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럼] 내년 예산, 긴축기조로 가야 하는 이유
정부가 곧 내놓을 2023년 예산은 윤석열 정부가 편성하는 최초의 예산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각별하다. 새 정부가 지향하는 경제정책의 방향성을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첫 작품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하고 싶은 사업이 넘쳐날 것이다. 대통령 선거 과정에서 제시한 공약과 새 정부가 출범하면서 내놓은 국정과제를 사업화해 생명력을 불어넣으려고 할 것이다. 지난 선거 과정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제출한 공약 추계 비용은 266조원에 달한다. 남은 임기를 안분해 내년에 25%만을 실천에 옮겨도 66.5조원이 새로 필요하다. 경기를 끌어올리고 윤 대통령이 기회가 있을 때마다 강조해 온 자영업·소상공인들을 충분히 지원하면 상상 이상으로 규모가 커질 가능성도 있다.
새로운 예산이 들어가면 그만큼을 지난 정부가 추진했던 불필요해 보이는 사업을 줄이면 되지만 쉬운 일은 아니다. 사업은 일단 시행하고 나면 혜택을 받게 된 사람들이 생겨 이들이 사업의 폐지나 축소를 적극 반대하기 때문이다. 이렇듯 어려운 정치적 맥락 속에서 추경호 경제부총리가 2023년 예산안을 추경 포함이지만 2022년 예산 규모 이내로 감축하겠다는 방침을 밝힌 것은 잘한 일이다. 장·차관 등 고위직 임금을 동결한 것도 바람직하다.
아쉬운 점은 이러한 방침에도 불구하고 재정적자가 GDP 대비 3%를 웃돈다는 것이다. 지난 정부의 재정지출 증가율이 코로나 대응 등으로 5년 평균 8.7%에 달한 여파일 것이다. 정부는 더욱 강력한 구조조정을 통해 지출 규모 증가율을 추경을 제외한 2022년 본예산 기준으로 박근혜정부 시기 평균 증가율인 4.0% 이내로 줄여야 한다. 고물가 추세가 임금인상으로 이어지는 경로를 차단키 위해 공무원 인건비 인상도 하위직의 복리후생을 고려하더라도 최소한에서 그쳐야 한다. 공기업을 포함한 공공부문 전체로도 강력한 구조조정이 필요함은 물론이다.
보다 강력한 긴축 기조를 주문하는 이유는 역대 최고 수준으로 치솟고 있는 물가를 잡으려면 한국은행이 금리를 올리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기 때문이다. 이와 함께 재정 또한 긴축 기조로 가져가 주어야만 한다. 정부가 예산을 팽창적으로 편성해서 돈을 풀면 한국은행은 돈줄을 조이기 위해 기준금리를 가파르게 올려야 할 것이다.
우리 경제는 경기침체와 물가급등이 동시에 오는 스태그플레이션을 걱정할 상황이 아니다. 경기부양을 위해 돈 풀기를 할 필요가 없다는 말이다. 지난 7월 26일 IMF는 미국 등 대부분 국가의 금년과 내년 성장률 전망을 대폭 하향 조정했다.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어서 올해는 2.5%에서 2.3%로, 내년에도 2.9%에서 2.1%로 낮췄다.
좋은 소식은 아니지만 우리나라의 하향 조정폭이 미국이나 다른 나라들에 비해서 훨씬 작다는 점에서는 희망적이다. 그만큼 IMF 등 국제기구가 우리나라의 경기 상황을 양호하게 보고 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금년 2.3%, 내년 2.1%의 성장률 전망치는 우리나라의 잠재성장률이 2.0% 내외인 점을 고려하면 비관적인 수치가 아니다. 경제성장률이 잠재성장률 수준이거나 웃도는 경우 정부가 돈을 추가로 풀어봐야 성장률을 높이기보다 물가 불안만 부추기게 될 가능성이 높다. 국민을 위해 돈을 푸는 선택이 인플레이션으로 국민을 괴롭히게 되어 자신의 의도와는 전혀 다른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윤석열 정부의 미래를 생각해서라도 긴축 기조가 바람직하다. 김영삼 정부 이래로 대부분의 정부에서 출범 첫 해 재정을 대폭 늘리다 보니 임기 후반으로 갈수록 정책 여력이 줄어들어 성장률도 하락했다. 윤석열 정부는 상고하저보다 상저하고의 경로를 택하면 좋겠다. 즉 내년에는 물가안정 기반을 확고히 하면서 잠재 수준의 성장률에 만족하고 향후 경제체질 개선을 통해 지속적으로 높아져 가는 경로를 밟는 것이다. 이를 통해 GDP 대비 국가부채 비율도 더욱 안정될 것이다.
내년도 예산 편성은 새 정부가 앞으로 5년간 달성할 성과를 결정하는 핵심 모멘텀이 될 것이다. 어려운 정치적 환경에서도 시장경제 원칙에 부합하는 물가안정 기조를 확고히 함으로써 보수 정부의 차별성도 지켰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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