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 정부 '시행령 통치' 정당화에 팔 걷은 법제처
법제처 "사법체계 혼란 방지"
입법예고 기간 단축 확인서
경찰국 신설 때도 유사 패턴
전문가 "제 역할 하는지 의문"
검사의 직접 수사 범위를 대폭 넓히는 내용의 법무부 시행령 개정안에 대해 법제처가 ‘제때 정비해 사법체계 혼란을 방지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을 낸 것으로 확인됐다. 법무부의 ‘검수원복’(검찰 수사권 원상 복구) 시도를 두고 검찰 수사권 축소법(개정 검찰청법·형사소송법) 취지에 반한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지만 법제처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법제처가 윤석열 정부의 ‘시행령 통치’를 정당화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17일 기동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법제처에서 받은 ‘입법예고 기간 단축 사유서’(지난 8일자)를 보면, 법무부는 ‘긴급을 요하는 경우’라는 이유로 법제처에 시행령 개정안의 입법예고 기간 단축을 요청했다. 행정절차법은 원칙적으로 법령안 입법예고 기간을 40일 이상으로 규정한다. 다만 특별한 사정이 있을 때 법제처장과 협의해 단축할 수 있다. 법무부는 이번 시행령의 입법예고 기간은 법제처와 협의를 거쳐 17일(이달 12~29일)로 줄였다.
법무부는 “개정 검찰청법 시행(다음달 10일) 이전에 시행령 개정 및 시행규칙 폐지가 완료되지 않으면 기존에 공직자범죄·선거범죄·방위사업범죄·대형참사로 분류됐던 범죄들이 개정 검찰청법의 ‘등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중요범죄’로 편입되는지 여부에 대해 해석상 혼란이 발생한다”는 이유를 들었다.
국회는 검찰청법을 개정해 검찰의 수사 개시 범위를 종전 6대 범죄에서 ‘부패범죄·경제범죄 등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중요범죄’로 줄였다. 법무부는 이 문구 중 ‘~ 등’이라는 표현이 모호하다는 명분을 들어 시행령 개정을 정당화한 것이다.
법제처는 법무부 입장을 전적으로 수긍했다. 법제처의 ‘입법예고 기간 단축 확인서’(지난 11일자)를 보면, 법제처는 ‘검토 의견’에서 “(법무부 개정안은) 검찰청법 개정으로 법률에 예시된 중요범죄의 유형이 6종 등에서 2종 등으로 변경됨에 따라 기존의 분류체계를 개편하는 한편 국가의 범죄 대응 역량 약화, 사건 이송으로 인한 절차 지연 등 현행 규정의 운영과정에서 발생한 실무상의 문제점을 보완하려는 것”이라고 했다.
이어 “개정 법률의 시행일에 맞춰 대통령령으로 위임된 사항을 제때 정비함으로써 수사 개시의 효력 등에 관한 사법체계 혼란을 방지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시행령 개정안이 모법의 입법 취지에 반한다는 비판이 비등하고 한동훈 법무부 장관조차 시행령 개정안이 모법을 개정한 입법자의 ‘속내’에 반한다는 사실을 인정했지만 법제처는 그에 대해서는 아무런 언급도 하지 않았다. 한상훈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다툼이 있을 수 있는데 법제처가 일방적으로 법무부와 같은 입장을 취하는 게 적절한지 모르겠다. 법제처가 제 역할을 하고 있는지 의문이 든다”고 했다.
윤석열 정부의 ‘시행령 통치’는 입법예고 기간 단축, 법제처의 뒷받침 등 유사한 패턴으로 반복되고 있다. 행정안전부는 경찰관들이 경찰국 설치에 반대하자 시행령 개정안 입법예고 기간을 4일로 단축했다. 법무부 산하 인사정보관리단 신설은 입법예고 기간이 이틀뿐이었다. 법령에 시민 의견을 충분히 반영하도록 한 ‘40일 원칙’을 번번이 허문 것이다. 이완규 법제처장은 두 사안 모두 문제없다고 했다. 이 처장은 윤석열 대통령의 대학·사법연수원 동기이자 측근으로 분류된다.
이혜리 기자 lhr@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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