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후통첩 게임'으로 살펴본 식비공제 확대 방안

한겨레 입력 2022. 8. 17. 18:50 수정 2022. 8. 17. 2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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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지난달 18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브리핑에서 정부의 세제 개편안을 소개하고 있다. 기획재정부 제공

[왜냐면] 이상민 | 나라살림연구소 수석연구위원

한번쯤 들어봤을 법한 유명한 심리학 실험 중에 최후통첩 게임이 있다. 두 사람이 한 조가 돼 돈을 분배한다. 한 사람은 돈의 액수를 정해 상대방에게 제안한다. 그리고 다른 사람은 받아들일지 말지만 정한다. 받아들일 것을 선택하면 둘 다 돈을 받는다. 그러나 상대방이 거부하면 둘 다 돈을 받지 못한다.

10만원을 분배받는 게임에서 첫번째 사람이 자신이 9만원을 갖고 상대방에게 1만원을 준다고 하면? 대부분 거부한다고 한다. 거부하면 1만원조차 받지 못한다. ‘합리적 경제주체’라면 1만원이라도 받는 게 이득이겠지만, 그까짓 1만원을 받느니 공정하지 못한 분배에 저항하는 것이 정의롭다고 느끼기에 거부한다고 한다. 쉽게 말해 배고픈 것은 참아도 배 아픈 것은 못 참는 법이다.

그런데 만약 실험 참가자가 이것이 10만원을 분배하는 게임이라는 사실을 모른다면? 아무 이유 없이 그냥 1만원을 주는 게임이라며 받을지 말지를 선택하라면 어떨까? 당연히 모두가 받는다고 한다. 공짜라면 양잿물도 마신다는데, 양잿물도 아니고 돈을 그냥 준다는데 안 받을 사람이 어디 있겠나. 요는 1만원 지급 제안을 거부할지 말지는 분배하는 총액이 얼마인지를 아느냐 마느냐에 따라 갈린다. 만약 분배받는 총액이 100만원이라면, 1만원을 받겠다고 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나.

최근 식비공제 확대 얘기가 그렇다. 최근 정부는 세제개편안을 발표하면서 식비공제 비과세 한도를 현행 10만원에서 20만원으로 확대한다고 밝혔다. 여기에 별다른 찬반양론이 있는 것 같지는 않다. 내 세금 줄여준다는데 반대할 사람은 없다. 그러나 국가재정은 화수분이 아니다. 특정한 사람, 계층의 세금을 줄이면 다른 누군가는 그만큼 더 부담해야 한다는 얘기다. 다른 사람의 세금을 8만원 줄이고 내 세금을 2만원 줄인다면? 거부하는 것이 맞다. 세금 납부는 최후통첩 게임 중에서도 ‘참가비가 있는’ 최후통첩 게임이기 때문이다. 두 사람이 5만원씩 내고 참가하는 최후통첩 게임에서 상대방이 8만원을 갖고 내가 2만원을 갖는 방식으로 분배하겠다고 하면 거부하는 것이 좋다. 내가 거부하면 2만원이 사라지는 게 아니라 분배 게임 재정에 머무르게 돼 다른 분배 방식을 택하게 되기 때문이다.

식비공제를 확대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일단 자영업자는 전혀 혜택을 받지 못한다. 식비공제는 직장인에게만 해당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직장인 하위 40%는 아무런 혜택을 받지 못한다. 월급이 약 200만원 수준에 못 미치는 저소득 직장인은 대부분 소득세 면세 구간에 속하기 때문이다. 내는 세금이 없으니 공제받을 여지도 없다. 식비공제 확대는 근로소득 상위 60%에게만 해당하는 조치일 뿐이다.

특히 연봉 10억원이 훌쩍 넘는 초고소득자 적용세율은 45%다. 즉, 식비 소득공제가 매달 10만원 늘어나면 세금은 4만5천원이 줄어든다. 그런데 연봉 약 6천만원 근로자의 적용세율은 15%다. 식비 소득공제가 10만원 늘어도 줄어드는 세금은 1만5천원, 연 18만원에 불과하다는 얘기다.

정리하면 식비 소득공제 10만원 확대는 소득 하위 40% 이하 저소득 근로자에게는 0원, 연봉 5천만원 내외 근로소득자 세금은 월 1만5천원만 줄여준다. 반면, 연봉 10억원 초과 초고소득자의 세금은 4만5천원 줄여준다. 이것이 최후통첩 게임인지 모른다면 연봉 5천만~6천만원 노동자라면 1만5천원이라도 받는 게 이득이다. 그런데 세금은 최후통첩 게임 정도가 아니라 ‘참가비가 있는 최후통첩 게임’이라는 사실을 정확히 인식해야 한다. 우리 모두는 참가비가 있는 최후통첩 게임의 참여자다. 거부하면 다른 분배 방식을 택할 수 있다. 그런데 중산층 근로소득자의 세금을 월 1만5천원 줄여준다는 이유로 초고소득자 세금을 연 54만원 줄여줄 필요가 있을까? 하위 40%의 희생을 바탕으로?

우리 월급명세서를 보면 지나치게 복잡하다. 지방이전 공무원의 이전지원금과 기자 취재수당은 물론 학자금, 연구보조비, 종교활동비 등이 일정 부분 비과세가 되니 비과세 종류만큼 월급명세서 내역이 늘어난다. 그러나 소득공제라는 제도 특성상 연봉 3천만원 내외 근로소득자의 세금은 6%만 줄여주는 대신 초고소득층 근로자의 세금은 45%를 줄여준다. 이런 역진적 소득공제를 다 없애고 동일하게 세금을 감면받는 표준세액공제로 일원화하면 어떨까? 회사 총무팀 직원들의 과로도 덜어줄 수 있으니 1석3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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