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종영의 인간의 그늘에서] 잊힌 남방큰돌고래, 대포와 금등이

남종영 2022. 8. 17. 1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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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종영의 인간의 그늘에서]

2017년 6월 바다로 돌아가기 전, 남방큰돌고래 금등이가 제주 함덕앞바다 가두리에서 사람을 바라보고 있다. 금등이와 대포는 5년 넘게 행방불명이다. 남종영 기자

남종영 | 기후변화팀 기자

좋은 뜻에서 벌인 일도 실패할 수 있다. 하지만 실패에 관해 이야기하지 않는다면 발전할 수 없다.

제주 바다로 돌아간 남방큰돌고래 대포와 금등이에 관해 이야기해볼까 한다. 5년 넘게 행방불명인, 실패한 야생방사의 주인공들이다.

대포는 1997년 8월 제주 서귀포시 대포동 앞바다에서 잡혔다. 금등이는 이듬해 8월 제주시 한경면 금등리 앞바다에서 잡혔다. 모두 대여섯살 때였다. 이 정도 나이 남방큰돌고래라면, 이제 막 독립해 제주 바다의 바위와 그물의 위치 그리고 조류의 방향을 익힐 때다. 120마리 모두가 한 집단인 친척과 친구들과의 사회적 소통 기술도 배워야 한다. 그런데, 대포와 금등이는 그러기 전에 그물에 걸렸다.

맨 처음 끌려간 곳은, 지금은 호반그룹이 인수한 중문의 수족관 ‘퍼시픽랜드’였다. 다른 돌고래와 마찬가지로 둘은 굶으며 저항했고 결국 냉동생선을 받아들이며 쇼를 배웠다.(야생돌고래는 산 생선을 사냥해 먹지만, 수족관 돌고래는 죽은 냉동생선을 먹는다. 냉동생선을 먹이는 게 조련의 첫 단계다.)

금등이와 대포는 각각 1999년, 2002년에 서울대공원으로 팔려간다. 거기에는 이미 제주에서 잡혀온 차돌이와 돌비, 쾌돌이가 있었다. 둘은 그들과 재회하며 반가워했을까? 아니면 분노와 절망으로 고개를 떨궜을까?

살아남는 길은 열심히 쇼 하는 것뿐이었다. 그래야 냉동생선이라도 먹을 수 있으므로. 쾌돌이와 돌비가 차례로 죽고, 2000년대 둘은 돌고래쇼의 핵심 인력이 돼갔다.

그리고 2009년, 또 다른 신참 하나가 락스 냄새 나는 수족관에 들어온다. 제돌이였다. 그렇게 서울대공원에는 불법 포획된 돌고래들이 드나들었다. 대포와 금등이는 터줏대감처럼 묵묵히 쇼 하며 긴 세월을 버텼다.

2012년이었다. 뭔가 분위기가 달라진 걸 대포와 금등이가 느꼈을까? 온몸을 바쳐 수행했던 돌고래쇼가 간소해지고, 사육사들이 옆방 제돌이에게 활어를 던져주는 게 아닌가? 그랬다. 서울시가 제돌이의 야생방사를 발표하면서, 야생적응 훈련을 시작한 것이다. 그때, 사육사가 남은 활어 두어마리를 대포와 금등이에게 던져줬다. 재빨리 쫓아가 잡아먹었다.

몇달 뒤에는 태산이, 복순이가 들어왔다. 제돌이는 얼마 안 돼 바다로 떠났고, 태산이, 복순이 또한 일년 뒤 그 뒤를 따랐다. 대포와 금등이는 텅 빈 수족관을 헤엄쳤다.

대포와 금등이 차례도 돌아왔다. 2017년 7월18일 제주 함덕 앞바다 가두리의 문이 열리고, 환호하는 사람들을 뒤로하고 바다를 향해 열심히 헤엄쳤다. 하지만 대포와 금등이는 지금까지 아무 소식이 없다. 남방큰돌고래는 바닷가에 바짝 붙어 사는 연안 정주성 종이다. 지금까지 목격되지 않았다면 폐사했을 가능성이 크다. 아마도 20년 동안 꺼놓은, 돌고래끼리 음파를 주고받는 역할을 하는 반향정위 기관이 고장났을 가능성이 크다. 돌고래는 음파를 쏘아 되돌아오는 반송파를 인식해 전방 지도를 그린다. 하지만 좁은 수족관에 갇히면 돌고래는 거울로 된 방에 들어간 것과 같다. 당신이 그곳에 20년 동안 산다면 어떻게 될까?

해양수산부와 서울대공원, 환경·동물단체 등 당시 야생방사를 주도했던 이들은 대포, 금등이의 운명에 관해 고민했고, 야생방사가 최선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두 돌고래의 행방불명도, 야생방사에 참여했던 기관과 단체의 침묵도 계속되고 있다. 야생방사백서 발간은 물론 토론회 한번 열리지 않았다. 우리 보전운동과 동물운동이 한 단계 성장하려면, ‘우리는 최선을 다했다, 그러나 불행한 결과가 나왔다, 그럼에도 우리는 이 길을 가야 한다’고 담담하게 이야기해야 하지 않을까?

고통스럽지만 수족관에서 안정적으로 살지, 위험을 걸고라도 고향 바다에 갈지, 사실 결정 주체는 돌고래 자신이어야 한다. 우리는 이게 불가능하다는 걸 안다. 그래서 돌고래 대신 선택해야 하는 ‘윤리적 난관’에 빠진다. 이렇게 상상해보자. 20년 억울한 옥살이를 한 죄수에게 ‘이 비행기를 타면 자유의 땅으로 갈 수 있다. 단 추락 확률이 10%’라고 하면, 그 죄수는 어떤 결정을 내릴까? 우리는 동물의 실존 앞에서도 겸손하고 신중해야 한다. 결정 근거를 하나씩 기록해 남겨두고 다음에 참고하는 수밖에 없다.

얼마 전 남방큰돌고래 ‘비봉이’가 바다로 나가기 위해 가두리로 갔다. 이달 안에 방사될 거라고 한다. 비봉이는 네댓살에 잡혀와 17년 동안 수족관에 갇혀 있었다. 대포, 금등이처럼 어린 나이에 잡혀 오랜 기간 감금된 돌고래다. 주사위는 던져졌다. 어쨌든 윤리적 난관 속에서 우리는 야생방사를 선택했다. 비봉이가 야생 무리에 합류하기를 빈다. 그리고 성공이든 실패든 괜찮은 백서 한권이 나왔으면 좋겠다.

fand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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