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북한 영변 '귀신병'의 비극

2022. 8. 17. 1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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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준규 한반도청년미래포럼 대표·안민포럼 청년회원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말없이 고이 보내 드리우리다. 영변(寧邊)에 약산(藥山) 진달래꽃, 아름따다 가실 길에 뿌리오리다. 가시는 걸음 놓인 그 꽃을 사뿐히 즈려밟고 가시옵소서. 나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말없이 고이 보내드리오리다."

시인 김소월의 시 '진달래꽃'의 구절이다. 너무도 이질적이기에 연관지어 생각하거나 동일한 곳이라고 생각하기 힘들겠지만, '진달래꽃'에 등장하는 '영변'은 우리가 남북관계를 논할 때 항상 등장하는 그 '영변 핵시설'과 동일한 영변이다. 더욱 아이러니하게도 '영변에 약산'은 영변 핵시설 바로 우측에 위치해 있다. 김소월 시인은 1902년 영변에서 그렇게 멀지 않은 평안북도 구성시에서 태어나 관서팔경인 약산에 핀 진달래꽃을 바라보며 사랑하는 이에 대한 시를 남겼다.

평안북도 영변군은 중심부에 침식분지인 영변분지가 자리잡고 있다. 이 분지에 있는 성이 고구려 시대의 영변산성인 '철옹성'이다. "방비가 철옹성과 같다"라는 말을 '쇠로 만든 독처럼 튼튼하게 둘러쌓은 산성이라는 뜻으로 방비나 단결 따위가 견고한 사물이나 상태를 이르는 말'의 비유적 표현으로 자주 쓰고는 하는데, 그 철옹성이 바로 영변의 철옹성이다. 분지를 중심으로 북서쪽에는 영변읍이 자리잡고 있으며, 남서쪽으로는 영변 핵시설이 있다. 핵시설을 따라 굽어 흐르는 강이 구룡강이다. 영변군은 방직공업을 기본으로 하며, 영변군 전체 면적의 40%가 농경지이다. 곡물로는 옥수수, 무, 공예작물은 담배가 재배된다고 한다. 영변 핵시설 주변 구역은 예측할 수 있듯이 주민들에게는 접근이 불가능 한 구역이라고 한다. 주민들은 영변 핵시설이 어떠한 시설인지 모른다는 증언도 뒤따른다.

핵시설이나 원자력과 관련된 가장 위험한 요소는 '피폭'이다. 과연 영변 핵시설 내에서 근무하는 노동자들과 핵 시설 주변에 거주하고 있는 주민들의 건강 상태는 어떠할까. 증언에 따르면 핵시설 내 노동자들은 방사능에 노출돼 있는 곳으로 떠밀려 들어가거나, 핵개발을 위해서 피폭 위험에 그대로 노출되고 있다고 한다. 북 수뇌부의 체제 유지를 위한 핵개발에 사지로 떠밀린 핵시설 노동자들의 인권은 누가 기억하고 책임져 줄 것인가. 또한 핵시설을 둘러싸고 흐르는 구룡강은 과연 방사능으로부터 안전할까. 상하수도 시설이 잘 갖추어지지 않은 북한은 강물, 하천의 물에 의지해 생활을 이어간다. 더욱이나 영변군의 면적 중 무려 40%가 농경지로 사용된다는 것을 고려했을 때 영변 주민들의 건강에 이상이 없을지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함경북도 길주군 풍계리 역시 같은 상황이다. 북한 수뇌부가 풍계리를 핵실험장으로 선택한 이유는 해발 2205m의 만탑산을 비롯해 해발 1000m가 넘는 높은 산들이 둘러싸고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구성 암반이 단단한 화강암이기에 핵 실험을 하기 적합한 조건을 갖추고 있으며, 인근 함경남도 단천에서 우라늄이 생산된다는 점도 선택 조건으로 작용했을 가능성이 크다. 핵의 개발과 실험 그 자체도 문제이지만, 실험이 진행되었던 풍계리 역시 방사능으로부터 주민들이 안전하지 않을 것이다.

인류가 핵을 개발하고 핵 실험이 이어진 이후, 한 번 핵과 그 방사능에 노출되었던 곳은 약 100년간 살 수 없는 땅이 되어버린다고 한다. 하지만 북한 주민들은 자신들이 살아가는 터전 바로 옆에서 핵개발과 핵실험이 이뤄진다는 사실조차 모른 채 살아가며, 고통을 호소한다. 증언에 따르면, 영변과 풍계리에 기형아들이 태어나고 주민들이 원인 모를 병들에 걸려 이를 '귀신병'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그렇게 사람들은 샤머니즘적인 관념으로 기형아와 피폭 증상들을 바라보며 고통을 호소하고 생을 마감하고 있다고 한다.

장기적으로 통일을 바라보는 관점에서 이러한 사실들은 영변과 풍계리 주민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통일이 되어도 영변과 풍계리는 우리에게서 더욱 멀어진 땅이 되어버린다. 전방지역 북녘이 바라보이는 전망대에 가면 '너무 가까우면서도 우리에게서 가장 멀리 있는 곳'이라는 생각이 든다. 영변과 풍계리의 상황 역시 동일한 생각이 들게 만든다. 과연 우리는 우리의 후손들에게 영변에 약산 진달래꽃을 실제로 보여주며, 김소월 시인의 시를 함께 읽어내려갈 수 있을지 상상해본다. 만약 북한의 핵개발과 핵실험이 지속된다면, 우리 세대뿐만 아니라 우리의 후대에게도 영변과 풍계리는 온전히 물려줄 수 없는 땅이 되어버릴 것이다. 또한 현재 주변지역에서 거주하고 있는 북한 주민들과 핵 관련 시설 노동자들의 운명은 누가 기억해 줄 것인가.

그만큼 통일은 멀리 있으며 고려해야 할 것들이 많다. 단순히 경계가 무너졌다고 해서 통일이 완성되는 것은 아니다. 영변과 풍계리 속에서 희생되어간 사람들에 대한 처우를 어떻게 하고 그들을 어떻게 기억해야 할지, 그 가해자들에 대해 어떠한 처벌을 해나갈지, 그리고 후대들을 생각해서 그 역사를 어떻게 기록해 나갈지를 고려하고 실천하는 것이 통일로 가는 가장 큰 역사적 과제 중 하나다. 그 외 수많은 남북 분단 사이에서 희생되었던 이들 또한 모두 동일한 과정을 밟아야만 완성된 통일에 가까워질 수 있을 것이다.

진정으로 북한 수뇌부가 원하는 것이 통일과 평화라면 핵과 미사일 개발, 처참한 인권 탄압을 멈추어야 할 것이다. 판문점에서 웃으며 악수하고 군사분계선을 넘는 모습을 보여준다고 해서 통일이 가까워지는 것은 절대 아니라는 것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우리의 후손들이 영변에 약산 진달래꽃을 바라보며 김소월 시인의 시를 읊어볼 수 있는 날이 오기를 염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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