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를 잘 모르는 건 당신 잘못이 아니다

한겨레 2022. 8. 17. 1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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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결]

윤석열 대통령이 17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취임 100일 기자회견 ‘대통령에게 듣는다’에서 그동안의 소회와 향후 정국 운영 방안 등을 밝히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숨&결] 박성민 | 전 청와대 청년비서관

최근 청와대 생활을 마치고 두달여간 정치뉴스를 보지 않고 지냈다. 주위 사람들이 왜 정치뉴스를 잘 보지 않는다고 했는지, 알 것 같았다. 매일 뉴스를 붙잡고 살던 삶에서 벗어나니 솔직히 그렇게 편할 수가 없었다. 외려 휴식기를 마치고 다시 정치권 소식과 현안을 접하기 시작하니, 마음은 복잡하고 답답해지기 시작했다. 정치가 ‘더 알고 싶은 것’이 아니라 ‘모르고 살면 편한 것’이 됐다. 정치가 국민에게 쓸모 있는 도구가 아니라 애물단지가 됐다. 정치가 좋아서, 정치에 삶을 투신한 나조차도 요즘 돌아가는 모습을 보면 이렇게 답답하고 피곤한데 일반 국민은 도대체 어떤 마음일까 생각하니 착잡했다. 이런 생각 끝에 문득 올 초에 나눈 친구와의 대화가 떠올랐다.

“나 이번 선거에는 투표하러 가지 말까 봐.”

올해 대통령 선거를 앞둔 시점, 전화 통화하던 친한 친구가 이런 말을 했다. 늘 편을 나눠 공격하거나 지지하는 정치권에선 좀체 듣기 힘든 말이었다. 여의도에선 각종 투표 독려 문구가 쏟아져나오던 때였다. 당시 청와대에서 일하며 정치 고관여층인 수많은 이들과 부대끼며 보내는 시간이 압도적으로 많다 보니, 날것의 목소리를 들을 시간은 상대적으로 부족했던 내게 친구의 말은 더욱 생경했다. 공무원 신분으로 선거운동을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기에 이유나 물어보자 싶어 대화를 이어갔다.

“왜?”라는 물음에 친구는 “그냥”이라고 답했다. 이내 “뽑고 싶은 사람이 없어”라는 답이 돌아왔다. 잠시 숨을 고르며 침묵을 지키던 내게 친구는 이어 말했다. “그냥 다 거기서 거기 같아, 솔직히. 다 보여주기식인 것 같고.” 앞선 대선에서는 확실히 지지하던 후보를 얘기할 만큼 정치에 관심이 있었던 친구였기에, 그 친구의 변화는 지금 우리 정치의 수준과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것 같았다.

얼마 전 그 친구를 다시 만났다. 이번에도 “대선 이후 정치뉴스를 잘 보지 않는다”고 했다.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반감도 분명 있지만, 그렇다고 더불어민주당이 좋은 것도 아니라고 했다. 그래서 여전히 “다 별로”라는 얘기였다. 그 뒤로도 얼마간의 시간이 지난 지금 ‘여전히 다 별로’라고 말했던 친구의 태도에 변화는 있을까. 글쎄다.

영혼 없는 정치가 끼치는 해악은 크다. 영혼 없는 정치란 공동체가 지향하고 나아가야 할 가치와 비전, 방향을 잃은 정치다. 취임 100일이 지난 윤석열 대통령이 보여준 100일간의 정치가 바로 그것이었다. 추락하는 지지율이 이를 증명한다. 그간 도어스테핑(약식 기자회견)에서 윤 대통령이 가장 많이 언급한 단어는 1위가 ‘글쎄’, 2위가 ‘국민’이라고 한다. 영혼 없이 “국민”만을 외치는 엉성한 정치의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이 보고 있다. 이준석 전 당대표가 방아쇠를 당긴 ‘개고기 논쟁’으로 적나라하게 까발려진 국민의힘 내부 권력 암투는 국민의 정치 혐오만 심화시키고 있다.

민주당도 각성해야 한다. 정부와 여당의 실책으로 얻은 반사이익이 있을지 몰라도 거품에 불과하다. 안주하고 정체되는 순간, 추락은 시작된다. 여당에서 야당이 됐을 때도, 지금 여당의 자중지란을 보면서도, 반성과 절실함이 없다면 그건 오만이다. ‘민주 대 반민주’의 낡은 구도가 깨진 지금, 넥스트 비전이 필요하다. 과감한 의제들을 공론의 테이블 위에 올려야 한다. 연금 개혁과 기후위기, 불평등과 양극화, 가족 개념의 재설정과 소수자 문제 등 다양한 분야에서 새로운 시대를 준비하는 감각을 날카롭게 살려야 한다. 일하며 보여주는 실력이 진짜 실력이다.

‘나는 정치를 잘 모른다’며 자신을 부끄러워하는 이들을 종종 만난다. 아니, 생각보다 자주 만난다. 이 글을 빌려 당신의 잘못이 아니라고 말하고 싶다. 국민을 놓친 정치권이 부끄러워해야 한다. 국민을 정치에 무관심하게 만든, 정치 혐오와 냉소를 한껏 부풀게 한, 영혼 없는 정치를 해온 책임은 정치권에 있다. 그래서 우리는 더 치열해져야 한다. 그래야 한발이라도 나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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