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김해 고인돌 공사 중단" 석달 전 SOS, 시청이 뭉갰다

노형석 2022. 8. 17.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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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사적으로 지정해달라고 신청한 유적이 포클레인이 들락거리는 공사장이라니요. 공사를 멈추는 게 좋겠습니다."

현재 훼손된 유적에 대해 진상 조사를 벌이고 있는 문화재청은 지난달 업체가 무단으로 들어낸 사실이 발각된 고인돌 묘역 박석과 관련해 지난 5월 박석들을 보지 못했으며, 흙을 덮어 박석 부위를 복토해놓았다는 시청 관계자의 전언을 들었다는 조사에 참여한 전문가들의 증언을 확보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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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위 분과위원장 등 5월 현장조사
"유적서 공사판.. 중단 의견 구두 전달"
공사 강행한 김해시, 거짓 해명 의혹도
돌과 흙을 가려내는 ‘그물삽’을 장착하고 구산동 고인돌 묘역 안에서 작업 중인 소형 포클레인. 뒤쪽에 세계 최대규모의 고인돌 상석이 보인다. 중장비를 활용해 묘역 박석들을 정비했다는 의혹을 뒷받침하는 장면이다. 익명의 고고학계 관계자가 <한겨레>에 전달한 고인돌 현장 정비 작업 사진을 확대한 것이다.

“국가사적으로 지정해달라고 신청한 유적이 포클레인이 들락거리는 공사장이라니요. 공사를 멈추는 게 좋겠습니다.”

전문가들은 간곡하게 권고했지만, ‘소귀에 경 읽기’였다. 문화유산 복원 정비를 명분으로 세계 최대규모의 고인돌 묘역을 갈아엎어 물의를 빚은 김해시가 무단훼손 행위가 드러나기 세 달 전 문화재 전문가들로부터 공사중단 건의를 받았음에도 이를 묵살한 것으로 밝혀졌다.

17일 문화재 학계와 문화재청 등에 따르면 이청규 문화재위원회 사적분과위원장과 박종익 경남도문화재위원, 강동석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학예연구실장은 지난 5월25일 김해시가 연초 사적지정을 신청한 시내 구산동 고인돌 정비현장을 방문해 예비 타당성 검토 조사를 벌였다.

문화재청 산하 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가 주관한 당시 조사에서 이 위원장과 박 위원은 유적 권역에 포클레인 등의 중장비가 계속 드나들면서 배수펌프 관로와 묘역 내 부석 설치 등의 정비 공사가 강행되는 상황을 목격하고 문제점을 지적했다. 유적 훼손이 크게 우려되니 공사를 중단해달라는 의견을 당시 구두로 시 관계자 쪽에 전달했다. 이와 별개로 `당해 정비사업은 국가지정문화재의 진정성, 완전성을 저해할 우려가 있다. 사적지정과 관련해 관계 전문가의 조속한 검토가 이뤄져야 한다’는 의견서도 문화재청에 제출했다. 하지만 시 쪽은 당시 전문가들이 전달한 의견을 묵살하고 중장비를 동원한 정비 공사를 그대로 강행하며 문화재청과도 협의 없이 묘역의 박석을 뽑고 다시 심는 무단훼손 행위를 벌인 것으로 드러났다.

이청규 위원장은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지난 5월 현장에 갔을 때 포클레인이 수시로 오고 가면서 묘역 바로 코앞에 배수로를 굴착하는 등 일반 공사판이나 다름없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어서 큰 충격을 받았다”며 “박 위원과 함께 공사를 일단 중단하고 상황을 살펴야 한다는 의견을 전달했다”고 밝혔다. 문화재청은 이에 대해 “지난 5월 전문가 예비 조사는 사적지정 신청 절차에 따라 진행된 것으로 사적이 될만한 가치와 여건인지를 살펴보는 자리였다. 문화재 관련법 위반 여부를 따지는 성격은 아니었다”고 해명했다.

유적 훼손 사실이 드러난 후 현재의 모습. 파괴된 구산동 지석묘. 거대한 상석 왼쪽 부분은 마치 보도블록을 깔듯 정연한 모습으로 다시 촘촘하게 이어붙여 묘역을 형성한 모습이 눈에 띈다. 문화재청 제공

현재 훼손된 유적에 대해 진상 조사를 벌이고 있는 문화재청은 지난달 업체가 무단으로 들어낸 사실이 발각된 고인돌 묘역 박석과 관련해 지난 5월 박석들을 보지 못했으며, 흙을 덮어 박석 부위를 복토해놓았다는 시청 관계자의 전언을 들었다는 조사에 참여한 전문가들의 증언을 확보했다고 밝혔다. 이번 조사에 관여한 청의 한 관계자는 “전문가들 증언대로라면 수백여개의 박석들을 일일이 손작업으로 뽑아내고 세척하고 다시 심었다고 시 쪽이 해명한 정비 작업이 7월 말 문화재청이 확인할 때까지 불과 두달여만에 이뤄진 셈이 된다. 하지만 그 기간 안에 이런 규모의 정비 작업이 진행되는 건 물리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에 시 쪽 해명의 모순이 드러난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일부 언론에 지난 4월 촬영한 것이라며 공개된 유적 현장 제보 사진을 보면 이미 박석으로 추정되는 돌들을 들어내 묘역 위쪽에 무더기로 쌓은 모습이 보인다. 시 쪽이 박석을 치워놓고 5월 조사 때 다른 해명을 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될 수 있다”면서 “5월 조사 때 파악한 자료들을 입수해 정황을 분석 중”이라고 전했다.

문화재청은 또 지난 5일 <한겨레>의 단독보도 당시 공개된 유적의 정비 작업 사진과 다른 언론에 나온 유적 사진을 확대해 분석한 결과 사진에 등장하는 일부 포클레인이 일반 삽이 아니라 구멍이 송송 뚫려 돌을 가려내는 특수 그물삽을 장착하고 있었다는 점도 확인했다. 청 쪽은 “사진 분석 등을 통해 김해시 쪽이 해명과 달리 묘역의 박석들을 정비하는 과정에서 신속하게 작업을 진행하기 위해 사실상 중장비를 썼을 가능성이 크다는 판단을 내린 상황”이라고 말했다.

글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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