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도운의 시론>北核 위협으로부터의 자유

기자 2022. 8. 17. 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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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도운 논설위원

‘담대한 구상’ 비현실적일 수도

北, 비핵화 대신 핵으로 南위협

국민 여론, 美 대응도 불투명

8·15 제안은 경제 지원뿐일까

핵 억지력 확보가 尹 정부 소명

구상 현실화할 내공도 보여야

윤석열 대통령이 광복절 경축사를 통해 북한에 제안한 ‘담대한 구상’은 언뜻 비현실적으로 들린다. “북한이 핵 개발을 중단하고 실질적인 비핵화로 전환한다면”이라는 전제 자체가 성립하지 않을 것 같기 때문이다. 2018년 정의용 청와대 안보실장이 전했던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비핵화 의지’도 2019년 2월 하노이 미·북 정상회담에서 거짓임이 증명됐다. 급기야 김정은은 지난 4월 전술핵으로 남한을 선제공격할 수 있다는 핵전략까지 공개적으로 밝혔다.

윤석열 정부도 그걸 모르지는 않을 것이다. 북한과의 대화가 필요한 시점이기 때문에 나온 제안이라고 해석한다. 그래서 북한이 관심을 보이는 제재 완화라는 미끼도 던졌을 것이다. 그래도 대북 지원 구상이 어떻게 작동할지는 좀 더 두고 봐야 한다.

우선, 윤석열 정부는 북한이 진짜 원하는 것을 제안하지 않았다. 어차피 한국 정부가 줄 수 없는 것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2018년 6월 김정은과의 싱가포르 정상회담에서 핵심을 찔렀다. “북한이 이대로 계속 갈 수는 없지 않나. 김 위원장은 무엇을 원하나. 일본의 천황? 중국의 주석? 미국의 대통령?” 김정은은 답하지 않았다고 한다. 원하는 답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는 인구 2500만 국가를 신(神)처럼 통치하는 세습 왕조의 영속을 원할 것이다. 그것이 북한이 말하는 안전 보장이다. 그러나 문명국가라면 세계 최악의 경제 실패국·인권 탄압국에 그걸 약속할 수는 없다.

또 하나의 이유는 8·15 제안을 우리 국민과 동맹국 미국이 어떻게 받아들이냐는 것이다. 윤 대통령의 구상은 문재인 정권의 대북 협상 전략과 비슷해 보일 수 있다. 불투명한 북한 비핵화 의지를 전제로 하는 것, 북한에 경제적 이익을 대가로 만남을 제안하며 주도권을 주는 것, 국제 사회의 여론이 움직이기 전에 북한에 대한 경제 제재를 풀겠다고 약속하는 것 등이다. 미 정부는 전술적으로 남북 대화 재개가 나쁠 것은 없다. 그러나 조 바이든 대통령이 지난 5월 방한 당시 김정은에게 “헬로, 피리어드”라고 말한 데서 보듯 미 정부는 오히려 대북 제재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갈 가능성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윤 대통령의 8·15 제안은 우리 외교·안보의 중대한 전환점이 될 수 있다. 어쩌면 윤 대통령의 진짜 담대한 구상은 경제 지원 약속에 가려 보이지 않을지도 모른다. 북한은 핵과 미사일 개발을 사실상 완료했고 핵보유국으로 인정받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미국-중국, 미국-러시아 관계가 악화하면서 북한은 결국 유사 핵보유국이 될 가능성이 있다. 그럴 경우 인정하기 싫지만 한반도에서 핵 불균형이 발생한다. 북한이 핵무력을 손에 쥐고 안보의 주도권을 잡으려 하는 것이다.

그걸 막으려면 우리도 국가 명운을 걸고 중대한 결정을 내려야 한다. 핵은 핵으로만 대응할 수 있다. 북한 핵에 대한 억지력을 가지려면 확장억제, 전술핵 배치, 핵 공유, 핵 개발의 단계를 밟아갈 수밖에 없다. 물론 미국과 중국, 러시아 등이 반대할 것이다. 그러나 북한이 전술핵을 완성하기 위해 7차 핵실험을 강행하면 분위기가 달라질 수 있다. 핵확산금지조약(NPT) 제10조는 ‘비상사태가 자국 지상 이익을 위태롭게 하면 탈퇴 권리를 갖는다’고 규정하고 있다. 한국 정부로서는 북한의 불법적 핵 개발과 핵 공격 위협을 막기 위해 식량, 발전·송배전 인프라, 항만·공항, 농업 기술, 의료 시설, 국제투자·금융지원까지 제안하는 등 최선을 다했지만, 북한이 거부한다면 최소한의 자위적 수단을 갖출 수밖에 없다고 국제사회에 호소할 수 있다.

2년 뒤 동맹국 미국이 어떻게 변할지 예측하기 어렵다. 트럼프의 재출마 얘기가 나온다. 그는 주한미군 철수를 공언했고, 한국·일본은 독자적으로 핵무장하라는 말까지 했다. 트럼프의 4년 대통령 임기 동안 지키지 않은 주요 공약이 주한미군 철수였다고 한다. 참모들이 재선되면 우선 과제로 하자며 말렸다는 것이다. 절박한 상황이다. 윤 대통령은 광복절 연설에서 자유를 33번이나 언급했다. 현재 우리나라에 가장 필요한 자유는 북핵 위협으로부터의 자유다. 어떤 제안이 의미 있으려면 현실화할 실력이 뒷받침돼야 한다. 윤 대통령과 참모들은 담대한 구상을 실현할 내공도 갖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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