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생그래프] (28) 명지대 한정도 "농구를 늦게 시작한 만큼 남들보다 한 발 더 뛰고 노력할 것"

조형호 2022. 8. 17. 1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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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물여덟 번째 미생은 명지대 주장 한정도(C, 196cm)다.

성실하고 궂은일을 열심히 하는 선수로 기억되고 싶은 한정도의 농구 인생을 살펴보자.

끝내 한정도도 마음을 바꿔 농구선수의 길을 택했다.

"많은 분들에게 성실하고 궂은일을 열심히 하는 선수로 기억되고 싶어요. 농구를 초등학교 때 시작했으면 어땠을지 아쉬움이 들 때도 있지만 늦게 시작한 만큼 후회 없이 열심히 한 것 같거든요. 늦게 시작해서 남들보다 한 발 더 뛰고 노력하려 했던 것처럼 프로에 가서 꼭 열심히 하는 선수로 각인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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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기억하고 뽑아 주세요" 2022 KBL 신인드래프트를 통해 완생을 꿈꾸는 대학 졸업반 미생들의 농구 인생을 조명해본다.
[점프볼=조형호 인터넷기자] 스물여덟 번째 미생은 명지대 주장 한정도(C, 196cm)다. 성실하고 궂은일을 열심히 하는 선수로 기억되고 싶은 한정도의 농구 인생을 살펴보자.

#고등학교 1학년, 비교적 늦은 나이에 농구선수의 길을 택하다
명지대 주장 한정도는 비교적 농구 구력이 짧다. 중학교 3학년 때까지 평범한 학생이었다. 활동적인 것을 매우 좋아했고, 그중 농구에 큰 흥미를 느꼈다. 중학교 3학년 당시 김해에서 열린 동아리 농구 대회에 참가했다. 대회 준비를 위해 경기 전날 김해가야고에서 연습을 하던 도중 김해가야고 코치가 찾아와 농구선수의 길을 제안했다.

한정도는 첫 번째 러브콜을 거절했다. 좋아하는 것을 스트레스 받지 않고 즐기고 싶다는 게 가장 큰 이유였다. 그러나 김해가야고 코칭스태프는 포기하지 않았다. 운동신경도 좋고 또래에 비해 큰 신장을 가진 한정도에 끈질긴 구애를 펼쳤다. 끝내 한정도도 마음을 바꿔 농구선수의 길을 택했다.

“처음에는 농구를 취미로만 하고 싶었어요. 근데도 김해가야고 선생님들께서 제가 다니는 중학교까지 찾아와 설득을 하셨죠. 결국 저도 농구선수가 되겠다는 결심을 했고, 김해가야고로 고등학교 진학을 결정하게 됐어요.”

#징계와 부상, 2년이라는 힘든 시간을 이겨내다
농구를 늦게 시작하게 된 한정도는 고등학교 진학 후 기본기 등 농구에 대한 기초 역량을 익히는 데 전념했다. 김해가야고로 진학한지 얼마 되지 않아 동아고로 전학을 갔다. 이후 또래에 비해 부족한 부분을 보완하기 위해 유급까지 선택하며 기초에 중점을 뒀다.

“저에게 농구선수의 길을 제안하신 박규현 코치님께서 팀을 옮기시면서 동아중으로 가셨어요. 저도 코치님을 따라 동아고등학교로 전학을 갔죠. 전학으로 인해 1년 징계를 받아 대회에는 출전하지 못했지만 유급을 하며 기본기에 열중했던 것 같아요.”

길었던 1년 징계가 끝났지만 곧바로 부상을 당해 경기 출전을 미룰 수밖에 없었다. 한정도는 발목 인대가 끊어지는 큰 부상으로 또 한 번의 긴 공백기를 가졌다. 징계와 부상 등 무려 2년을 힘들게 보낸 한정도의 잠재력은 고등학교 3학년 때부터 서서히 진가를 발휘했다.

“고등학교 3학년 때 농구가 가장 재밌었어요. 이상국 감독님도 달리는 농구를 추구하셨고, 자신감도 많이 심어주셨거든요. 큰 부담감 없이 농구를 하다 보니 과감한 플레이도 많이 나왔고, 수비 조직력도 잘 맞아가면서 팀 분위기도 좋았던 것 같아요. 대회에서 8강도 두 번 들면서 성적도 나쁘지 않았죠.”

#부상으로 인한 부진, 인생에서 가장 힘든 순간이었던 ‘대학교 4학년’
길었던 공백기를 깨고 잠재력을 선보인 한정도는 명지대로 진학했다. 고등학교 3학년 시절 명지대와 연습게임에서 좋은 활약을 펼쳤고, 당시 명지대를 지휘하던 조성원 감독의 러브콜을 받았다. 기쁜 마음에 곧바로 명지대행을 결정했다.

“처음엔 감독님께서 좋게 봐주셔서 자신감도 있었는데 농구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다 보니 실수도 잦고, 스트레스도 많이 받았던 것 같아요. 원래 체격이 좋은 편이었는데 스트레스로 살도 많이 빠지고 체질이 아예 변하더라고요. 1학년 때는 긴장도 많이 하고, 감을 못 잡았고, 2학년 때는 코로나가 터졌죠.”

“대학에 와서 보여준 게 없다 보니 매년 부담감이 심해졌는데 감독님까지 바뀌시는 바람에 농구가 무서워지더라고요. 그래도 김태진 감독님께서 좋은 말씀도 많이 해주시고 잘 가르쳐주셔서 조금은 극복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3학년 들어서면서 부담감도 덜고 즐겁게 했죠.”

한정도는 올해 명지대의 주장으로 선임되기도 했다. 1, 2학년 때의 부진을 이겨내고 성장한 부분과 책임감 있는 모습에 여러 선수들의 추천을 받았다. 김태진 감독 또한 한정도에게 신뢰를 보냈다.

그러나 이번엔 종아리 부상이 그의 발목을 잡았다. 4학년 동계 때부터 심상치 않던 종아리 부상이 시즌 종료 때까지 한정도를 괴롭혔다. 부상 여파로 부진을 거듭했고, 소속팀 명지대 또한 아쉬운 시즌을 보냈다.

“좋은 모습으로 대학 생활을 마무리했어야 했는데 종아리 부상이 아쉬워요. 제가 몸 관리를 못 했죠. 팀 내 최고참에 주장인 만큼 팀을 잘 이끌고 리더십을 발휘했어야 했는데 조급한 상황과 부상이 닥치면서 아쉬운 결과를 맞이한 것 같아요. 리그 막바지에는 걷기도 힘든 상태였어요. 인생에서 가장 힘든 순간이었죠”

#“이왕 시작했으면 끝을 봐야 한다” 한정도의 농구를 향한 의지
“아쉽게 시즌을 마쳤지만 제 농구 인생은 남았잖아요. 시작한 것은 끝은 봐야 한다고 생각해요. 일단 오프시즌인 만큼 재활과 스킬 트레이닝에 전념하면서 컨디션을 끌어올려야죠. 당장은 치료를 하면서 드래프트를 중점으로 두려고 해요. 프로에 지명이 안 됐을 때를 염두에 두고 있지는 않거든요. 일단 드래프트 때까지는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할 계획입니다.”

“많은 분들에게 성실하고 궂은일을 열심히 하는 선수로 기억되고 싶어요. 농구를 초등학교 때 시작했으면 어땠을지 아쉬움이 들 때도 있지만 늦게 시작한 만큼 후회 없이 열심히 한 것 같거든요. 늦게 시작해서 남들보다 한 발 더 뛰고 노력하려 했던 것처럼 프로에 가서 꼭 열심히 하는 선수로 각인되고 싶어요.”

한정도는 마지막으로 “항상 지지해주신 부모님이 가장 생각나고, 처음 농구를 시작할 때 뵀던 박세웅 코치님이나 박규현 코치님께도 너무 감사해요. 부족했던 제게 대학에서 농구를 더 할 수 있게 기회를 주신 조성원 감독님께도 감사의 말씀을 드리고 싶어요”라며 감사함을 표했다.

부상 등의 악재로 힘든 시간을 보낸 한정도의 농구 인생에 꽃길이 펼쳐질 수 있을까. 한정도가 프로 유니폼을 입고 코트를 누빌 수 있을지 주목해볼 필요가 있다.

# 사진_ 점프볼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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