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411의 목소리] 쿠팡 신선물류센터 노동자의 신산한 일상

한겨레 입력 2022. 8. 17. 18:55 수정 2022. 8. 17. 1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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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11의 목소리]지방 센터에서 일하는 나는 노조가 있다는 걸 피부로 느끼지 못한다. 센터에 조합원도 없고, 노조가 설립됐다는 사실도 모르는 사람이 많다. 그래서 근로계약서에도 모든 것은 취업규칙에 따르고 아니면 기타 사규에 따른다는 내용이 많다. 단체협약을 맺어 직원들의 노동환경이나 조건을 개선하는 때가 오기를 내심 바라고 있다.
지난 6월 서울 송파구 쿠팡 본사 로비 바닥에 점거농성중인 공공운수노조 쿠팡물류센터지회의 요구사항이 적혀있다. 공공운수노조 제공

김미르 (필명 ) | 물류센터 노동자

경남 창원에 있는 한 공장에서 ‘기간제’로 일했다. 2년을 채우기 하루 전 계약이 종료됐다. 다시 구한 일터는 쿠팡에서 식품을 취급하는 신선물류센터였다. 여기서도 벌써 1년이 흘렀다. 돌아보면 짧은 시간이지만 하루하루는 길기만 했다. 고된 노동의 시간이 쌓여야 하루가 간다는 것이 생각보다 잔인하다.

내가 맡은 공정은 ‘포장’이다. 포장업무는 크게 싱귤과 멀티, 두가지로 나뉜다. 한집에 배송되는 물건이 하나인지, 여러개인지가 기준이다. 원래는 4개 조가 일했는데 언제부턴가 프레시백, 박스 2개 조로 나뉘어서 일하게 됐다. 날마다 관리자가 일하는 자리를 지정해준다. 프레시백과 박스에 아이스팩을 개수에 맞게 넣어 포장하고 운송장을 넣어서 차량 상하차가 이뤄지는 허브 쪽으로 가는 레일에 올리는 작업을 한다. 조별로 한달에 다섯번 정도 아이스팩 대신 드라이아이스를 넣는 냉동 작업을 한다.

근무는 오전, 오후, 심야 3개 조로 나뉜다. 내가 일하는 주간 조는 아침 8시~오후 5시까지 8시간 일한다. 10시50분과 11시50분 두번 마감 때는 전쟁이다. 오후에는 마감은 없지만 물량이 밀려들기 때문에 정해진 시간 안에 물건을 빼야 해 정신이 없다. 온종일 최대한 실수 없이 빨리 일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일을 시작하며 3장짜리 근로계약서를 썼다. 1~14조 항목에는 임금, 성과금, 연차, 기밀유지, 정보보호 등에 관한 내용이 담겨 있다. 근무기간을 3, 6, 9, 12개월씩 쪼개서 계약하는데, 12개월 계약을 한다고 해도 12주 수습기간이 전제로 붙기 때문에 결국 3개월짜리인 셈이다. 계약기간을 다 채우면 다시 인사과 사무실에 서류를 제출하고 무기계약직 전환 여부를 기다려야 한다. 계약만료로 잘려나가는 경우도 무수히 많다.

급여는 2022년 기준 시간당 9160원이다. 세금 떼고 손에 쥐어지는 것은 한달 200만원 남짓이다. 상여금이나 명절비, 휴가비는 따로 없다. 그나마 명절엔 10만원 쿠팡캐시가 지급된다. 오후 조나 심야 조는 야간수당이 붙기에 주간 조보다 월급이 많지만, 고된 노동에 견줘 만족스러운 수준은 아니었다.

최근 수도권을 중심으로 쿠팡 노동조합이 설립됐다는 기사를 봤다. 노조 활동을 하던 센터 분회장이 해고됐다는 소식도 들었다. 부당해고와 노동조건 개선을 걸고 싸우고 있다는 것도 알고 있다. 하지만 지방 센터에서 일하는 나는 노조가 있다는 걸 피부로 느끼지 못한다. 센터에 조합원도 없고, 노조가 설립됐다는 사실도 모르는 사람이 많다. 그래서 근로계약서에도 모든 것은 취업규칙에 따르고 아니면 기타 사규에 따른다는 내용이 많다. 단체협약을 맺어 직원들의 노동환경이나 조건을 개선하는 때가 오기를 내심 바라고 있다.

아, 이곳엔 휴게실이 없다. 휴게실이라는 팻말이 붙은 곳은 있지만, 신입사원 교육장 또는 일용직 사원들이 퇴근카드를 찍고 나가는 장소로 이용된다. 사실 휴게실이 있어도 소용없다. 일하는 중간에 쉬는 시간이 없기 때문이다. 쉬는 시간은 ‘밥 먹는 딱 한시간’이 전부다. 인사과 사무실 건물과 야외 작은 사물함들 사이 지게차가 다니는 길 옆에 의자를 가져다 놓고 잠시 쉰다. 비 오면 빗물 떨어지고, 바람이 심하게 부는 날에는 먼지가 풀풀 날리는, 어딘가 모자란 야외휴게실이다. 산업안전보건기준에 관한 규칙은 ‘근로자가 고열·한랭·다습 작업을 하는 경우에 근로자들의 휴식시간에 이용할 수 있는 휴게시설을 갖추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지만 현장은 다르다.

최근 현장 안에서 화제가 된 사안이 있다. 회사가 노동자에게 브이티오(VTO: The Voluntary Time Off)라는 자발적 무급휴가를 쓰게 하는데 주휴수당도 연차도 그대로 인정해주겠다고 한다. 들리는 말로는 물량이 준 날은 인건비가 나가는 게 아까워서 사람들을 무급으로 쉬게 하는 거란다. 4월 초부터 거의 매일 이 휴가신청 안내문자가 온다. 이곳 노동 강도가 너무 센 탓에 꽤 많은 사람이 신청하지만 회사 승인을 받은 사람만 쉴 수 있다.

모든 근태는 쿠펀치라는 앱으로 기록된다. 퇴근시간이 1분이라도 빠르면 몇백원이라도 깎는데, 이걸 정정하기 위해서는 근무시간확인서를 작성해야 한다. 묘한 느낌이 들기도 한다. 회사와 계약을 맺고 일하는데, 중간에서 앱의 관리를 받는 느낌이랄까.

물류센터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두고 ‘노가다’,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라고 말한다. 막상 일하다 보니 다른 일들만큼 중요하고 필요한 노동이었다. 노동자 스스로 노동에 대한 자부심이 생길 수 있게끔 합당한 임금과 노동환경이 마련된다면 좋겠다. 성실하게 살아가는 수많은 노동자가 조금 더 안정적으로 살 수 있게 되는 날을 꿈꿔본다.

※노회찬재단과 한겨레신문사가 공동기획한 ‘6411의 목소리’에서는 일과 노동을 주제로 한 당신의 글을 기다립니다. 200자 원고지 14장 분량의 원고를 6411voice@gmail.com으로 보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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