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 게이츠 "20년 내 '다음 팬데믹' 가능성 50%..한국, 국제 보건 강화에 더 기여를"
인수공통감염병 자연 발생 늘어
국제사회 ‘감염병 대응·동원팀’
3000명 규모로 즉시 구성 필요
빌 게이츠 ‘빌&멀린다 게이츠 재단’ 공동이사장(사진)이 “20년 이내 다음 감염병에 의한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이 발생할 가능성이 50% 내외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게이츠 이사장은 전 세계 인구가 늘고, 동물의 서식지 등 생태계 파괴가 벌어지며, 국가 간 이동이 자유로워진 환경 때문에 감염병의 창궐 위험이 커졌다고 진단했다.
게이츠 이사장은 17일 서울 여의도 한 호텔에서 경향신문을 비롯한 국내 6개 언론사를 대상으로 기자간담회를 열고 이같이 밝혔다. 그는 “다음 팬데믹에 대비해 국제사회가 3000명 규모의 감염병 즉시 대응팀을 꾸려야 한다”면서 세계 10대 경제대국인 한국이 국제 공중보건체계를 강화하는 데 더 많은 기금을 내고, 혁신 기술을 통해 결핵 백신 개발 등에도 협력하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 게이츠 재단은 백신 개발 등 코로나19 대응에도 힘썼다. 다음 팬데믹의 발생 가능성을 어떻게 보나.
“팬데믹은 두 가지 경로로 일어날 수 있다. 첫번째는 코로나19와 같은 인수공통감염병 등의 자연적 발생이다. 인구가 늘고 인간이 동물들의 서식지를 침범함에 따라서, 또 특정 동물들이 식재료로 쓰이거나, 육류를 파는 공간과 인간의 거주지가 가까울 때 인수공통감염병이 일어나는 것 같다. 실제 100년 전에 비해 이런 질환의 발병 가능성이 더 크다고 생각한다. 해외여행이 자유롭게 이뤄지는 시대에서 세계적 확산은 시간문제다. 한 20년 이내에 다음 팬데믹이 발생할 확률을 50% 내외로 보고 있다. 두번째는 바이오 테러에 의한 팬데믹 가능성도 있다. 예측은 어렵지만 분명한 것은 대응과 대비가 필요하다.”
- 신간 <빌 게이츠 넥스트 팬데믹을 대비하는 법>에선 국제사회가 감염병 대응·동원팀(GERM)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많은 사람이 세계보건기구(WHO)에 이미 팬데믹 대응팀이 있다고 생각한다. 현재 WHO 예산으로는 매우 부족하다. 이번(코로나19)에도 봤다시피 (국제사회는) 적절한 데이터 시스템이나 여기에 맞는 훈련이 되어 있지 않은 상태였다. 소방관들이 주기적으로 소방 훈련을 하고 불을 조기에 진화하기 위해 많은 투자를 하고, 이에 따라 화재로 인한 사망률이나 경제 손실은 급감한다. 이런 전담팀을 꾸리는 데는 예산(연간 10억달러)이 필요한데 다음 팬데믹이 발생했을 때 그 팀을 통해 조기에 대응하고 국제적 확산을 막을 수 있다면 그만큼의 투자 가치가 충분하다. 3000명 정도의 인원으로 구성해서 본부는 제네바에 두고 주요 거점지역에 팀을 뽑는 것을 구상하고 있다.”
- 코로나19 팬데믹 동안 백신이 빨리 나왔지만 (저소득 국가로까지) 분배는 잘 이뤄지지 않았다. 해결 방법은.
“게이츠 재단은 저비용 백신 분야에 굉장히 많은 지원과 후원을 하고 있었다. 재단이 가장 낮은 가격의 공급자를 찾은 덕분에 홍역이나 결핵 등의 질환 백신은 매년 가격이 떨어지고 있었다. ‘백신 분배의 불평등’과 관련해 모든 국가의 노년층이 접종하기 전에는 어떤 국가의 젊은이도 접종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제 생각이다.
다만 어떠한 상황에서도 완벽한 분배란 없을 것이란 생각을 한다. 게이츠 재단은 ‘전 세계 인구가 모두 백신을 맞을 수 있도록 백신 물량을 늘리는 것’을 대안으로 생각하고 있다. 나노입자(나노파티클) mRNA(메신저리보핵산) 백신이 나온다면 백신 물량을 엄청나게 늘릴 수 있을 것이고, 위기 상황에 잘 대응할 수 있을 것이다.”
- 코로나19 팬데믹 기간,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무엇이었나.
“개인적으로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의료진과 보낸 시간이 가장 인상적이었다. 굉장히 안타까운 것은 초기 단계에선 코로나19가 어떤 것인지 몰랐기 때문에 의료진에게 적절한 보호장구가 제공되지 않았다. 엄청난 수의 의료진이 코로나바이러스에 그대로 노출됐고 그로 인해서 젊은 나이에 코로나19 때문에 사망한 의료진도 상당한 것으로 알고 있다. 영웅과도 같았던 그들의 헌신과 노력에 정말 놀랐다.”
- 감염병 이외에 국제사회가 더 지속해서 협력하고 대비해야 하는 과제는 무엇이라고 보나.
“첫번째는 전쟁일 것이다. 국제 공조가 많이 이뤄져야 하는 분야인데 전문 분야가 아니라 간단히 말씀드린다. 두번째는 자연적 발생에 의한 팬데믹 외 바이오 테러로 인한 팬데믹에도 대비를 해야 한다. 세번째로는 기후변화를 말할 수밖에 없다. 어느 국가에서 배출된 온실가스든 전 지구적으로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국제 공조가 시급한 분야라고 생각한다. 각각 성격은 굉장히 다르지만 공통점이 있다면 막대한 자원과 재원, 혁신을 필요로 한다는 점이다. 보건체계의 형평성을 개선하는 것에도 집중하고 싶다.”
- 게이츠 재단은 한국 SK바이오사이언스의 백신 개발에도 투자했다. 한국 제약업계에 추가 지원을 할 것인가. 한다면 어떤 기업에 할 것인가.
“재단이 재정 지원을 하는 기업들을 선정하는 기준이라면 국제 보건에 도움이 되는가이다. 한국의 국제백신연구소(IVI·1997년 한국에 설립된 국제기구)와는 굉장히 오래 협업을 하고 있다. 저희가 하고자 하는 것은 국제 보건을 개선하는 것이기 때문에 백신이 개발된다면 반드시 빈국으로 들어가야 한다. 거기서도 약간의 수지가 맞는 정도의 가격이 돼야지, 영업적인 이익을 좇는 목적이 돼서는 안 된다. 고소득 국가에 비싸게 팔더라도 빈국에는 굉장히 낮은 비용으로 제공해야 한다는 원칙이 있다. 자선단체이기 때문에 얼마나 이익을 냈느냐보다 얼마나 많은 목숨을 살렸나가 가장 중요한 평가 지표로 본다.”
- 국회 연설과 윤석열 대통령 면담에서 한국 정부의 역할을 강조했다. 한국이 어떤 일을 할 수 있나.
“한국은 세계 10대 경제대국이다. 경제 규모에 걸맞게 공적개발원조(ODA)를 늘려야 한다. 국내총생산(GDP)의 0.3% 정도를 ODA로 할당할 수 있다면 국제 공중보건체계의 형평성을 이루는 데 크게 기여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한국에 기대하는 건 두 가지다. 첫째는 ‘글로벌 펀드’(에이즈, 결핵, 말라리아 퇴치를 위한 세계 기금)나 감염병대비혁신연합(CEPI)과 같은 국제 보건에 관여한 기관에 기금 출연을 더 많이 해, 한국이 리더십을 조금 더 발휘했으면 하는 것이다. 둘째는 한국은 작은 기업부터 대기업까지 굉장히 혁신이나 기술발달이 일어나는 국가로 알고 있다. 재단은 최근 결핵 백신을 개발하려고 하는데, 기술력과 전문성을 갖춘 한국 기업들에 이 프로젝트에 참여해달라고 요청할 수 있을 것 같다. 결핵 백신 개발까지는 8~10년 걸리기 때문에 굉장한 인내를 해야 하지만 성과가 나왔을 때 기적, 마법과 같은 일이 될 것으로 생각한다.”
김향미 기자 sokh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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