 관계자들이 국가 주도의 연구 인프라가 절실하다는 목소리를 냈다.

17일 경기도 수원컨벤션센터에서 열린 2022 차세대 리소그래피 학술대회에서는 'EUV 리소그래피 생태계 어디까지 왔나'라는 주제로 반도체 업계·학계 관계자들의 토론이 열렸다.

토론은 안기현 한국반도체산업협회 전무, 김재현 SK하이닉스 펠로우, 박상일 파크시스템스 대표, 이상설 포항가속기연구소 박사, 김병국 이솔 대표, 이승훈 영창케미컬 대표, 신철 에스앤에스텍 부사장, 권석준 성균관대 교수, 김학용 한국표준과학연구원(KRISS) 박사 등이 참여했다.

이들이 이날 논의한 주제인 EUV는 오늘날 반도체 업계에서 가장 뜨거운 분야다. EUV는 13.5나노(㎚·10억분의 1m) 파장을 가진 빛이다. 이 광원은 반도체 웨이퍼 위에 빛으로 회로 모양을 반복적으로 찍어내는 노광 공정에서 활용된다. 기존 불화아르곤(ArF) 빛보다 파장이 13분의 1 짧아 7나노 이하 초미세 회로를 균일하고 반듯하게 찍어낼 수 있는 것이 특징이다. 최근 삼성전자, SK하이닉스, 인텔, TSMC, 마이크론 등 기라성 같은 회사들은 이 기술을 선점하기 위해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다. 게다가 반도체가 세계 패권 전쟁의 키워드가 되면서 국가 간 EUV 인력·인프라 투자 경쟁도 치열하다.

우리나라는 EUV 반도체 강국이다. 삼성전자는 2019년 세계에서 처음으로 EUV를 파운드리 공정에 적용했다. 메모리 분야 최강자인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일찌감치 EUV 기술을 D램에 도입했다.

노광 공정 생태계. 붉은색으로 표시된 노광 장비 분야는 100% 해외 의존, 노란색으로 표시된 광원, 웨이퍼, 포토레지스트, 블랭크마스크는 70% 이상을 외산 업체에 공급받고 있다. 자료=안기현 한국반도체산업협회 전무 발표자료

하지만 국내 EUV 생태계를 조금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소재·부품·장비 생태계는 상당히 열악하다. EUV 노광에 필요한 노광 장비는 네덜란드 ASML에 100% 의존하고 있다. 노광 공정 전 웨이퍼 위에 바르는 포토레지스트는 JSR, 신에츠, 도쿄오카공업(TOK) 등이 90% 이상을 차지했다. 대중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블랭크마스크, 트랙 장비 분야도 외산 의존도가 상당히 높다. '경제 안보'가 세계 정보기술(IT) 시장의 키워드가 된 요즘 공급망 마비 발생 시 순식간에 생태계가 무너져내릴 수 있는 상황이다.

2019년 일본 수출규제 이후 국내 다양한 중소·중견 업체들이 EUV 생태계 진입에 도전하고 있다. 이솔은 EUV 포토레지스트 성능 테스트 장비 '에밀레'를 개발했고, 영창케미칼은 노광 작업 후 웨이퍼 위 각종 찌꺼기를 씻어내는 EUV 린스액 양산을 세계에서 두번째로 도전 중이다. 에스앤에스텍은 EUV용 블랭크마스크, 펠리클 개발을 위해 분전하고 있다.

다만 이들은 제품 개발보다 어려운 것이 '테스트' 작업이라고 토로했다. 매출이 작은 소규모 기업이 2000억원 이상의 ASML 노광 장비 등 인프라를 갖추기는 쉽지 않다. 더군다나 국내 어느 곳에서도 개발한 EUV 제품을 실험할 공간이 없다. 외국까지 나가야 해 한번 테스트하는 데에만 6개월 이상 소요된다.

국내 칩 제조사와 협업하기도 쉽지 않다. 국내 소부장 업체들과 칩 제조사 간 기술력이 현저히 차이나기 때문이다. 그나마 국내에 흩어져 있는 여러 국책 연구기관들은 EUV 관련 제품을 테스트하기에 노후한 인프라를 갖추고 있다.

박상일 파크시스템스 대표는 "그간 정부가 투자했던 인프라는 활용도가 떨어지면서 운영 주체와 기업 간 괴리가 너무 크게 벌어진 것이 문제"라며 "회사 연구팀이 벨기에 반도체 연구 허브 아이멕(IMEC)까지 가서 실험을 진행하면 너무 비용이 많이 들어 인프라가 중요하단 걸 절실히 느낀다"고 밝혔다.

따라서 패널들은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기술 격차를 완충할 만한 공공 EUV 전용 연구 인프라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일본 세릭트, 미국 세마텍, 벨기에 아이멕 등 국가 주도 연구 기관은 레이저텍, 자이스 등 이름만 들어도 알만한 EUV 소부장 강자들을 키워낸 주역이었다.

김병국 이솔 대표는 "국내 EUV 소부장 생태계가 '아기'라면 삼성전자, SK하이닉스는 '박사' 수준"이라며 "EUV가 가장 중요한 이슈가 되는 만큼, 마치 ‘영어 유치원’ '특성화고'처럼 EUV 역량만 집중 육성해줄 정부 인프라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향후 EUV 연구 인프라가 한 곳으로 집중돼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다. 이상설 포항가속기연구소 박사는 "2019년 일본 수출규제 사태 이후 다양한 국가 연구 인프라가 생기고 있지만 개별 장비들이 여러 군데로 분산되고 있는 것이 마음이 아프다"고 말했다. 그는 “국내 수요 기업들이 사회 공헌 활동 차원에서 장비를 기부한다고 했지만, 국내에서 이 설비를 운영할 수 있는 곳은 제한적”이라고 밝혔다.

안기현 한국반도체산업협회 전무는 "정부가 반도체를 국방이라고 생각하면 경제성을 따지기 전에 첨단 미래 기술 연구 설비 투자를 고려할 수밖에 없다"며 "반도체가 안보 자산이 된 만큼 우리 업체들이 EUV 연구 인프라를 찾아 해외로 떠나는 시간을 줄이도록 정부가 독려해야 한다"고 밝혔다.

강해령 기자 hr@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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