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리와 가난과 아름다움..그 길을 찾아 떠난 청춘

2022. 8. 17. 1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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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가 몰랐던 작가 이효석 (下) ◆

`메밀꽃 필 무렵` 발표 당시의 이효석. [사진 제공 = 이효석문학재단]
▶ 삶의 근본조건에 대한 탐구

문학사 속에서 이효석의 위치를 어떻게 가늠할 수 있을까? 이렇게 질문할 때 필자는, 이효석의 문학적 도정이 보여주는 가장 중요한 특성 가운데 하나는 인간 삶의 근본적 조건을 깊이 탐색해 간 점이라고 생각한다. 이 과정은 가히 지난했다고 할 수 있다. 이효석은 초창기에 서울 동묘 근처 빈민들의 삶을 그린 '도시와 유령'(1928년 7월 잡지 '조선지광')을 비롯하여 창작집 '노령근해'(1931년 동지사 펴냄)에 실린 여러 작품들을 발표한다. 이와 같은 활동 탓에 그는 이른바 '동반자 작가'로 알려진다. 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동맹(KAPF)에 조직적인 가입은 하지 않았지만 경향적 흐름을 같이하는 작가라는 평가였다.

1920년대 중후반에서 1930년대 전반기까지 마르크시즘은 저항사상으로서 특별한 지위를 누리고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이와 같은 시대적 조류 속에서 이효석 또한 경성제대의 영문학도였음에도 불구하고 민중들의 생활상에 관심을 기울이고 이들이 보다 나은 삶을 살아갈 수 있는 사회에 대한 낭만적 묘사 같은 것을 시도했던 것이다.

그럼에도 이효석은 비교적 빨리 인간의 삶의 조건을 노동보다 더 근본적인 것에서 찾고자 하는 독자적인 방향을 찾아나서게 된다. '프렐류드'(1931년 12월~1932년 2월 '동광')나 '오리온과 능금'(1932년 3월 '삼천리')같이 비교적 덜 알려진 작품들은 그가 이후 평생을 기울여 모색한 삶의 명제들을 실험한 장소였다고 할 수 있다.

`프렐류드` (1931년 12월~1932년 2월 `동광`) `메밀꽃 필 무렵`(1936년 10월 `조광`) `개살구`(1937년 10월 `조광`) `들`(1936년 3월 `신동아`) 왼쪽부터.
'프렐류드'의 주인공 주화는 "인류의 모든 움직임과 혁명을 조종하는 근본은 식과 색"이라 하며 "삶이 마르크시즘 이전의 문제인 만큼 죽음도 마르크시즘 이전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오리온과 능금'의 여성 인물 나오미는 알렉산드라 콜론타이의 '붉은 사랑'(1923년)을 비평하면서 "결국 근본에 있어서는 감정 제일, 사업 제이일 것"이며 "사랑은…도저히 사업을 통하여서만은 들 수 없는 것"이라고 한다. 그것은 무엇보다 먼저 "피차의 시각"을 통해서 이루어지게 된다는 것이다.

실로, 노동을 인간의 근본 조건이라고 보는 것과 "식과 색"을 인간의 근본 조건으로 보는 것은 큰 차이가 있다. 전자가 사회성을 인간 문제의 근본에 놓는다면 후자는 인간의 자연적 본성에 보다 천착하게 둘 것이다. 사랑 또한 사업이 아니라 근본적으로는 피차의 감정, 감각에서 오는 것이라 하면 사랑은 일 또는 혁명에 매개된 이성적 작용과는 다른 차원에서 발동하는 것이 된다. 이효석은 마치 프랑스 비평가 조르주 바타유가 '에로티즘'(1957년)에서 마르크스의 노동과는 차원을 달리하는 인간의 존재론적 본질을 보여주고자 한 것처럼 인간 삶의 근본적 추동력에 천착하고자 한 것이다.

▶ 영문학 탐색과 '자연주의' 실험
이효석에 있어 영문학은 바로 그러한 탐색을 위한 지렛대와 같은 것이었다. 그는 짧은 일생에 걸쳐 영문학사를 이루는 아주 많은 작가들을 섭렵했을 뿐 아니라 안톤 체호프나 토마스 만 같은 유럽문학의 정수들을 죽음을 앞둔 시점에서도 음미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영문학은 그가 자신의 독특한 인간관, 인생관을 축적해 가는 중요한 통로였다. 예를 들어 연보는 그가 학창 시절에 이미 러디어드 키플링의 단편소설 '기원후의 비너스'를 번역했으며, 아일랜드 극작가 존 밀링턴 싱의 희곡에 관한 논문으로 경성제대 영문학과를 졸업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키플링은 에드워드 사이드가 '오리엔탈리즘'에서 제국주의적인 작가로 반복적으로 논의하고 있지만 키플링의 초창기 소설집 '고원평화'(Plain tales from the Hills·1888년)는 전혀 그렇지 않은 메시지들도 함축하고 있으며 시인 백석이 이 이야기들 속에서 두 편을 뽑아 번역한 것도 이효석과 마찬가지로 그와 같은 키플링의 '다른' 특성에 주목한 것이었다.

이효석이 존 밀링턴 싱에 주목한 것도 일제강점기의 문학인들이 제임스 조이스와 윌리엄 버틀러 예이츠, 오스카 와일드 등 영국의 식민지였던 아일랜드의 작가들에게 각별한 관심을 기울였던 것과 맥락을 같이한다고 할 수 있다. 이효석은 싱에 관한 논문에서 그가 한 해의 대부분을 농민들의 주방에서 보냈고 농민들의 화롯가에서 그네들의 전설에 귀를 기울인 작가였다고 했다. 싱은 농민 생활에서 진실성과 희열을 발견하고자 했으며 그들의 생활 속에서 자연적이면서 동시에 비도덕주의적인 삶을 발견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언급에서 이후 그가 펼쳐놓게 될 두 개의 삼부작들, 그러니까 '메밀꽃 필 무렵'(1936년 10월 '조광'), '개살구'(1937년 10월 '조광'), '산협'(1941년 5월 '춘추')의 '영서 삼부작'과 '산'(1936년 1월 '삼천리'), '들'(1936년 3월 '신동아'), '영라'(1938년 9월 '농민조선')의 또 다른 삼부작의 씨앗을 발견하게 되는 것은 어렵지 않다.

흔히 영서 삼부작은 이효석이 자신의 고향 평창에서 소재를 얻은 작품들로 서정성이 뛰어나다고 평가된다. 그러나 도대체 '메밀꽃 필 무렵'의 참된 주제는 무엇인가 하고 묻는다면 필자는, 이 이야기는 제도와 관습의 바깥에서도 사람의 사랑은, 그리고 삶은 이어질 수 있다고 말하고자 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 소설의 주인공 허생원은 일생에 단 한 번뿐인 '사랑'을 '우연'의 섭리로써 봉평의 한밤 물방앗간에서 이루게 되는데, 작중 이야기는 봉평에서 대화장으로 옮겨가는 산길의 허생원과 동이가 부자 관계일 수도 있음을 시사한다.

'산' '들' '영라'의 삼부작을 대표한다고 할 수 있는 '들'에서도 도회의 학교에서 퇴학당하고 고향으로 돌아온 주인공 '나'와 작중 여성 옥분의 관계는 들을 배경으로 자연스러우면서도 인위적 도덕의 굴레를 넘어서는 것으로 나타난다. 이러한 이야기 전개들은 이효석이 영문학의 독특한 '자연주의' 계선이라 할, 토머스 하디와 D H 로런스의 문학과 깊은 교호 관계를 맺고 있음을 의식하게 한다. '더버빌 가의 테스'(1891년)를 통하여 영국 기독교와 귀족사회의 속물화에 깊은 저항감을 표현했던 하디를 아주 중요하게 여기며 '채털리 부인의 사랑'(1928년)을 통해 인간 본성의 긍정성에 천착하고자 했던 로런스, 그리고 우리의 작가 이효석은 일종의 비동시성 속의 동시성을 형성하며 새로운 자연주의의 흐름을 형성하고 있었던 것이다.

▶ 가난·진리·아름다움의 공통성

이효석의 대표작 가운데 하나인 '화분'(1939년 인문사 펴냄)은 그가 여러 복잡한 우여곡절과 경로를 통하여 도달하고 구축한 사상의 형태를 집약적으로 보여주는 대목이 등장한다. 여기서 이효석은 영훈이라는 인물의 시선을 통하여 자신의 생각을 다음과 같이 피력한다.

진리나 가난한 것이나 아름다운 것은 공통되는 것이어서 부분이 없고 구역이 없다. 이곳의 가난한 사람과 저곳의 가난한 사람의 사이는 이곳의 가난한 사람과 가난하지 않은 사람의 사이보다는 도리어 가깝듯이, 아름다운 것도 아름다운 것끼리 구역을 넘어서 친밀한 감동을 주고받는다. (중략) 같은 진리를 생각하고 같은 사상을 호흡하고 같은 아름다운 것에 감동하는 오늘의 우리는 한구석에 숨어 사는 것이 아니요, 전 세계 속에 살고 있는 것이다. 동양에 살고 있어도 구라파에서 호흡하고 있는 것이며 구라파에 살아도 동양에 와 있는 셈이다.

필자는 삶의 '방향'의 피로를 느낄 때마다 이효석의 이 문장으로 돌아와 보곤 한다. 그는 말한다. 진리와 가난과 아름다움은 공통되는 것이라고. 이때 가난은 민중들, 농민들의 삶에 천착하던 그의 뿌리의 기억일 것이다. 진리와 아름다움은 동양만의 것도 서양만의 것도 아니며, 진리와 아름다움은 동서양뿐만 아니라 계급과 계층의 차이 없이 누구나 인정할 수 있을 때 더 큰 진리, 더 깊은 아름다움이 될 것이다.

이 '화분'에서 이효석은 "사람에게는 태어난 고장이 영원한 고향이 아닌 것이요, 고향을 한번 떠남으로서 새로운 고향을 찾고자 하는 원이 마음속에 생기는 것"이라고 했다. 이 매혹적인 표현은 그가 평창의, 한국의 작가이자 동시에 인류의 진정한 고향을 찾아 나섰던, 깊은 향수를 간직한 세계시민적 작가임을 깨닫게 한다.

이 이효석이 세상을 떠났을 때 그는 불과 35년4개월 남짓한 생애를 '경력'하고 있었다. 인생은 가히 짧고 예술은 진실로 길다 하지 않을 수 없다.

[방민호 문학평론가·서울대 국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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