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을 제거하라"..강력한 분노 담은 '헌트' 단연 압권인 이유

정덕현 칼럼니스트 2022. 8. 17. 1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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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두환에 대한 분노가 '26년'을 연상케 하는 '헌트'
'헌트', 역사적 사실과 기막힌 상상력의 조화

[엔터미디어=정덕현의 그래서 우리는] 1980년 광주 민주화 운동, 1983년 아웅산 폭탄 테러 사건, 큰 손 장영자 이철희 어음 사기 사건, 북한 이웅평 대위 귀순... 1980년대를 살았던 중장년 관객들에게 영화 <헌트>는 실제 당시 벌어졌던 여러 사건들을 떠올리게 만든다. <헌트>는 당대에 벌어졌던 사건들을 마치 하나하나의 구슬처럼 가져와 스파이 액션의 상상력을 동원해 꿰어낸 수작이다.

전혀 상관이 없을 것처럼 여겨졌던 실제 사건들이 영화 속에서는 그만한 이유가 있어 연결된 사건들로 재해석된다. 스파이 액션 특유의 한국과 북한 그리고 미국 사이에서 벌어지는 치열한 정보전이 펼쳐지는데, 특이한 건 각국의 위치에 서 있는 인물들도 자신이 몸담고 있어 어쩔 수 없이 충성하고 있는 국가에 대한 불신과 불만을 갖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 지점은 이 스파이액션의 사건 전개를 종잡을 수 없게 만들고 반전에 반전이 만들어지는 중요한 요인이 된다.

<헌트>의 가장 굵직한 사건은 북한의 대통령 테러 음모다. 실제로 83년 벌어졌던 아웅산 폭탄 테러 사건이 모티브였다는 걸 말해주는 대목이다. 대통령을 테러하고 적화 통일을 이루려는 북한의 야욕과 이를 위해 안기부에 침투한 북한 공작원 동림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이를 색출하기 위해 중앙정보부 출신 박평호(이정재)가 이끄는 해외팀과 국인출신 김정도(정우성)가 이끄는 국내팀이 치열한 각축전을 벌인다. 즉 박평호는 김정도를 의심하고, 김정도는 박평호를 의심하는 상황 속에서 이들은 사냥하지 않으면 사냥감이 될 위기에 처한다.

진실을 추적하기보다는 진실이 만들어졌던 시대. 없던 죄도 갖은 고문으로 만들어 뒤집어 씌우고 심지어 사형까지 집행시켰던 폭력의 시대였다. 따라서 박평호와 김정도의 갈수록 치열해지는 대결양상은 서로를 동림으로 둔갑시켜 그 팀원들까지 모두 줄줄이 엮어내려는 공작의 성격을 띠게 된다. 한편에서는 실제 동림이라는 간첩은 존재하지도 않으며, 북한이 안기부를 내분시키기 위해 한 공작이라는 이야기까지 나온다.

하지만 이러한 대결양상은 동림의 실체가 드러나고, 박평호와 김정도의 진짜 속내가 조금씩 밝혀지면서 후반부에 이르러 엄청난 반전을 만들어낸다. 스포일러가 되기 때문에 구체적으로 밝힐 수는 없지만, <헌트>의 포스터에 담긴 '대통령을 제거하라'는 문구는 이 반전을 보고 나면 여러 가지 관점을 담은 것이라는 걸 깨닫게 된다.

<헌트>가 가진 장점은 1980년대 한국에서 벌어졌던 갖가지 사건들을 모티브로 한 스토리를 구성하면서 여기에 스파이 액션 특유의 장르적 쾌감을 부여했다는 점이다. 일본에서 망명하려는 북한측 인사를 두고 벌이는 총격전이나, 안기부 내부에서 벌어지는 정보전 그리고 마지막에 방콕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대통령 테러 음모와 이를 저지하려는 이들의 대결은 스파이 액션 특유의 긴장감 있는 스릴러를 제공한다.

하지만 이보다 더 <헌트>가 수작이라 여겨지는 건 스파이 액션의 볼거리에 머물지 않고 당대의 불행했던 독재정권 하에서 폭력 앞에 스러져간 시대의 아픔을 더해줌으로써 이 액션이 이질적으로 느껴지지 않고 오히려 정서적인 공감대를 강력하게 만들어냈다는 점이다. 특히 1980년 광주 민주화 운동이 남긴 상처에 대한 분노는 이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중요한 정서다.

이미 광주 민주화 운동이 불러일으키는 전두환 정권에 대한 분노는 강풀 작가의 <26년>이라는 작품을 통해 웹툰으로 또 영화로도 표출된 바 있다. 광주의 비극을 겪은 피해자들이 모여 대통령을 암살하려는 과정을 담은 그 작품 속에 어른거리는 건 그러한 폭력을 자행하고도 뻔뻔하게 잘 살아가는 자들에 대한 강력한 분노였다. <헌트>에도 바로 이런 <26년>이 보여줬던 분노의 정서가 깔려 있다.

배우 이정재의 첫 감독 데뷔 작품이라는 점 때문에 과연 괜찮을까 의구심을 갖는 관객들도 적지 않을 게다. 하지만 <헌트>는 일단 촘촘한 대본부터 실제 사실과 허구적 상상력을 기막히게 잘 엮어 놓은 수작이다. 게다가 이를 영상으로 연출해낸 이정재 감독의 솜씨도 상상 이상이다. 보는 내내 에너지가 넘치는 긴장감이 이어지고, 두 시간 넘는 시간이 어떻게 흐르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몰입하게 만들어주기에 충분한 작품이다.

대본과 연출에 더해진 연기는 더할 나위 없다. 이정재와 정우성이 전면에서 이끄는 작품이지만 잠시 등장했다 사라지는 조연들도 거의 주연급이다. 황정민, 이성민, 유재명, 박성웅, 조우진, 김남길, 주지훈 등등. 짧게 등장했다 사라지지만 빈틈없는 연기가 작품을 훨씬 더 완성도 높게 만들었다. 올해 여름 블록버스터 시즌에 나온 작품들 속에서 가장 좋은 한 작품을 꼽으라면 단연 <헌트>를 꼽을 수 있을 정도로.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영화 <헌트>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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