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 속에 싹튼 보이지 않는 위험..제1차 세계대전

송광호 2022. 8. 17. 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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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차 세계대전의 기원 기차 시간표 전쟁' 출간
출정에 나선 프랑스 [페이퍼로드 제공. 재판매 및 DB금지]

(서울=연합뉴스) 송광호 기자 = 위험(危險)은 위태롭고 해롭다는 뜻이다. 통상 위험한 상황이 눈에 띌 때 우리는 어떻게든 문제를 해결해 나갈 수 있다. 문제는 위험의 실체가 손에 잡히지 않을 때다. 개인이건 국가건 안락하고 평화로울 때, '보이지 않는 위험'이 수면 밑에서 커가는 경우가 있다. 20세기 초반까지 인류 역사상 가장 파괴적인 전쟁이었던 제1차 세계대전도 그랬다.

영국의 유명 역사학자 앨런 존 퍼서베일(A.J.P) 테일러(1906~1990)가 쓴 '제1차 세계대전의 기원 기차 시간표 전쟁'(원제 War by time-table: How the first world war began)은 그런 보이지 않는 위험의 무서움을 경고한 역사서다. 저자는 이 드라마틱한 책에서 평화 속에서 은밀히 자랐던 위험의 실체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평화주의자와 무력주의자 [페이퍼로드제공. 재판매 및 DB금지]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 초반은 누가 뭐래도 유럽 국가의 전성기였다. 영국·독일·프랑스·오스트리아-헝가리(이하 오스트리아)·이탈리아·러시아 등 6개국은 최강국으로서 세계를 지배했다.

잠수함, 순양함, 기관총 등 신무기로 무장한 이들 국가는 역사상 그 어떤 제국보다 강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어느 한 국가도 다른 국가를 압도하지 못했다. 영국은 금융에서, 러시아는 인구에서 각각 선두에 나섰지만 다른 분야에선 상대방보다 전력이 떨어졌다.

비슷비슷한 힘은 세력 균형추로 작용했다. 이 때문에 1871년 프랑스-프로이센(독일) 전쟁 이후에는 이렇다 할 전쟁이 유럽 지역에서 발생하지 않았다. 여기에 이들 국가는 전쟁 억지를 위한 안전핀까지 마련했다. 각국이 서로 동맹을 맺으며 라이벌 국가를 견제한 것이다.

독일-오스트리아-이탈리아는 삼국동맹을 맺었다. 다른 한 축에선 프랑스가 러시아와 손잡았다. 영국은 때로 애매모호한 자세를 취했지만 대부분 프랑스-러시아와 긴밀히 협력했다. 유럽에서는 거의 완벽한 힘의 균형이 유지됐다.

저자는 "(각각의 동맹이) 공격을 당했을 때만 작동하게 되어 있었고, 모든 강대국이 자신들은 전적으로 방어에만 노력을 기울인다고 선언했다"며 "이론상 (유럽에서) 전쟁은 불가능했다"고 설명했다.

프란츠 페르디난트 대공 살해 직후 체포되는 프린치프 [페이퍼로드 제공. 재판매 및 DB금지]

당대 분위기는 실제 평화로웠다. 보편적인 선거가 정치에 도입되면서 호전적 애국주의자와 제국주의자가 더는 선거에서 승리하지 못했다. 사회민주주의자들이 독일 제국의회에서 가장 큰 단일 정당을 이뤘으며 프랑스에서는 급진주의자들과 사회주의자들이 의회에서 과반을 넘겼다. 영국의 보수당도 힘을 잃어갔다. 이들 유럽 지역 진보 정치인들은 전쟁 등으로 한때 금 갔던 프랑스-독일, 영국-독일 간 관계를 개선하려 노력했다.

그렇게 '전쟁의 시대'는 끝날 듯 보였다. 저자는 유럽의 '기차 시간표'가 이런 평화로운 시대상을 반영한다고 설명한다. 사람들은 전쟁에 대한 걱정 없이 기차 시간표에 따라 한 달 뒤 혹은 일 년 뒤 여행 계획을 분단위로 짤 수 있었다.

마찬가지로 투자자들은 오십 년 혹은 백 년이 지나도 자신이 투자한 돈을 손실 없이 돌려받을 수 있으리라는 절대적 신뢰 속에 국채를 매입했다. 영국에선 토지 소유자들이 99년 혹은 999년 기한으로 임대차 계약을 맺었다. 프랑스와 독일의 금융업자들은 서로 화해했고, 영국과 독일은 서로에게 가장 중요한 고객이 됐다.

파리로 향하는 기차에 탄 독일군 [페이퍼로드 제공. 재판매 및 DB금지]

장밋빛 전망 속에 유럽의 황금기는 그렇게 영원할 것 같았다. 하지만 전쟁의 씨앗은 평화 밑에서 조심스럽게 자라고 있었다. "전투를 경험해 본 적 없는 나이 많은 장군들" 사이에서, "국가적 자존심을 지켜야 한다는 요구를 받아온 외교관들" 틈바구니에서, "호전적 애국주의를 조장하는 글 하나로 푼돈을 벌어들이는 데 골몰한 언론인들" 속에서 말이다.

결국, 사라예보에서 울린 총성 두 방에 거짓된 평화 체계는 급격히 무너졌다. 발칸지역을 둘러싸고 벌어진 오스트리아-세르비아 분쟁은 세계대전으로 확대됐다. '공격이 최선의 방어'라 판단한 독일은 프랑스부터 격파한 후 러시아를 상대한다는 '슐리펜계획'에 따라 속도전을 전개했다. 영국, 프랑스, 러시아도 곧바로 전선에 투입돼 작전에 돌입했다. "어느 누구에게도 계획된 의도를 품을 시간 혹은 생각할 시간"이 없었다. 유럽은 곧 포연 속에 휩싸였다.

저자는 "이전 30년 동안 국가 간의 외교, 세력균형, 동맹체제, 군사력 증강이 평화를 낳았다"며 "하지만 갑자기 상황이 바뀌어 오랜 기간 평화를 가져온 바로 그 요인들이 이제 대규모 전쟁을 가져왔다"고 설명했다.

독일 장군 슐리펜 백작 [페이퍼로드 제공. 재판매 및 DB금지]

결국 억지책은 아흔아홉 번 성공하더라도 한 번 실패할 수 있었다. 한 번의 실패가 마침내 대참사로 이어진 것이다. 열강의 정치가들은 억지책이 언젠가 실패할 수도 있다고 생각해야 했다고 저자는 말한다. 평화에 안주했던 6대 강국은 그렇게 전성기를 마무리했다.

"1914년 7월 마지막 날 유럽 전역에서 국제선 급행열차가 운행을 멈췄다. 앞으로 5년 동안은 다시 운행하지 못할 것이었고, 거칠 것이 없던 그 옛 영광을 다시는 되찾지 못할 것이었다. 군용열차가 그 자리를 대신했다."

페이퍼로드. 유영수 옮김. 240쪽. 1만6천800원.

책 표지 이미지 [페이퍼로드 제공. 재판매 및 DB금지]

buff27@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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