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활한 하늘을 휘젓는 '공포'에 조여오는 목덜미.. 조던 필 감독의 영화 '놉'[리뷰]

이혜인 기자 입력 2022. 8. 17. 18:11 수정 2022. 8. 18. 0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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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러·미스터리·스릴러에 SF 하나 더
인종·계층 갈등에 동물권·할리우드 비평 추가
'겟아웃' '어스' 조던 필 감독 세번째 영화
조던 필 감독의 세 번째 영화 <놉>은 말 농장에 나타난 정체를 알 수 없는 ‘그것’으로 인해 벌어지는 이야기다. 유니버설 픽쳐스 제공.

심장이 조여오도록 무섭지만, 그저 무섭기만 한 영화는 아니다. 예상치 못한 장면에서 웃다가, 상영관을 나와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다가 무릎을 탁 치면서 깨달음을 얻는다. 현재 할리우드에서 뜨겁게 주목받는 감독 중 한 명인 조던 필 감독의 영화는 그렇다.

미국의 유명 코미디언이었던 필 감독은 2017년에 영화 <겟아웃>으로 화려하게 데뷔했다. 그의 영화 <겟아웃> <어스>(2019)는 호러·스릴러 장르에 블랙코미디와 사회적 메시지를 끼얹는 독특한 스타일을 구사한다. <겟아웃>은 흑인 남자가 백인 여자친구의 집에 초대받아 가족들을 만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은 호러 영화다. 여자친구의 가족들이 사실은 흑인의 신체를 빼앗는 집단이라는 설정을 통해 인종차별에 대해 말한다. 영화 <어스>는 지하 수용시설에 나와 똑같은 복제인간들이 있고 이들이 지상으로 올라와 나를 죽이려 한다는 이야기인데, 계층갈등과 이민자 문제 등 미국의 사회적 문제들을 건드린다.

17일 개봉한 그의 세 번째 영화 <놉>은 과연 전작들만큼 등골 서늘하게 무섭고 재밌으면서, 깊이도 있을까.

<놉> 역시 <겟아웃> <어스>와 같이 호러, 미스터리, 스릴러 장르 영화다. 여기에 SF라는 장르를 하나 더 얹었다. 미지의 대상으로부터 오는 공포가 극을 이끄는데, 그 미지의 대상은 이번에는 인간이 아니라 하늘을 휘젓고 다니는 미확인 비행물체 ‘그것’이다. 주인공은 흑인 남매다. <겟아웃>에서 주연을 맡았던 배우 다니엘 칼루야가 연기하는 OJ 헤이우드는 말 조련사다. 그는 동생인 에메랄드 헤이우드(케케 파머)와 함께 할리우드 촬영에 쓰일 말 배우를 길러내는 말 농장을 운영한다. 말 조련에 능했던 아버지가 사망하면서 농장 운영에 어려움을 겪는다.

그러던 어느 날 농장 하늘에 수상한 물체 ‘그것’이 나타난다. ‘그것’이 나타난 이후로 기이한 일들이 계속해서 발생한다. 영화는 두 사람과 주변인들이 ‘그것’의 정체를 파악하기 위해 애쓰고, 쫓거나 쫓기기도 하면서 벌어지는 일들을 그렸다. 영화 <미나리>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스티븐 연은 왕년 유명 아역 스타이자 남매의 농장 옆에서 테마파크를 운영하는 인물로 출연한다.

<놉>은 정체를 알 수 없는 것으로부터 오는 공포가 서서히 고조된다는 점에서 SF보다도 호러 장르로서의 특성이 두드러지는 영화다. 촬영 장소나 방법은 서부극을 연상시킨다. 튼튼한 말과 흙먼지가 날리는 헤이우드 농장이 주 무대로, 카메라는 농장 전체를 종종 비춘다. 말이 달리거나 주인공들이 말을 타고 달리는 신을 카메라가 수평 앵글로 잡는 장면들이 자주 등장한다. 좁고 폐쇄된 공간에서 유발되는 공포감 대신, 넓은 공간에 내던져진 주인공들이 미지의 것에 대항하는 데서 오는 공포감이 있다.

영화관에서 큰 스크린으로 봐야 재미가 배가되는 영화다. 넓은 공간감을 살리기 위해 공포 영화 최초로는 15/65㎜ 대형 규격의 아이맥스 카메라로 촬영됐다. 촬영 감독은 <인터스텔라> <덩케르크> <테넷> 등 크리스토퍼 놀런 감독의 영화를 함께한 호이트 반 호이테마다. 망망대해가 연상되는 커다란 하늘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스크린 안에 역동적으로 담겼다.

조던 필 감독의 영화는 극장을 나서서 포털 검색창을 키는 순간에 2차 관람이 시작된다고 할 수 있다. <겟아웃> <어스>와 같이 <놉>에도 여러 사회적 메시지들이 담겨있다. 가장 먼저 연상할 만한 주제는 인종차별과 관련된 것이다. 흑인인 필 감독은 앞으로도 계속해서 인종차별과 관련된 영화를 찍겠다고 여러 차례 밝혔으며, “백인이 주연으로 나오는 영화는 많이 보았기 때문”에 흑인 배우들을 계속 주연으로 쓰겠다고 말한 적도 있다. <놉>의 주인공 남매는 백인 스태프가 주류를 이루는 할리우드 영화판에 말 배우를 공급하는 일을 한다. 인물 설정만으로도 백인 주류사회와 관련된 메시지가 담겨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이번 영화에서는 인종차별 문제뿐만 아니라 더 넓은 주제들을 건드리는 것으로 보인다. 동물권, 할리우드 영화 산업, 미디어 문법 등과 관련해 영화를 여러 시각에서 해석할 여지가 있다. <놉>은 북미 지역에서 한국보다 한 달 남짓 앞서 개봉했는데, 영화를 두고 해외 언론들은 각기 다른 주제로 다양한 리뷰들을 쏟아냈다. 관람 후 영화 속 숨은그림찾기를 즐기는 한국 관객들은 더 많은 이야기를 할 것 같다. 상영시간은 130분, 12세 관람가다.

조던 필 감독의 세 번째 영화 <놉>은 말 농장에 나타난 정체를 알 수 없는 ‘그것’으로 인해 벌어지는 이야기다. 유니버설 픽쳐스 제공.

이혜인 기자 hyei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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